5월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른다. 부쩍 날씨가 좋아진 만큼 책 읽기 좋은 달이기도 하다(금새 무더워지려나?). 이제 막 중간고사를 치른 아이들에게도 맘 놓고 독서할 여유가 생기면 좋겠다. 그런 여유가 없다면 우린 아직 독서 후진국이다.

 

 

 

1. 문학 

 

김미현 교수가 고른 책은 폴 오스터의 신작 <선셋 파크>(열린책들, 2013). "어떤 작가의 작품이라면 무조건 읽게 되는, 그런 작가가 있다. 폴 오스터가 그렇다."는 고백이고 보면 사심도 담은 추천이지만 이에 시비를 걸 수는 없다. 국내에서 폴 오스터는 충성도 높은 독자를 거느린 힘센 작가니까. 그런 독자들에게 <선셋 파크>는 오랜만에 나온 책이다. <보이지 않는>(열린책들, 2011) 이후 2년만이니까. 친구 따라 강남간다고, 오스터의 애독자들을 따라 이 참에 오스터를 읽어봐도 좋겠다. 선셋 파크에서 만나면 되는 건가?

 

 

 

같이 읽어볼 만한 한국 작가로는 신작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자음과모음, 2013)를 펴낸 배수아를 꼽아도 좋겠다. 폴 오스터보다는 훨씬 적은 수의, 하지만 그 이상의 충성도 놓은 독자를 갖고 있는 작가. 아마도 가장 이질적인 한국어를 구사하는 한국 작가가 아닌가 싶은데, 작가의 방법론이기도 하지만 한국어를 외국어로 쓰는 작가가 배수아이다. 작가 자신이 번역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나는 그녀의 소설이 모두 '번역소설'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나 '올빼미의 없음' 같은 제목을 보라. 그러한 희소성이 연륜을 갖게 되자 이젠 개성이자 존재감이 됐다. 올해로써 작가가 등단한 지 20년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에겐 덜 알려진 작가다.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추천한 책은 최종현, 김창희의 <오래된 서울>(동하, 2013)이다. "그동안 역사도시 서울을 조명하는 답사기가 많이 나왔다. 그러나 이 책은 지금까지의 답사기와는 차원을 달리 한다. 역사학과 지리학, 그리고 도시사를 결합하여 ‘공간’이라는 관점에서 서울을 추적하고 있다"는 소개다. 서울을 다룬 책으론 지리학 전공자들이 쓴 <서울 스토리>(청어람미디어, 2013)도 있다. '음식으로 풀어낸 서울의 삶과 기억'을 다룬 황교익, 정은숙의 <서울을 먹다>(따비, 2013)도 식욕을 돋구는 책인데, 책과 음식을 모두 좋아하는 독자에겐 더없는 책일 듯싶다.

 

 

 

좀 묵직한 책들도 골르자면 독일 학자 라인하르트 쉬메켈의 <인도유럽인, 세상을 바꾼 쿠르간 유목민>(푸른역사, 2013)을 통해서 오래전 선사시대로 떠나볼 수도 있겠다. B.C4500년부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역시나 독일 학자 크누트 슐츠의 <중세 유럽의 코뮌운동과 시민의 형성>(길, 2013)은 제목부터 학술서의 인상을 물씬 풍긴다(독일 학자들의 고집이 느껴진다). 소개에 따르면 "밀라노에서부터 13세기 전반 마르세유에 이르기까지 아홉 개 도시 지역에서 두 세기 이상에 걸쳐 진행된 코뮌 운동을 다루고 있다. 성격이나 시기에서 차이를 보이기는 했으나, 저자는 코뮌 운동이 유럽 전역을 포괄했으며, 13세기 이후에도 그와 같은 동력이 소진되지 않고 상이한 양상으로 계속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일본에서 나온 책도 한권 덧붙인다. 고단샤의 창사 100주년 기획시리즈 '흥망의 세계사' 1권으로 나온 <유럽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다른세상, 2013). 일본의 명망있는 출판사에서 기획한 책인 만큼 기대가 되는 책이다(물론 일본 출판계의 실력도 가늠해볼 수 있겠고).

 

 

 

3. 철학

 

박인철 교수가 고른 책은 <왕멍의 쾌활한 장자 읽기>(들녘, 2013)다. "소설가이기도 한 저자는 장자의 사상을 학문적으로 이론적인 틀을 갖고 분석하기보다는, 소박한 시각에서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여기서 소박하다는 것은 일상적, 상식적, 대중적인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책은 매우 쉽고 명쾌하게 쓰여 있다." 왕멍의 장자 책은 <장자의 거침없는 질주>(자음과모음, 2013), <나는 장자다>(들녘, 2011)까지 세 권이 출간돼 있다.  

 

 

 

일종의 '예술가 철학'이란 인상 때문에 장자는 내게 니체를 떠올려주는데, 니체에 관한 책들도 이달에는 읽어봄직하다. 알렉산더 네하마스의 <니체: 문학으로서 삶>(연암서가, 2013), 하인츠 슐라퍼의 <니체의 문체>(책세상, 2013), 그리고 편역서로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문장론>(연암서가, 2013) 등이 최근에 나온 책들이다. 니체의 문체/문장론으로 독서의 토픽으로 삼아볼 수도 있겠다.

 

 

4. 정치/사회

 

마인섭 교수가 추천한 책은 일본의 교육학자 사토 마나부의 <교사의 도전>(우리교육, 2013)이다.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비율이 노동인구의 2%로 격감하는 21세기의 학교에는 창조적 사고, 비판적 사고, 커뮤니케이션 능력, 탐구적인 배움이 요구되며 그 배움은 양이 아니라 질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이 한 명 한 명의 존엄성에 마음을 다하여 아이와 아이, 아이와 교사가 서로 배우는 수업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가 '일본의 교육개혁 전도사'의 문제의식이다. 

 

 

교육 관련서로는 파커 J 파머의 <가르칠 수 있는 용기>(한문화, 2013), 가와카미 케이지로의 <방과후 3시간>(시대의창, 2013), 살만 칸의 <나는 공짜로 공부한다>(알에이치코리아, 2013) 등도 관심도서로 챙겨둘 만하다. 살만 칸의 책은 테크놀로지가 교육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할 만하다.

 

 

 

5. 경제/경영

 

김은섭 위원이 고른 책은 선대인경제연구소에서 펴낸 <두 명만 모여도 꼭 나오는 경제 질문>(웅진지식하우스, 2013)이다. 오천만을 위한 일종의 '생활경제학'. 이미 많이 읽히는 책이기에 군더더기 설명은 필요 없겠다.

 

 

 

김광수경제연구소에서 펴낸 <한국경제의 현주소, 한계가족>(더팩트, 2013)도 같이 읽어볼 만하다. '한국 경제의 미래, 가족이 무너지고 있다'가 부제이자 문제의식. 세계적 차원에서는 남녀 성비의 문제도 중요한 사회적, 경제적 이슈가 될 듯한데, 마라 비슨달의 <남성 과잉 사회>(현암사, 2013)는 성비 불균형이 초래한 재앙적 미래를 경고한다(당연히 한국도 주요 사례국에 포함된다). 반면에 해나 로진의 <남자의 종말>(민음인, 2012)은 2009년 미국 전체 노동 인구 중 최초로 여성 비율이 남성을 넘어선 걸 계기로 쓰인 책으로 "현대 후기 산업사회는 여성에게 점점 유리해지고 있다"고 전망한다. 종합하면 남성은 점점 더 많이 태어나지만 점점 더 쓸모 없는 성이 되어간다는 것일까?

 

 

 

6. 과학

 

김웅서 위원이 추천한 책은 강신익의 <불량유전자는 왜 살아남았을까>(페이퍼로드, 2013)다. "저자는 이기적 유전자가 생명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면, 불량 유전자는 이로 인해 고통을 받는 환자들의 경험을 이해하는 데 유리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불량 유전자가 기나긴 진화의 과정 중에 왜 없어지지 않고 계속 우리를 괴롭히는지를 파헤친다." 사실 건강은 한국인의 지대한 관심사 가운데 하나인데, 정작 의학과 의료 현실을 다룬 책은 많이 읽히지 않는 듯싶다. 인문의학서 범주의 책으로 황상익, 강신익 교수의 대담집 <의대담>(메디치미디어, 2012)도 같이 묶어서 읽어봄직하다. 서울대 의대에서 의학사를 강의하는 황상익 교수의 <근대 의료의 풍경>(푸른역사, 2013)은 "우리나라에서 서양 근대의학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 시점인 1876년 개항 즈음부터 1910년의 경술국치 무렵까지 보건의료 환경의 변화를 다룬 책"이다. 의학사의 기본 자료집도 겸할 수 있겠다.

 

 

혹 가까이 있는 생명보다는 멀리, 그것도 아주 머얼리 있는 생명에 관심이 있다면 아마추어 천문학 이야기에 흥미를 느낄 수 있겠다. 티모시 페리스의 <우주를 느끼는 시간>(문학동네, 2013). "세계 최고의 과학 저술가가 그려낸 우주의 경이로움과 밤하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천문학에 한창 관심이 있던 중학생 때였다면 밤새 읽었을 만한 책이다. '지구 너머 생명체를 탐사하는 과학자들의 도전기', 마크 코프먼의 <퍼스트 콘택트>(한길사, 2013)은 우주생물학자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엿보게 해주는 책. '우주생물학 완정정복 가이드' 제프리 베넷의 <우리는 모두 외계인이다>(현암사, 2012)와 같이 읽으면 우주생물학과의 콘택트 미션은 성공이다.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고른 예술분야의 책은 엑토르 베를리오즈의 <음악여행자의 책>(봄아필, 2013)이다. '낭만음악의 거장 베를리오즈와 함께하는 음악여행'이 부제. 베를리오즈에 관한 책이 아니라 베를리오즈가 쓴 책이어서 놀라운데, "영원한 음악 여행자, 엑토르 베를리오즈가 음악을 중심으로 그의 삶을 회상한 기록들과 여행길에 음악 동료들에게 보낸 편지로 구성된 책"이다(편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닐까?). 비슷한 책으로 전수연의 <베르디 오페라, 이탈리아를 노래하다>(책세상, 2013)도 꼽아볼 수 있겠다. 물론 이건 베르디가 쓴 책이 아니라 서양사학자이자 베르디 애호가가 쓴 책이다. 작곡가들을 다룬 책으론 양기승의 <작곡가의 집>(한길사, 2013)도 있다. "30여 년간 빈에서 작곡가로 활동한 저자 양기승이 지금은 세상에 없는 작곡가들을 대신해 독자들을 그들의 집과 음악과 삶 속으로 안내한다."

 

 

 

빈(비엔나) 얘기가 나온 김에 덧붙일 만한 책은 <비엔나 1900년>(예경, 2013)이다. 흔히 '음악의 도시'라고 불리지만 "비엔나는 미술과 공예, 건축과 디자인의 도시이자, 문학과 철학 그리고 심리학의 도시였다." 놀랍게도 그 모든 성취가 1900년을 전후로 한 세기말에 이루어졌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궁금한 독자라면 110여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해봐도 좋겠다. 스티븐 툴민과 앨런 재닉의 <빈, 비트겐슈타인, 그 세기말의 풍경>(이제이북스, 2005)도 같은 시기를 다룬 책인데(원제는 '비트겐슈타인의 비엔나') 유감스럽게도 현재는 절판됐다. 빈의 현재의 모습을 알려주는 책으론 노시내의 <빈을 소개합니다>(마티, 2013)가 있다. '모던하고 빈티지한 도시' 빈에 대한 사려 깊은 안내서이다. 

 

 

 

8. 교양

 

내가 고른 교양서는 천종호의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우리학교, 2013). 현직 판사의 ‘소년재판 이야기’인데,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이렇게 적었다.

소년재판은 벌금형이나 징역형을 과하는 소년형사재판과 사회봉사를 명하거나 소년원에 보내는 소년보호재판으로 나뉘는데, 저자가 책에서 소개하는 소년재판 이야기는 모두 소년보호재판 사례다. 또한 수년간 소년재판을 담당하며 소년법정에서 만난 아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에 소개된 소년들의 안타까운 사연과 처지에 공감하면서 우리가 도달하게 되는 것은 제목대로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는 시인과 반성이다. ‘가정의 달’인 5월에는 사회적 관심사가 되기 어려웠던 소년법정의 실화들을 읽으면서 우리의 공감과 소통지수를 조금 높여보는 것도 좋겠다.

청소년 문제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높여줄 만한 책으론 박종철의 <교실 평화 프로젝트>(양철북, 2013), 그리고 나이토 아사오의 <이지메의 구조>(한얼미디어, 2013)도 참고할 만하다.   

 

 

 

9. 실용

 

이계성 위원이 추천한 책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펴낸 <일주일에 끝내는 사이버보안>(글과생각, 2013)이다. "이제 사이버 보안은 일반 개인에게도 발등의 불로 떠올랐다. 사이버 공간에서 안전한 생활을 보장할 책임은 1차적으로 국가에 있지만 일반인들도 사이버 보안에 대해 잘 알고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게 추천의 이유다. 전문분야의 일인지라 일반인이 얼마나 알고 대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주일'에 끝낼 수 있다니까 귀가 솔깃하긴 하다. 금융보안연구원에서 펴낸 <사이버경제 보안 없이 금융 없다>(해피스토리, 2011)도 비슷한 성격의 책인 듯싶고, 윌리엄 스톨링스의 <컴퓨터 보안과 암호>(그린, 2011)은 이 분야의 교과서로 보인다(800쪽 가까운 분량이다). 개인적으로 읽을 일은 없겠지만 이런 책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둔다.

 

 

10. 불교

 

이달의 주제로는 '불교'를 골랐다. 몇권의 책 때문인데, 먼저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의 <불교 파시즘>(교양인, 2013). "미국인 승려이자 불교학자인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의 책으로, 일본 파시즘과 불교가 맺은 은밀한 유착을 파헤친다." 전작인 <전쟁과 선>(인간사랑, 2009)에 대해선 지젝의 책에서 읽고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속편 격의 책이 나와 챙겨두게 됐다. 더불어 정일권의 <붓다와 희생양>(SFC출판부, 2013)도 주문해놓은 책이다. '르네 지라르와 불교문화의 기원'이 부제. 저자가 미리 펴낸 독어본 <세계를 건설하는 불교적 세계포기의 역설>(2010)의 한국어판이 아닌가 싶다.

 

 

13. 05. 04.    

 

 

 

P.S. '5월에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고른다. 개인적으로는 헤세의 소설 가운데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번역본은 계속 출간되고 있고, 아직 안 갖고 있는 것도 몇 종 된다(네댓 종을 갖고 있는 듯하다). 중학교 때 처음 읽은 책인데, 어느덧 아이가 중학생이 됐다. "아빠는 이런 책을 읽었단다."고 말을 꺼냈다가 공연히 핀잔만 들을까 싶어 그냥 포스팅만 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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