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022호)의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김환기 화백의 전기, 이충렬의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유리창, 2013)을 읽고 그의 생애를 간추렸다. 덕분에 김환기 에세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환기미술관, 2005)와 김향안 여사의 에세이 <월하의 마음>(환기미술관, 2005)도 같이 구입했다. 전기는 평전과 달리 작품세계보다는 연대기적 생애 기술에 치중하고 있어서 다른 책들도 곁들여 읽는 게 좋을 듯싶다.

 

 

주간경향(13. 04. 23) ‘한국의 피카소’ 김환기의 생애

 

김환기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나온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온전하게 복원한 김환기 전기’를 표방한다.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화가이자 이중섭, 박수근과 함께 ‘한국 화단의 3대 블루칩’으로 꼽히지만 수화(樹話) 김환기에 대한 온전한 전기는 없었다는 게 저자가 팔을 걷어붙인 이유다. 저자는 이미 <간송 전형필>과 <혜곡 최순우, 한국미의 순례자>를 연이어 펴냄으로써 문화·예술인 전기의 새로운 물꼬를 튼 바 있다.

 

김환기는 어떤 생애를 살았던가. 전남 신안군 안좌도에서 천석지기 지주의 1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도쿄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귀향했다가 대학 진학을 위해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재차 유학의 길을 떠난다. 손이 귀한 집이라 혼례를 치르긴 했지만 그는 어느 것에도 구애받고 싶지 않았다. 그런 기질에 맞는 것은 예술뿐이었다. 스무살 청년 김환기가 일본대학의 예술학원 미술부에 입학한 이유인데, 흥미롭게도 아버지는 아들의 ‘환쟁이’ 공부를 반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주로 살 테니 따로 직업을 가질 필요가 없는 이상 무슨 공부를 하든 상관 없을 것이었다.

스스로 처녀작이라고 일컬은 ‘종달새 노래할 때’로 일본 화단의 공모전에서 입상한 김환기는 조선의 전통을 그림에 접목하겠다는 결심을 안고 귀국한다. 김용준, 정지용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친교를 맺고 1941년 첫 국내 개인전을 여는 등의 활동을 하던 그는 곧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1942년 부친이 사망하자 재산을 정리하면서 그는 아내와도 이혼한다. 그러고는 백석과도 교분을 가졌던 일본 시인 노리다케 가츠오의 소개로 이화여전 출신의 변동림을 만난다. 변동림은 시인 이상과 사별한 처지였고 김환기는 딸 셋을 둔 이혼남이었지만 그는 간곡한 구애로 마음을 얻는다. 두 사람은 양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1944년 결혼식을 올린다. 변동림은 결혼하면서 김향안으로 개명했는데, 향안은 원래 김환기가 쓰던 호였다. 김향안은 이후 김환기의 ‘절대적 동반자’가 된다. 그즈음에 김환기는 백자 항아리에서 조선의 정서와 정신을 발견하면서 적극적으로 수집에 나선다. 백자의 발견은 그가 새로운 작품세계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었다.

 



한국전쟁을 겪고 대학 강단에 서지만 한국은 예술가의 꿈을 펼치기엔 너무 좁은 땅이었다. 천박한 문화예술계의 풍토나 국민들의 문화 경시 풍조도 감환기의 마음을 더 넓은 곳으로 돌리게 했다. 그는 자신의 그림이 세계 미술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그런 남편의 뜻을 펴보기 위해 아내는 프랑스로 떠났다. 1955년의 일이다. 파리의 한 화랑에서 보내온 초청장을 손에 들고 김환기 역시 이듬해 파리로 향한다. 몇 차례 개인전을 열기도 했지만 그는 이 예술의 도시에 안착하진 못했다. 그는 1959년에 귀국해 홍대 미대 교수로 복직하고 학장도 역임한다. 그렇지만 1963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가하게 된 걸 계기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한 번 더 예술가로서의 성공을 꿈꾼다. 경제적 곤궁에 시달리면서도 화가의 자존심 하나로 창작의 열정을 마음껏 불태운 시기였다. 하지만 꿈을 이루기 전에 1974년 그는 척추 디스크 수술 후 회복 중 불의의 낙상으로 세상을 떠난다. 김광섭의 시 ‘저녁에’에서 착상을 얻은 대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는 고국과 그리운 사람들에 대한 향수를 예술로 승화시킨 그의 대표작이다.

 

 

김환기에 관한 평전은 여럿 나와 있다. 하지만 대개 그의 작품세계의 발전과정을 기술한 미술평론가들의 저작이고 분량도 얇아서 이 걸출한 서양화가의 생애를 전체적으로 들여다보기엔 부족했다. 그런 점에서 ‘정본 김환기 전기’를 목표로 한 이 책은 지난해에 나온 ‘한국미술의 거장 김환기’전(展) 도록 <김환기 1913~1974>(마로니에북스)와 함께 책으로 만날 수 있는 가장 유익한 자료이다.

 

13. 0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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