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오전에 (실상과 다르더라도) 느긋한 마음으로 '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세 권 이상의 책을 낸 저자나 역자가 대상인데, 이주에는 이탈리아 작가 안토니오 타부키(1943-2012)와 중국의 일본사상사 연구자 쑨거, 그리고 오랜만에 책을 낸 자칭 '전직 출판평론가' 표정훈씨를 무대에 올려놓는다.

 

 

먼저 국내 독자들에겐 생소한 편인 안토니오 타부키의 책이 '인문서가의 꽂힌 작가들' 시리즈로 세 권이 한꺼번에 나왔다(이 시리즈의 다른 작가로는 조르주 페렉이 있다). '안토니오 타부키 선집'을 꾸릴 기세인데, 8권 정도가 기획돼 있다. 이번에 나온 <꿈의 꿈>, <플라톤의 위염>, <수평선 자락>은 주로 1990년대 전후에 발표된 에세이들이다. 현대 이탈리아 작가들 중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그의 문학적 개성이 우리에겐 어떤 인상으로 남을지 궁금하다. 가령 <꿈의 꿈> 같은 건 작가가 사랑한 스무 명의 창조적 개인들의 꿈을 기술하고 있는데, '작가이자 의사, 안토 체호프의 꿈'을 보니 체호프의 전기와 작품이 재료가 돼 실제로 꾸었을 법한(그리고 잊어먹을 수도 있는) 꿈 이야기가 펼쳐진다. 독특한 발상인 것만은 틀림없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타부키의 포르투갈 사랑이다. 포르투갈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의 작품을 번역하고 연구서까지 낸 경력이 있는데, 그 정도는 그 사랑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타부키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았지만 평생 포르투갈을 사랑했고 포르투갈 여자를 아내로 삼았으며 포르투갈의 문화를 연구하고 소개했다. 피사대학에서 포르투갈 문학을 전공했고 리스본의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일했으며 시에나 대학에서 포르투갈 문학을 가르쳤고 페르난두 페소아의 작품을 번역했다. 또 그의 작품들 상당수는 문학, 예술, 음식에 이르기까지 포르투갈의 흔적들로 채워져 있다. 포르투갈은 그에게 영혼의 장소, 정념의 장소, 제2의 조국이었다.

작년 봄 그는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세상을 떠났고 고국 이탈리아에 묻혔다고 한다. 포르투갈에서 문화훈장이라도 주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타부키의 소설로는 <페레이라가 주장하다>(문학동네, 2011)가 이미 나와 있다. 그리고 페소아의 책으론 <불안의 책>(까치, 2012)이 작년에 소개된 바 있는데, 이 방대한 분량의 책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생긴다(물론 책은 구입했지만 현재로선 어디에 두었는지 찾을 수 없다). 잠 못 드는 봄밤에는 '타부키와 함께 페소아를' 읽어보아도 좋겠다... 

 

 

 

두번째 저자는 <아시아라는 사유공간>(창비, 2003), <다케우치 요시미라는 물음>(그린비, 2007)이란 책으로 소개됐던 중국의 연구자 쑨거. 1955년생이고 현재는 중국사회과학원의 연구원으로 있다.

 

 

이번에 논문집 <사상이 살아가는 법>(돌베개, 2013)과 함께 번역자이자 같은 동아시아 연구자인 윤여일과의 대담 <사상을 잇다>(돌베개, 2013)가 나란히 출간됐다. 연배로 치면 '다케우치 요시미-쑨거-윤여일'이라는 고리도 가능하다. 어떤 물음, 어떤 사상이 이어지고 있는가. 소개에 따르면 '동아시아 문제'와 '사상의 번역' 등이 공통의 화두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루쉰>(문학과지성사, 2003)과 <일본과 아시아>(소명출판, 2004)에 이어서 재작년에 두 권의 선집 <고뇌하는 일본>과 <내재하는 아시아>가 출간됐는데, 이 두 권 모두 윤여일의 번역이다. 늘 마루야마 마사오와 함께 거론된다는 다케우치는 마루야마와는 달리 학계의 변방에 있었고 '학문적 이방인'이었다. 그렇지만 특이하게도 중국학자 쑨거에게서 자신의 계보를 얻는다. 말하자면 '루쉰-다케우치 요시미-쑨거'라는 계보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일본 사상계에서 아직 ‘전통’으로 자리 잡지 못한 특이한 사상가이다. 그를 자리매김하는 것, 계승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의미다. 그는 학술적인 방식으로 글을 쓰지 않았기에 엄밀한 의미에서 ‘학자’가 아니었다. 평론가였고, 늘 문학을 자신의 영혼이 돌아갈 거처로 삼았다. 그럼에도 일본근대사상사의 중요한 모든 과제에 관심을 기울였고, 역사에 그 흔적을 남겼다. 하지만 다케우치 요시미는 일본이 아닌 중국에서 사상의 동반자인 루쉰(1881-1936)을 만났고, 그의 사후에도 쑨거라는 이방의 계승자를 얻는다.

 

한국에서 이 계보는 거의 전적으로 윤여일의 번역 작업으로 소개될 수 있었다. 흥미로운 일이면서 주목할 만한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연구자의 <여행의 사고>에 뒤이은 <사상의 여정> 또한 기대해봄직하다.

 

 

표정훈의 <철학을 켜다>(을유문화사, 2013)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입문서이고 가이드북이다. 제임스 러브록, 맬컴 엑스, 마틴 루서 킹, 마르코스 부사령관 같은 인물들도 포함돼 있지만 대략적으로는 '철학에 관한 책'이거나 '철학 인물지'에 해당한다. 저자는 '타자의 문제'라는 화두로 고대 그리스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철학자들'의 사상과 행적을 추적하고 요약한다. 하룻밤에 읽기엔 분량이 좀 되지만 이틀밤 정도라면 읽어봄 직하다. <하룻밤에 읽는 동양사상>(랜덤하우스코리아, 2010)이나 저자의 스승 강영안 교수와의 대담 <철학이란 무엇입니까>(효형출판, 2008)과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어느 순간 생각이 'ON AIR' 상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13. 04. 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