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오랜만에 쓰게 된 연재인데, 어떤 주제를 고를까 고심하다가 최근에 관심을 갖게 된 '화식(요리) 가설'을 글감으로 삼았다. 자연스레 관련서 몇 권에 대해 적었다.
한겨레(13. 03. 02) 요리와 인류의 진화 역사
우리는 저마다 다양한 식성을 갖고 있지만 인간이란 종은 잡식동물이다. 처음부터 온갖 것을 다 먹지는 않았다. 주로 식물성 음식을 섭취한 호미닌(사람족)이 등장한 게 250만년 전이다. 수렵채집 생활을 하면서 주로 식물성 음식을 섭취했지만 동물성 음식도 상당량 섭취한 현생인류는 1만5000년 전에 나타났다. 고고인류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약 250만년 전에서 200만년 전 사이 어느 시점에 인간의 조상은 초식동물에서 잡식동물로 변화했다. 중요한 것은 호미닌의 육류 섭취량이 증가하기 시작한 시점과 두뇌 크기가 커지기 시작한 시점이 거의 일치한다는 점이다. 인간을 다른 영장류와 구별해주는 것이 큰 두뇌와 그 기능이라면 고기 섭취는 인간과 유인원을 구분해주는 주요 특징 가운데 하나다.
인간을 ‘생각하는 잡식동물’이라는 관점에서 조명한 존 앨런의 <미각의 지배>(미디어월, 2013)에 나오는 내용이다. 문제는 두뇌가 굉장히 많은 신체 에너지를 소모하는 기관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의 조상은 고칼로리 식단이 필요했다. 고칼로리 식물성 음식과 함께 육류 섭취량을 늘리는 게 진화에 유리했다. 이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 불의 사용이다. “불을 사용한 조리 덕분에 인류의 조상은 고기뿐 아니라 칼로리가 높지만 소화하기 힘든 식물성 음식도 잘 소화하게 되었다.”
이 정도만 읽어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는 책이 있다. 리처드 랭엄의 <요리 본능>(사이언스북스, 2011)이다. 지은이는 ‘불로 요리하기’가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불에 익히면 음식이 더 안전해지고 맛이 더 좋아지며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에너지의 양이 늘어난다. 불의 사용이 고기 섭취를 용이하게 했고 소장의 크기를 줄이는 대신 두뇌 크기의 비약적인 증가를 가능하게 했다. 인간을 ‘불로 요리하는 동물’이라고 정의하는 게 과장이 아니고,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를 ‘인간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도 일리가 있다.
화식(火食)의 중요성은 생식주의자들에 대한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생식주의자란 식단의 100퍼센트를 익히지 않은 상태로 섭취하는 사람을 가리키는데, 이들의 경우 공통적으로 체중이 감소하는 결과가 나타난다. 여성은 체질량 지수가 낮아지고 생리가 중단되거나 불순해진다. 원시 채집경제에서 여성도 많은 육체노동을 감당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생식주의는 진화의 역사에서 결코 성공하기 어려운 전략이다. 우리의 몸이 화식과 잡식에 적응해온 이유다.
매우 유익한 시각과 정보를 제공해주지만 <요리 본능>은 마무리가 아쉬운 책이다. 주석을 옮겨놓으면서도 정작 참고문헌은 빼놓았기 때문이다. 잘 요리된 만찬에 디저트가 빠졌다고 할까. 가령 인류의 진화에 대해서 ‘클라인(Klein) 1999’를 참고하라는 식인데, 이건 클라인이 1999년에 낸 책이라는 뜻이지만 참고문헌이 안 붙어 있으니 무슨 제목의 책인지 알 수가 없다. 참고문헌이 불필요한 독자를 위한 배려인지는 모르겠으나 교양과학서로 분류되는 책이라는 걸 고려하면 유감스러운 판단이다. 덧붙이자면 최근에 나온 리어 키스의 <채식의 배신>(부키, 2013)에는 아예 주석과 참고문헌이 통째로 빠져 있다. 지은이가 채식주의에서 이탈한 것이 윤리의식이나 참여 여부가 아니라 ‘정보력’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책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없는 것은 아이러니다.
13. 03. 01.
P.S. 교양과학서를 읽을 때 눈여겨 보는 것 중의 하나는 각주(미주)와 참고문헌을 제대로 싣고 있느냐는 점이다. 분량 때문에 누락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매우 '반과학적'이라고 생각한다(정 비용이 부담스럽다면 e-북으로라도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당장은 어찌할 수 없어서 <요리 본능>은 원서를 구했고, <채식의 배신>은 원서를 주문해놓은 상태다. 오늘 오전에 확인해보니 <미각의 지배>를 읽다가 언급되길래 구입한 <구석기 다이어트>(황금물고기, 2012)에도 주와 참고문헌이 몽땅 빠져 있다. 이런 '배려'에 불만을 가진 독자도 있다는 걸 출판사에서는 고려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