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기간에 읽은 건, 아니 아직 다 읽진 않았으니 읽고 있는 건 고종석의 <해피 패밀리>(문학동네, 2013)와 조주은의 <기획된 가족>(서해문집, 2013)이다. <해피 패밀리>는 읽었고 <기획된 가족>은 읽는 중이다. 소설과 보고서라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가족'이란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둘은 공통적이다. 그래서 고른 것이기도 하지만.

 

 

<해피 패밀리>는 소설집 <엘리아의 제야>(문학과지성사, 2003) 이후 (소설가로서는) 오랜 침묵 끝에 펴낸 <독고준>(새움, 2010)에 이어진 것이지만, 지난해 절필을 선언한 작가의 마지막 작품이기도하다. 알라딘에서는 이제 흔적도 찾을 수 없는 처녀작 <기자들>(민음사, 1989)과 품절된 <제망매>(문학동네, 1997)를 포함하면 '고종석 소설'로 분류될 수 있는 다섯 권의 책이다. '이게 다예요.'

 

아직 안 읽은 독자에겐 스포일러가 될 수 있겠기에 어느 정도 수위에서 줄거리를 소개하는지 관련 기사들을 찾아봤다. 인터뷰 기사도 몇 개 읽고. '금지된 사랑'을 다룬 작품이라는 정도는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중요한 사건에 대해서 '그 일'이라고만 처리하는 건 장편소설 스타일이 아니다. 여백과 휴지로 말하는 <해피 패밀리>는 '장편소설'을 표방하고는 있지만 독백들의 모음이고, 오히려 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각자의 서정적 진실을, 아니 이 작품의 경우엔 '서정적 위선'들을 모아놓은 시. 그 시적 상상력이 극대화되는 건 가장 나이 어린 한지현(2006- )이 외할머니와 나누는 대화 속에서다. 두 사람은 식구의 경계를 무한히 확장시켜 나간다. 

"응, 따지고 보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다 우리 식구지."

"그게 무슨 말이야?"

"위로 위로 올라가보면 조상이 똑같을 테니까."

"단군 할아버지 말하는 거야?"
"단군 할아버지도 그렇고, 또 더 위로 위로 올라가면 세상 사람들 모두의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있을 거 아냐?"

"응 그렇구나. 사람들은 모두 식구구나. 그럼 저기 경비 할아버지도 식구고 만둣집 아줌마도 식구고 봄이도 율이도 식구네?"

나는 신이 나서 소리쳤다.

"그렇지, 그렇지. 그런데 사람들만이 아니란다. 원숭이, 고양이, 개, 사자, 참새, 꽁치, 소나무, 대나무, 장미꽂 이런 것들도 따지고 보면다 식구란다."

웃음이 터져나왔다.

"꽁치나 장미꽃이 우리 식구라구?"(182쪽)

이것이 말하자면 식구의 최대 규정이다. 반면에 지현의 아빠 한민형은 식구가 무엇이냐는 딸의 물음에 가족과 친척을 구분하고 부모, 자식과 같이 사는 친척 정도까지만 식구라고 임시로 정의한다. 그것이 최소 규정이다. 가족이라는 사회적 단위는 그 규정들 사이의 위태로운 균형 잡기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이 소설에서 서로 가장 불화하는 관계인 어머니 민경화(1953- )와 아들 한민형(1980- )이다. 레비스트로스가 자주 쓰는 표현을 빌리면, 민경화는 가족의 경계를 과대평가하고 한민형(과 한민희)은 과소평가한다.

 

민경화는 죽은 친구의 딸 한영미(1983- )를 입양하여 딸로 삼지만 절반은 하녀(가사 도우미?)로 대우한다. 식구이지만 식구가 아닌 것. 이런 거리감각은 소설에서 '속물적'이라고 지칭되지만 한편으론 균형감각이기도 하다. 이 균형감각이 무너지면 어떻게 되는가? 한민형과 한민희(1977-2006) 오누이의 근친관계가 된다. 17살의 민희는 14살 민형의 콧등에 담배연기를 뿜어대다가 입술에 입을 맞춘다. 

"왜?"

민형이가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왜는. 그냥. 오누이끼리 키스를 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197쪽)

한민형이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법대에 진학하는 대신에 인류학을 전공으로 선택하는 건 이 원초적 질문과 금지된 사랑을 감당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대학에서 그는 자기가 원하던 걸 배우지 못한다. 그는 모든 위선을 혐오하는 허무주의자 주당으로 남는다. 이 소설의 교훈은 무엇일까? 나는 가장 어린 지현의 말에서 찾고 싶다. 꽁치나 장미꽃도 다 식구라는 외할머니의 말에 지현은 좀 난감해하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할머니 말씀을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바보가 아닌 것 같았다. 설령 바보라 할지라도 엄마나 아빠만큼 바보는 아닌 것 같았다. 그렇지만 꽁치가 내 식구라고? 어떡하지... 나 꽁치구이 좋아하는데...(183쪽)

꽁치도 같은 식구라면 멋진 일일 수 있지만 같은 식구끼리 잡아먹는 건 곤란할 테니까 좀 난감하다. <해피 패밀리>는 이 난감함을 좀 오래 붙들고 있는 소설로 읽힌다.

 

 

여성학자 조주은의 <기획된 가족>은 '맞벌이 화이트칼라 여성들은 어떻게 중산층을 기획하는가?'란 물음을 던지고 그에 답하는 책이다.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이 근간이 된 듯한데, 첫 저작인 <현대가족 이야기>(이가서, 2004)가 석사학위논문은 단행본으로 재구성한 것과 비슷하다. '현대'는 여기서 '현대'라는 대기업을 가리킨다(한자도 똑같이 現代다!). 이번에 <페미니스트라는 낙인>(민연, 2007)과 같이 주문하려고 했더니 절판된 책이다.

 

여하튼 저자의 관심이 노동자 가정에서 중산층 가정으로 이동해온 셈인데, 저자 왈 "나는 사람들에게 '신분 상승의 욕구'로 생산직 노동자 가족에서 중간계급으로 주제를 선회했노라며 자조 어린 농담을 하기도 했다." 다양한 참여자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조사보고서 형식이어서 사회학적 문제의식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힌다.

 

제목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자면, 행복한 가족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기획되고 관리되는 것이다. <해피 패밀리>의 가족들이 함께 읽고 독서토론이라도 했더라면 좋았을 뻔했다...  

 

13. 0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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