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1월도 마지막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마무리한 일과 못다한 일들 사이에서, 읽은 책과 미처 못 읽은 책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2월의 읽을 만한 책들을 골라놓는다. 날이 조금 풀린 모양이다.

 

 

 

1. 문학

 

김미현 교수가 고른 책은 김승희 시인의 <희망이 외롭다>(문학동네, 2012)이다. 시집으로는 꽤 오랜만이지 싶다. 중견과 원로 시인들의 시집이 최근에 연이어 출간됐는데, 이성복의 <래여애반다라>(문학과지성사, 2013)과 황동규의 <사는 기쁨>(문학과지성사, 2013)이 반가운 시집들이다. 이성복의 <그 여름의 끝>(문학과지성사, 1990)과 황동규의 <몰운대행>(문학과지성사, 1991)을 손에 들던 때가 기억에 생생한데(대학의 구내서점에서였다), 어느덧 20년도 더 전의 일이다. 그간에 사는 기쁨인 좀 늘었을까?

 

 

 

같이 읽을 소설로는 움베르토 에코의 신작 <프라하의 묘지>(열린책들, 2013)를 고른다. 지난 연말에 나온 칼럼 <가재걸음>(열린책들, 2012)를 더 얹어도 좋겠다. 카프카의 작품들을 조만간 다시 읽을 계획인지라 자연스레 프라하 이야기에도 눈길이 간다. 그렇다고 '묘지'에 오래 머물 건 아니지만...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추천한 책은 김형오의 <술탄과 황제>(21세기북스, 2012)다. 저자가 전 국회의장이란 점이 눈에 띄는데, 아마도 정치인 저자의 책으론 가장 특이하면서 대중적인 경우가 아닐까 싶다. 아마추어 역사가의 책이긴 하지만 "이 책이 의미 있는 것은 전쟁의 무대였던 터키 이스탄불을 여러 차례 다녀왔고, 이스탄불 유수의 대학과 연구소에 틀어박혀 수백 권의 책들과 씨름했으며, 수십 명의 학자-전문가들과 심도 있는 인터뷰를 시도한 내공이 전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역사 팩션물의 또 다른 전형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천자는 적었다.

 

덕분에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에도 흥미를 갖게 되는데, 막스 칼로의 소설 <콘스탄티누스의 선택>(예담, 2008)과 함께 역사학자 주디스 헤린의 <비잔티움>(글항아리, 2010)도 같이 읽어볼 만하다.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에 관해서는 존 줄리어스 노리치의 <비잔티움 연대기>(바다출판사, 2007)이 가장 자세하지만 동시에 3권짜리라 좀 부담스럽다.  

 

 

동시에 중세 이슬람에도 눈길을 줄 만한데, 카렌 암스트롱의 <이슬람>(을유문화사, 2012)를 입문서로 치면 거기에 조너선 라이언스의 <지혜의 집, 이슬람은 어떻게 유럽문명을 바꾸었는가>(책과함께, 2013)과 디미트리 구타스의 <그리스 사상과 아랍문명>(글항아리, 2013)이 동서문화 교류에 관한 책으로 더 얹을 수 있다. 개인적으론 리처드 루빈스타인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아이들>(민음사, 2004)와 함께 같이 읽어보려고 계획중이다(루빈스타인의 책은 절판된 상태에서 작년인가 중고서적으로 구했다).

 

 

 

3. 철학

 

박인철 교수가 추천한 철학서는 세네카의 <화에 대하여>(사이, 2013)다. 사실 '화'를 주제로 한 책은 드문 편인데('분노'라고 하면 좀 다르지만) 틱낫한의 <화>(명진출판사, 2002) 정도가 국내에서는 많이 읽히지 않았나 싶다. 네로황제의 스승이었던 세네카는 화에 대해서 뭐라고 말하는가. "대략 이천여 년 전에 쓰인 위의 책에서 그는, 화라는 것이 참된 인간의 본성과 일치하는 것이 결코 아니며, 화라는 감정을 느끼고 이를 표출하는 것 자체가 건전한 인간성을 침해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화가 지니는 흉포성과 해악을 구체적 역사적 실례를 통해 세밀히 밝히면서, 화는 인간의 삶을 위해 일절 도움이 되지 않음을 주장한다. 이러한 화의 제거를 통해 세네카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스토아 철학자답게 마음의 평화이다." 하긴 네로의 횡포에 대해서 화를 내봐야 자기가 다치는 것 말고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도 처지가 비슷한가...

 

 

설 연휴도 앞두고 있는 만큼 동서양의 지혜를 들려주는 책들에도 손길이 가기 쉬운데, 신정근 교수가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21세기북스, 2011)에 이어서 펴낸 <불혹, 세상에 혹하지 아니하리라>(21세기북스, 2013), 중국의 명강사이자 저술가 이중톈의 고전 강의 <이중톈, 사람을 말하다>(21세기북스, 2013), 그리고 교육학자 하워드 가드너의 <진, 선, 미>(북스넛, 2013) 등이 눈길을 끄는 책들이다.

 

 

 

4. 정치/사회

 

마인섭 교수가 추천한 책은 함성득 교수의 <대통령 당선자의 성공과 실패>(나남, 2012)다. 대통령학 전공자인 저자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활동과 관련한 조언을 담았다. 첫 총리 후보자가 낙마하고 아직 내각 인선은 오리무중인 상태이지만 2월에 취임식이 있는 만큼 조만간 어떤 인물들이 박근혜 정부를 이끌게 될지 가시화될 것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을 수용한다면 박근혜 정부의 성패도 조만간 점쳐볼 수 있으리라. 과연 측근정치와 회전문인사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경제신문사들에서 펴낸 <박근혜 사람들>(한국경제신문, 2013)과 <박근혜 시대 파워엘리트>(매일경제신문사, 2013)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얼마나 중복되는지 살펴보는 것도 판단의 한 척도가 될 것이다.

 

 

우리의 가까운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보도록 해주는 책들을 더 보태자면 김동춘 교수의 <대한민국 잔혹사>(한겨레출판, 2013), 강준만 교수의 <증오 상업주의>(인물과사상사, 2013), 그리고 '우리 시대 여성 노동자 8인의 이야기'를 담은 박수정의 <여자, 노동을 말하다>(이학사, 2013)도 봄이 오기 전에 읽어봄직하다.

 

 

 

아, 시야를 국외로 돌리면, 우리의 거울이자 반면교사 미국의 민주주의가 왜 나빠졌는지 분석한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후마니타스, 2013), 한승동 기자의 <지금 동아시아를 읽는다>(마음산책, 2013), 그리고 '이달의 평전'이라고 할 만한 피터 폽햄의 <아웅산 수치 평전>(왕의서재, 2013) 등도 유심히 읽어볼 만한 책들이다.  

 

 

 

5. 경제/경영

 

김은섭 위원이 고른 책은 류영호의 <아마존닷컴 경제학>(에이콘출판, 2013)이다. "<아마존닷컴 경제학>은 지난 해 출간된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의 평전 <원클릭>을 제외하고 국내에 이렇다할 아마존닷컴 관련서가 없었다는 점, 그리고 저자 류영호가 국내 최대의 온라인서점인 교보문고에서 CEO 직속부서인 변화추진실 차장을 맡고 있는 현장통이라는 점에서 반가운 책"이라고. 아마존의 혁신 모델이 알라딘에게도 통할 수 있는지, 문득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빠른 게 다 좋은 건 아니라고 설파하는 프랭크 파트노이의 <속도의 배신>(추수밭, 2013)에도 눈길이 간다. 배송이 늦어지는 속 터지는 일이지만, 자주 오늘 할일을 내일로 미루는 나 같은 이들에겐 반가운 책이다.

 

 

한편 성공 경제학의 정반대편에서 위기 자본주의의 대안을 모색하는 책들도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펴내는 무크지 <위기, 반란, 대안>(책세상, 2013), 리처드 울프의 <경제를 점령하라>(돌베개, 2013), 그리고 존 홀러웨이의 <크랙 캐피털리즘>(갈무리, 2013)이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각기 다른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책들이다.

 

 

 

6. 과학

 

김웅서 위원이 추천한 책은 홍성욱 교수의 <그림으로 보는 과학의 숨은 역사>(책세상, 2012)다. "과학사 책답게 고대 그리스의 기하학에서부터 중세의 천문학과 연금술, 그리고 근대 뉴턴의 물리학과 라부아지에의 화학, 현대의 뇌과학과 최근 광우병 사태를 몰고 왔던 프리온 이야기까지 물리학, 천문학, 화학, 생물학의 역사가 총망라되어있다." 거기에 덧붙여 많은 그림과 조각에 대한 구경도 덤으로 챙길 수 있다고. 오래 전 과학사개론 강의를 들을 때 이런 책이 있었더라면 과학사가 좀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싶다. 개인적으로는 최근에 제임스 매클렐란 등의 <과학과 기술로 본 세계사 강의>(모티브북, 2006)와 존 그리빈의 <과학>(들녘, 2004)을 구입했는데, 나란히 짝지어 읽어볼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의 <"새로운" 무의식>(까치글방, 2013)을 얼마전부터 책상맡에 두고 있는데, 작년에 손에 들었던 브루스 후드의 <지금까지 알고 있던 내 모습이 모두 가짜라면>(중앙북스, 2012)와 이어지는 대목이 있어서다. 로버트 커즈번의 <왜 모든 사람은 (나만 빼고) 위선자인가>(을유문화사, 2012)와 함께 이달에는 이 주제에 관한 독서를 일단락짓고 싶다.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고른 책은 케네스 클라크의 <그림을 본다는 것>(엑스오북스, 2012)이다. 서양미술사와 미술감상 분야의 고전. 클라크의 책으론 <누드의 미술사>(열화당, 2002)도 유명한데, 최근에 나온 프랜시스 보르젤로의 <누드를 벗기다>(시그마북스, 2012)와 비교해서 읽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한권 더 얹자면 제프 다이어의 사진 에세이 <지속의 순간들>(사흘, 2013). 존 버거의 에세이 선집이자 비평적 연구서의 저자이고 롤랑 바르트의 사진론 번역자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차세대 존 버거'라고 할 수 있을까(58년생이니까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26년생인 존 버거와는 한 세대 정도 차이가 나니까). 지적인 예술가의 이미지다. 참, 번역은 소설가 한유주 씨의 솜씨다.

 

 

 

8. 교양

 

내가 고른 교양서는 김종덕 교수의 <음식문맹자, 음식시민을 만나다>(따비, 2012)이다. 우리 먹거리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슬로푸드운동을 펼치고 있는 저자의 입장은 책의 제목에 잘 집약돼 있다. 문제의식을 간추리면 이렇다.

음식 소비자로서 대다수 현대인들은 먹을거리의 생산자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음식에 대한 지식도 부족하고 음식이 가져다주는 즐거움도 맛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음식문맹자는 농업과 농민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먹을거리는 선택할 때는 식품회사의 광고에 의존한다. 또 식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서 대충 때운다. 음식문맹자는 먹을거리를 소비하면서 윤리적 소비를 고려하지 않는다. 음식문맹자는 음식교육에 무관심하며 기본적 인권의 하나인 식량권에도 무지하다. 이러한 음식문맹 상태가 방치되는 동안에 우리 주변에는 글로벌푸드, 패스트푸드, 가공식품, 유전자 조작식품이 범람하게 됐다. 음식문맹은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기도 하지만, 더 나아가 지역농업과 경제의 침체, 그리고 지구온난화까지 야기한다. 음식문맹에서 벗어나 음식시민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음식시민이란 “능동적인 자세로 음식에 대해 성찰하고, 음식의 생산·유통·소비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사람”을 말한다. 

 

 

뒤늦게 미식가 대열에 나설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음식문맹은 조금씩 벗아나는 게 좋을 듯싶어서 관련서들을 몇권 구입하기도 했다. 김준의 <바다맛 기행>(자연과생태, 2013)과 채희숙의 <특산물 기행>(자연과생태, 2012), 그리고 황교익의 <미각의 제국>(따비, 2010) 등이다. 이제 초급이니 아직 갈길이 멀었다...

 

 

 

9. 실용

 

이계성 위원이 추천한 책은 이상현의 <한옥과 함께하는 세상여행>(채륜서, 2012)이다. "이 책은 한옥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목수 일까지 배우고 동서양의 고전을 섭렵한 한옥 연구가의 새 저작이다. 이미 한옥학 개론서 격인 <즐거운 한옥 읽기 즐거운 한옥 짓기>를 비롯해 <이야기를 따라가는 한옥 여행> 등의 저서가 있다. 한옥과 인문학을 주제로 강의도 하는 저자가 이번에는 한옥에 숨어 있는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이번에 찾아 보니 한옥 관련서도 여럿 나와 있다. 신영훈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한옥>(현암사, 2005), 김도경의 <한옥살림집을 짓다>(현암사, 2004), 그리고 김종남의 <한옥 짓는 법>(돌베개, 2011) 등이 대표적이다. 책을 보다 보면 또 욕심이 날지도 모르겠다...    

 

 

 

10. 유대인

 

내 맘대로 고른 주제는 유대인이다. 카프카를 다시 읽으려다 보니 관심을 갖게 된 주제다. 국내 저자가 쓴 <유대인 이야기>(행성B잎새, 2013)도 나와 있고, 랍비 조셉 텔루슈킨의 <죽기 전에 한번은 유대인을 만나라>(북스넛, 2012)도 베스트셀러다. 우치다 타츠루의 <유대문화론>(아모르문디, 2011)도 구입해던 책이니 다시 찾아봐야겠다.

 

13. 01. 31. 

 

 

P.S. 2월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토머스 핀천의 <중력의 무지개>(새물결, 2012)를 골랐다. 책값이 나로호 발사체만큼이나 비싼 게 흠이긴 하지만 10년도 더 전에 사놓은 원서가 아까워서라도 읽어보려고 한다. 두 번은 실패하고 나서야 다 읽게 될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중력의 무지개'를 찾아서 떠나보는 것도 괜찮은 독서여행이지 않을까 한다. 흠, 그런데, 어떻게 빠져나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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