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한차례씩 연재하는 프레시안의 '3인 1책 전격수다'를 발췌해 옮겨놓는다(전문은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30111113847§ion=05 를 참고하시길). 지난 연말에 가진 좌담에서 다룬 책은 존 그레이의 <불멸화 위원회>(이후, 2012)였다.

 

 

 

프레시안(13. 01. 11) 냉동된 지도자의 시체…그는 신이 되려 했다!

 

(...)

 

이권우 : 영국에서의 심령주의는 다윈주의 충격에 대한, 과학으로 무장한 세속주의의 대응 같아요. 구체적으로 34쪽을 보면 "인간과 지각 능력을 가진 모든 존재들이 그토록 기나긴 진보의 과정을 기껏 거치고 나서 완전히 소멸할 운명에 이른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생각이다. 하지만 인간 영혼의 불멸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 세계의 소멸이 그리 끔찍한 전망으로 여겨지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나오죠. 이 구절이 영국 심령주의자들의 기본적 속성 같아요. 우리 육체가 불멸한다는 게 아니라 영혼이 사후에도 지속된다는 것, 이 사후에 지속하는 영혼이 계속 진화한다고 생각했다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19세기 말 고전학자 프레더릭 마이어스는 "과학은 죽는다는 것이 '더 이상 물리적인 재앙으로 중단되지 않고 무한히 먼 목적을 향해 계속 움직여 나가는 도덕의 진화 과정' 상에 있는 한 사건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 줄 터"라는 믿음을 가졌지요. 심지어 본인이 죽기 전에 봉인된 편지를 친구에게 남기고, 나중에 유령이 되어 영매를 통해 그 편지와 똑같은 내용의 신호를 보내겠다고 했죠. 결국 같지 않다는 게 드러났지만.(웃음)

 

김용언 : 영국 심령주의자들의 한계는 엘리트라는 데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다들 좋은 가문 출신의 학자, 교수, 물리학자, 작가 등이었지요. 이 사람들이 꿈꿨던 사후 세계라는 게, 자신들의 그 좁은 귀족 그룹 이외의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 곳이잖아요. 상류층 사람들이 그 상류층의 삶을 사후에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갖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이미 19세기 말에 이르면 자신들이 누려왔던 특권이 무너져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고 어떻게든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이었을 텐데, 자신의 계급이 사라지고 있다는 상황에 대한 불안한 예감도 심령주의 부흥에 크게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이권우 : 맞습니다. 101쪽에 보면 유령과의 교차 통신에 '정신적 우생학' 실험이 포함되잖아요. 우생학은 결함을 없애는 걸 목표로 하는 학문입니다. 심령학자들은 사후 육신에 결함이 없을 거라고 믿었고요. 그러니까 양쪽 모두 과학의 어떤 성과를 받아들이면, 인류가 과거에 발생한 그 어떤 수준보다도 더 높이 다다를 수 있다고 믿었다는 거지요. 우생학이 대체로 엘리트 중심이고 지배권력 중심이다 보니까, 심령주의에 빠진 인물들도 엘리트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영국인들의 불멸의 꿈은 엘리트 중심 우생학이 심령주의와 얽히면서, 다윈의 결과를 왜곡시키고 그에 저항하려 했던 측면이 있습니다.

 

 

이현우 : 이 책에선 영국과 러시아의 공통점으로 진보에 대한 관념을 꼽지요. 지금이야 모두들 진보와 진화가 다르다고 얘기하고, 진화의 동력이라는 건 우연하게 환경에 적응하는 계기에 따라 진행된다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죠. 당시에는 그런 관념을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기독교적인 관념 자체를 전부 폐기하지 못했지요.

 

러시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러시아에선 마르크스적인 진화론을 종교적 관념과 결합시켜요. 부르주아 사회가 폐기된 이후에 새롭게 도래될 사회라는 건 그 이전보다 훨씬 더 나은 사회이고, 그 사회주의적 인간 자체도 훨씬 더 나은 인간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팽배합니다. 흥미로운 건 '더 나은 인간'의 조건 중 하나가 죽지 않는 존재여야 한다는 겁니다. 러시아 작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도 얘기했지만, 죽음은 부르주아적인 것으로 간주됐어요.

 

이권우 : 책 53쪽에 보면 그렇게 왜곡된 방향으로 대중화된 진화론에 대해 나옵니다. "진화에 완전함을 향해 가는 경향이 내재"되어 있으며 "진화는 하등한 생명 형태에서 고등한 생명 형태로 가는 과정"이라는 속설 말이죠. 그걸 퍼뜨린 대표적 인물이 허버트 스펜서와 프랑스의 생물학자 라마르크라고 지적합니다.

 

이현우 : 오늘날에도 통속적으로 많이들 그렇게 오해를 하지요. 라마르크 식 유물론, 스펜서 식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요. 보통 우파 이데올로그들도 적자생존이 진화의 핵심이라고 주장하잖아요. 이 라마르크 진화론은 러시아의 스탈린 시대에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수용됩니다. 책에 언급된 유명한 예로 농학자 트로핌 리센코가 나오지요. 사실 다윈 식 진화에는 이념이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어요. 하지만 인간이 의도적으로 개입하여 자연의 유전적 특성을 바꾸면서 개선시키고 발전시킨다는 노력에 라마르크 식 진화설이 잘 들어맞기 때문에, 리센코는 바로 그 라마르크 식 진화론을 채택합니다.

 

다윈주의 진화론을 신봉했던 생물학자들은 리센코의 정적으로 간주되어 전부 숙청당해요. 특히 세계적인 육종학자였던 니콜라이 바빌로프도 그 와중에 희생당하고요.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심각한 식량난을 해결을 못 했고, 소련의 생물학은 약 30년 동안 퇴보 상태에 머무릅니다. 이념적으로 옳은 것, 이념적으로 받아들이기 좋은 것, 실제 과학적 진실 사이에는 간극이 있는데, 그 중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했을 때 얼마나 큰 재앙의 결과를 맞게 되는지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러시아 작가 보이노비치의 소설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아마추어 생물학자인 한 등장인물이 육종 개량 시험을 하는데, 그 프로젝트 이름이 '사회주의로의 길'이에요. 토마토 줄기에 감자 뿌리를 결합시켜 아래는 감자가, 위에는 토마토가 열리게 하는 거죠. 절반의 성공을 거둡니다. 감자 줄기에 토마토 뿌리로.(웃음) 현실 사회주의 실험에 대한 비판을 함축하는 동시에 리센코주의의 비판이기도 해요.

 

이권우 : 방향이 자연스럽게 러시아 쪽으로 넘어왔는데요, 러시아의 불멸의 의지에는 건신주의(建神主義)가 결합되어 있다는 얘기가 나오지요. 건신주의가 정확히 어떤 건가요?

 

이현우 :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가 신을 만들어야 한다' 내지는 '우리가 신이다'라는 믿음입니다. 그게 함축하는 바는 '신이 아니면 인간도 아니다'라는 거지요.(웃음) 바로 스탈린으로 대표되는 '강철 인간' 정도는 돼야죠.

 

러시아 혁명기 때 문화적으로 가장 큰 이슈 가운데 하나가 '새로운 인간'이었어요. 어떻게 '새로운 인간'이 될 것인가, 내지는 어떻게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낼 것인가. 이건 니체 식 초인(위버멘쉬)이기도 합니다. 1900년대 초 러시아에서 니체주의가 굉장한 반향을 얻었어요. 그들을 매혹시킨 건 초인 혹은 새로운 인간에 대한 관념이었고, 볼셰비키 역시 모든 인민이 새로운 인간으로 개조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혁명 이후 무자비한 학살 내지는 죽음에 대한 방조가 벌어진 상황의 이념적 배경은 바로 그겁니다. 레닌과 트로츠키, 스탈린 모두 공통적으로 대단히 무자비했습니다. 특히 농민 계급에 대해서요. 우크라이나 대기근 때 500만 명 이상이 아사했는데 죽어 마땅하다며 일부러 방치했어요.

 

이권우 : 러시아 혁명사를 살펴보면 혁명 이후 농민들이 식량을 안 내놓았잖아요. 그 문제와 관련된 조치였던 건가요?

 

이현우 : 그렇진 않습니다. 농민은 노동자들과 다르게 취급되었어요. 러시아 혁명 자체가 노동자들의 연대 혁명으로 설명됩니다. 깃발에도 망치와 낫이 그려져 있잖아요. 망치가 노동자 계급을 상징하고 낫이 농민 계급을 상징해요. 볼셰비키 혁명가 내에는 노동자들이 많이 포함되었지만, 국민 전체적으로 봤을 때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었어요. 그들만으로는 러시아 사회 전체를 전복할 수 없기 때문에 농민들의 연대가 필요했던 거죠.

 

당시 농민들이 혁명에 동조했던 이유는 기본적으로 이런 거예요. 그동안 귀족 계급에 예속되어 자기 땅을 가질 수 없었거든요. 농노 해방 이후에도 남의 땅을 부치는 소작농을 전전했는데, 세상이 바뀌면 자기 땅을 소유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에 동조했던 겁니다. 하지만 혁명이 일어나고 난 뒤에는 상황이 달라져요. 부농을 러시아 어로 '쿨락(kulak)'이라고 하거든요. 주먹을 뜻하는 '쿨락'에서 나온 말이지요. 무얼 쥐고 있는 계급이에요. 바로 농민들의 땅에 대한 기본적인 소유욕을 뜻하는 것이고, 그런 본성으로는 새로운 인간이 될 수가 없다는 주장이 대두됩니다. 결과적으로 농민은 새로운 사회의 적으로 간주되고 치밀하게 척결이 추진됩니다.

 

일단 계급을 나눠요. 부농, 중농, 빈농. 맨 처음엔 부농 척결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어요. 그런데 기준이 참 애매합니다.(웃음) 자기가 경작할 수 있는 이상의 땅을 소유하고 있으면 무조건 부농입니다. 작으나마 자기 땅을 가졌거나 말 한 필이라도 소유하고 있으면 무조건 중농입니다. 빈농은 진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이고요. 나중에 빈농 빼고 대부분이 계급의 적으로 타도 대상이 돼 숙청당합니다. 소유욕은 부르주아적 근성이며 이기적 본성이고, 그런 본성을 다 제거해야만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인민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권우 : 이 건신주의라는 게 러시아의 전통적 영지주의와 관련 있다고 나오는데요. 여기에는 어떤 배경이 있나요?

 

이현우 : 러시아 종교철학자 중 니콜라이 표도로프(책에는 페도로프라고 표기되어 있으나 원발음은 표도로프이다.-편집자 주)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도 이 사람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불멸화 위원회> 186쪽에 잘 나오는데, 표도로프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의 임무는 모든 죽은 자들, 우리가 잃은 모든 사람들, 우리의 아버지들과 선조들을 그들의 아들로서, 그들의 후손으로서, 우리가 되살려 내는 것"입니다. 영국하고 좀 다르게, 영혼만 계속 존재하는 게 아니라 육신까지도 되살릴 수 있다고 하지요. 이런 러시아 정교가 사회주의와 결합했을 때,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부활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갖게 되죠.

 

인간을 극대화하고 과대평가하면 '인간은 신'이라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잖아요. 인간은 신에 가까워지는 존재다, 신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우리가 신이 되어야 한다는 관념이 생겨나요. 상대적으로 평균적 인간에 대한 과도한 비판이 생겨나고요. 아이러니합니다.

 

 

자본주의의 강점은 인간에 대한 과소평가입니다. 인간은 다 하찮은 존재들이고 굉장히 속물적이고 천박하고 이기적인 존재라는 관념. 한편 이게 자본주의의 성공 비결이기도 하죠.(웃음) 반면 사회주의는 인간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바람에, 현 수준의 인간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고 강철 같은 인간, 새로운 인간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 중 대표적 사례가, 이 책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노동 영웅 운동이지요. 스타하노프 운동 같은 것이요. 스타하노프는 탄광 노동자였는데 열 몇 명 어치의 일을 혼자 해냈어요. 사회주의에는 인센티브가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혼자 대가 없이 그런 일을 해냈다는 점 때문에 인민 영웅이 되고 다른 노동자들의 모범이 됐죠. 당신이 스타하노프처럼 탄을 못 캐내는 건 열의가 부족해서고 당성이 부족하고 혁명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근거가 가능해집니다. 새로운 착취의 방식이죠. 너는 이렇게 대단한 걸 할 수 있는 존재라면서 거꾸로 인간에 대한 굉장한 억압을 가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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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0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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