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의 청탁을 받아 쓴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 <요한 하위징아>는 안 그래도 읽어보려던 책이었기 때문에 선뜻 응했다. 해맞이 버스여행 길에 읽은 기억이 새롭다. 하위징아의 대표작 네 권 가운데 국내엔 <중세의 가을>(1919)과 <호모 루덴스>(1938)만이 번역돼 있는데, <에라스뮈스>(1924), <내일의 그림자 속에서>(1935)도 마저 소개될 수 있으면 좋겠다. 거기에 더 얹어서 <미국의 개인과 대중>, <17세기의 네덜란드 문명> 같은 책들도 국내에 소개되기를 기대한다고 역자도 후기에 적었다.  

 

 

 

중앙일보(13. 01. 05) '놀이하는 인간'의 그 학자, 역사의 바탕은 문학이었네

 

“세상이 지금보다 500년 더 젊었을 때, 모든 사건은 지금보다 훨씬 더 선명한 윤곽을 갖고 있었다. 즐거움과 슬픔, 행운과 불행, 이런 것들의 상호간 거리는 우리 현대인과 비교해 볼 때 훨씬 더 먼 것처럼 보였다. 모든 경험은 어린아이의 마음에 새겨지는 슬픔과 즐거움처럼 직접적이면서도 절대적인 성격을 띠었다.”

이런 대목을 기억하시는지? 요한 하위징아(1872-1945)의 『중세의 가을』(1919) 서두다. 제목대로 서양 중세를 다룬 역사책이다. 하지만 하위징아의 책은 좀 특별하다. 그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저명한 중세사학자는 여럿 더 있지만 “세상이 지금보다 500년 더 젊었을 때”라고 적는 역사학자는 하위징아뿐이다. 이 특별한 역사학자가 어떤 인물이었을까 궁금했던 독자에게 빌렘 오터스페어의 『요한 하위징아』는 반가운 선물 같은 책이다.

 

같은 네덜란드인으로 하위징아로부터 ‘글 읽는 방법’을 배웠다는 저자가 쓴 이 평전의 초점은 역사학자 하위징아가 아니라 ‘고전을 써낸 작가’ 하위징아다. 그에 따르면 하위징아는 몇 안 되는 네덜란드의 고전 작가들 중 한 사람이다. 물타툴리·루이스 쿠페루스·벨렘 엘스호트 등 함께 거명되는 네덜란드 작가가 모두 우리에게 생소한 걸 보면,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의 저자는 가장 유명한 네덜란드 역사가를 넘어서 우리가 아는 유일한 네덜란드 학자인지도 모르겠다. 놀랍게도 그는 “노벨문학상을 탈 수 있는 지근 거리까지 접근한 유일한 네덜란드 작가”이기도 했다.

하위징아를 고전작가로 조명하려는 게 저자의 특이한 의도인지라 평전임에도 불구하고 하위징아의 생애는 책에서 비교적 간략하게 다뤄진다. 네덜란드 북부 지방 도시인 흐로닝언 출신인 하위징아는 고향에 대한 강렬한 향토의식을 갖고 있었고, 첫 번째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흐로닝언 대학에 몸담았다. 다섯 자녀를 위해 연극 대본을 쓰고 연출까지 할 정도로 자상한 아버지였지만 대본을 쓰는 건 맏아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그만두었다.

그는 평생 동안 시계처럼 정확한 삶을 살았는데 오전에는 글을 쓰고 오후에는 강의에 나가고 저녁에는 각종 언어의 문법책을 읽었다. 그는 십 수 개 언어를 읽고 말할 수 있었다. 단조로운 학자의 삶이었지만 다행히도 65세에 젊고 상냥한 두 번째 아내와 재혼하여 나치 지배하에서도 만년의 삶을 버틸 수 있었다.

그러한 생애의 요약에서 풍기는 인상과는 대조될 수도 있지만 하위징아는 열정이 역사의 감각기관이라고 생각했다. 역사에 대한 엄정한 인식과 객관적 학문 정신을 강조하는 꼬장꼬장한 역사학자는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는 과거를 좀 더 생생하게 파악하기 위해서 과거의 회화를 보아야 하고 과거의 문학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테를 특별히 사숙했던 그의 책들이 풍부한 문학적 암시와 향취를 자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저자는 하위징아의 다양한 글쓰기 스타일과 공감각적 서술방식을 소개하는 데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데, 하위징아가 즐겨 쓰는 대조법은 이런 식이다. “감성에 이성이 필요한 것처럼 우둔함에는 지혜로움이 필요하다.” “미학의 분야에서 스타일이라고 하는 것은 윤리학의 분야에 오면 충성심과 질서가 된다.” 이러한 대조 속의 조화는 그가 역사뿐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기본 시각이기도 했다. 『요한 하위징아』는 『중세의 가을』과 같은 책이 어떤 정신으로부터 나온 것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13. 01. 05.

 

 

P.S. 기사에서 <요한 하위징아>를 '평전'이라고 적었는데, 제목의 기대치이긴 하지만 정확한 말은 아니다. 원제는 <하위징아 읽기>이고 저자의 초점은 하위징아의 생애가 아니라 '작가 하위징아'의 '훌륭한 저작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략한 전기적 스케치와 연보를 통해서 하위징아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게 이 책을 읽은 소득이다.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건 하위징아의 우수에 찬 시선이었는데(인터넷에 뜨는 대부분의 사진에서 그는 공허하고 슬픈 눈빛을 보여준다) 그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연보에 따르면 대학시절의 하위징아는 "우울하고 감상적인데다 조울증의 기질이 있어서 흐로닝언 교외를 몽상에 빠져 산책하기를 좋아했다." 아마도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새어머니를 맞은 것, 아버지의 매독이 유전됐을까봐 두려워 이복동생이 자살한 것 등이 성장과정에서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스무 살에 5세 연하의 마리아를 만나서 서른 살에 결혼하고 슬하에 다섯 자녀를 두면서 그의 인생도 좀 피게 된다. "마리아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조울증 기질이 많이 완화되었다"고 연보는 적는다. 이런 게 '생의 대조법' 아닐까.

 

그렇지만 자신의 '베아트리체'이기도 했던 아내 마리아가 38세의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하위징아는 커다란 상심에 빠진다. 아내와 사별하고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오늘 저녁 종말이 닥쳐왔다네, 아무런 의식도 고통도 없이."라고 그는 적었다. 게다가 48세 때는 장남이 18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이후엔 무미한 학자로서의 삶이다. 하위징아의 뒤늦은 행복은 65세 때에야 다시 찾아온다. 노학자는 젊고 상냥한 28세의 처녀 구스테와 만나 다시금 열정에 빠지며 재혼까지 한다. 마지막 책을 아내에게 헌정하면서 그는 이렇게 적었다. "내 생애의 마지막 7년을 행복의 빛으로 가득 채워 주었고, 조국의 적들이 내게 강제 부과한 유배 생활을 견디게 해준 여인에게 이 책을 바친다."

 

<요한 하위징아>의 저자는 하위징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문화의 카산드라였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을 낙관주의자라고 불렀다. 그는 역사의 어두운 측면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빛의 그림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미덕과 악덕에 따라 세상을 구분하는 것을 좋아했다. 우리는 하위징아의 저서에서 처방 없는 묘사는 없고, 대조 없는 역사는 없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더 나아가면, 그의 저서뿐만 아니라 생애에서도 동일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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