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이라고 하지만 재택근무를 하느라 밖에는 한 발작도 나가지 않았다. '근무'라고 해야 내겐 원고 노동인데, 간신히 마감에 맞춰(사실은 좀 넘겨서) 원고를 보내놓고 막간에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놓는다. 달력을 보니 꽉찬 1월이고, 그래도 학기중보다는 시간을 더 낼 수 있을까 해서 묵중한 책들도 가리지 않았다.

 

 

 

1. 문학

 

김미현 교수가 추천한 책은 한강의 세번째 소설집 <노랑무늬 영원>(문학과지성사, 2012)이다. 소설집으로는 <여수의 사랑>(문학과지성사, 1995)과 <내 여자의 열매>(창비, 2000)에 뒤이은 책. 어느덧 '중진작가' 대열에 선 작가의 공력을 가늠해볼 만한 작품들이 묶였다.

 

 

한강의 소설 말고도 여유가 있다면 조남현 교수의 노작들을 읽어봐도 좋겠다. 연거푸 책들이 나왔는데(아마도 정년을 기념한 책들인 듯싶다) <한국문학잡지사상사>(서울대출판문화원, 2012)와 두 권짜리 <한국현대소설사>(문학과지성사, 2012)가 그것들이다(<한국현대소설사>는 1890년-1945년까지를 다뤘다). 마침 최근에 문학사 책들을 재점검하고 다시 수집도 하려던 참인데, 한국 소설사에 관한 묵직한 읽을 거리가 생겨서 반갑다.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추천한 역사서는 이한우의 <왕의 하루>(김영사, 2012)다. "본 책 <왕의 하루>를 쓴 저자는 저널리스트이다. 그는 비록 전문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이미 조선시대사에 대한 여러 권의 뛰어난 저서를 낸 바 있다. 이번에 ‘운명적인 하루’를 모티브로 하여 조선시대 역대 왕의 극적인 사건들을 흥미롭게 풀어냈다"는 평이다. 역사학자의 저작으론 이성무의 <조선국왕전>(청아출판사, 2012), <조선왕조사>(수막새, 2012) 등도 같이 참조해서 읽어볼 만하다. 개인적으론 <조선왕조사>를 이이화 선생의 <한국사 이야기>와 함께 틈틈이 읽어보고 있다.

 

 

 

역사분야도 시야을 약간 확대해보자면 데이비드 모건의 <몽골족의 역사>(모노그래프, 2012)가 번역돼 나온 김에 몽골사 관련서도 더 읽어보면 좋겠다. 쿠빌라이 칸을 다룬 이승한의 <쿠빌라이 칸의 일본 원정과 충렬왕>(푸른역사, 2009), 모리스 로사비의 <쿠빌라이 칸, 그의 삶과 시대>(천지인, 2008) 등을 목록에 더 포함해도 좋겠고.  

 

 

 

3. 철학

 

박인철 교수가 추천한 책은 마이클 셔머의 <믿음의 탄생>(지식갤러리, 2012)이다. 저자는 "믿음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과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하기 보다는,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유전적, 신체적, 환경적 요인, 특히 결정적으로 뇌의 신경생리학적 작용에 의해 형성되고 유지된다는 과학주의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우리가 지니는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믿음은 그 견고성에도 불구하고 어떤 객관적 사실에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렇게 믿고자 하는 하나의 심리학적인 작용에 불과하다고 본다." 현대 과학이 우리의 믿음에 관해 현재까지 말해줄 수 있는 최대치를 담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셔머가 공저한 <무신예찬>(현암사, 2012) 외에 전작인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바다출판사, 2007)도 같이 읽어볼 만한 책으로 묶을 수 있다.

 

 

 

그리고 엊그제 페이퍼를 쓰기도 했는데, 하이데거의 <니체1,2>(길)도 맘잡고 읽어볼 만하다. 긴 겨울밤이 아니면 손에 잡기 어려울 테니가. 고명섭의 <니체 극장>(김영사, 2012)도 니체의 생애와 저작에 대한 요긴한 가이드북으로 활용할 수 있다.

 

 

 

4. 정치/사회

 

마인섭 교수가 추천한 책은 콜린 크라우치의 <왜 신자유주의는 죽지 않는가>(책읽는수요일, 2012)다. 제목대로 저자는 "신자유주의가 금융붕괴 이후 죽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더 강력하게 등장하게 되었다고 진단하고, 그 중심에 거대 기업이 있다고 설명한다." 같은 저자의 책으론 <포스트민주주의>(미지북스, 2008)도 국내에 나와 있다. '신자유주의'란 주제와 관련해서는 지주형의 <한국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형성>(책세상, 2011)이 호평을 받은 책이다.

 

 

 

5. 경제/경영

 

김은섭 위원이 고른 책은 로리 바시 등이 쓴 <굿 컴퍼니>(틔움, 2012)다. "한마디로 ‘대기업은 얼마나 착한 걸까?’ 파헤친 책"이라고 소개된다. 저자들은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콜린스의 책이 국내에도 여럿 소개돼 있다. 추천사에 따르면, "‘굿 컴퍼니‘ 등장은 이제는 기업이 이익과 함께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는 근로자들의 행복 추구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기업은 근로자들이 생존을 위해 일하기보다는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 기여하도록 도와야 한다. 저자들은 나쁜 회사들이 용인되던 시대는 끝났다고 단언한다." '착한 회사 지수'라는 걸 우리도 도입해서 발표하면 어떨까.

 

 

  

6. 과학

 

김웅서 위원이 고른 과학책은 윤영호의 <나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의사입니다>(컬처그라피, 2012). 저자는 "23년 동안 말기암환자를 돌보고 있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가"라고 한다. 이 분야 관련서는 아무래도 우리보다 고령화에서 앞서가고 있는 일본에서 나온 책이 많은데,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하나>(마고북스, 2012), <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하라>(위즈덤스타일, 2012) 등이 작년에 나온 책들이다.

 

 

 

덧붙여 이달에 읽을 만한 과학책으로 우주생물학자 크리스 임피의 책들도 보태고 싶다. 작년에 나온 <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시공사, 2012)에 이어서 새해 벽두에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시공사, 2013)도 출간됐다. 임피는 <우주 생명 오디세이>(까치글방, 2009)의 저자로 국내에 처음 소개됐었다.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추천한 책은 인지난의 <홀로 문을 두드리다>(학고재, 2012)다. 중국의 대표적 미술비평가가 오늘의 중국 미술과 미술계에 대한 흥미로운 비평적 시각을 제공한다. 같은 저자의 책으론 <아큐와 건달, 예술을 말하다>(한길아트, 2004)가 먼저 소개된 바 있다. 중국 현대미술의 현장에 대해선 이보연의 <이슈, 중국현대미술>(시공아트, 2008)도 참고할 만하다.

 

 

 

8. 교양

 

내가 고른 교양서는 박숙자의 <속물 교양의 탄생>(푸른역사, 2012)이다. 부제는 '명작이라는 식민의 유령'. 책의 의의를 이렇게 짚었다.

“양서는 성공의 지름길”이란 현수막이 식민지 경성 한복판에서 나부꼈다. 서구 열강의 문학이 ‘세계문학’으로 호명되고 조선의 대표적 문사들이 읽은 명작이 교양의 기준이 됐다. ‘명작’은 ‘좋은 책’이기 전에 ‘유명한 책’으로 통했다. <부활>의 여주인공이 누구인지 알면 교양이고 모르면 무교양이라는 식이다. 그렇게 명작의 독서가 문화적 취향의 과시 수단이면서 사회의 엘리트로 행세하기 위한 조건이 된다면, 그때의 교양은 속물과 대립하지 않는 ‘속물 교양’이다. “식민지 근대의 아이러니는 교양에 비례해서 속물적 가치가 늘어난다는 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속물 교양의 형성과정에 대한 역사적 검토는 자연스레 무엇이 명작이고 또 명작이어야 하는가란 물음을 낳는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속물 교양’ 혹은 ‘교양의 식민화’ 프레임에서 벗어나 ‘진정한 교양’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란 물음과 다르지 않다. 새해의 첫 교양 독서는 <속물 교양의 탄생>과 더불어 진정한 교양이란 무엇인가란 물음에서 시작해도 좋을 듯싶다.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는 책이 천정환의 <근대의 책읽기>(푸른역사, 2003)다. 독서의 사회사와 정전의 문화사를 다룬 책들이 앞으로 더 풍부하게 출간되면 좋겠다. 그런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권보드래/천정환의 <1960년을 묻다>(천년의상상, 2012)도 1월의 독서목록에 올려놓는다.

 

 

 

9. 실용

 

이계성 위원이 추천한 책은 교육과학기술부 필통톡기획팀이 펴낸 <필통톡, 학부모 걱정에 답하다>(중앙북스, 2012)다. 소개에 따르면 "'반드시 통하는 이야기'라는 뜻의 '필통톡'(必通Talk)은 교과부장관과 전문가들이 학부모 학생 교사 등과 함께 한 현장소통 프로그램이다. <필통톡>은 2012년 2월부터 11월까지 전국 21개 도시에서 27회나 열린 그 현장 소통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다." 같은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책으론 <대한민국 부모>(문학동네, 2012), 이범의 <우리교육 100문 100답>(다산북스, 2012) 등도 눈에 띈다.

 

 

 

10. 러시아문학사

 

개인적으론 1월에 러시아문학 강의도 있고 단행본으로 준비중인 <러시아문학강의>도 손을 봐야 해서 고른 주제다. 하지만 교양서로도 읽을 수 있는 책들인데, 나보코프의 <러시아문학강의>(을유문화사, 2012)를 비롯해서 미르스키의 <러시아문학사>(써네스트, 2008), 에드워드 브라운의 <현대 러시아문학사>(충북대출판부, 2012) 등을 들 수 있다. 참고로 <현대 러시아문학사>는 <혁명 이후의 러시아문학>(하버드대출판부, 1982)을 옮긴 것이다.

 

 

13. 01. 03.

 

 

 

P.S. '1월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헨리 필딩의 <톰 존스>를 고른다. 삼우반판과 동서문화사판에 이어서 대산세계문학총서의 하나로 <업둥이 톰 존스 이야기>(문학과지성사, 2012)가 지난주에 나왔다. 3종의 번역서가 있는 셈이니 골라 읽어도 되고 비교해가며 읽어도 좋겠다. 영화 버전으로는 <톰 존스의 화려한 모험>(1963)이 나와 있는데,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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