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늦게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놓는다. 서재 컴퓨터의 하드를 아직 복구하는 중이어서 거실의 컴퓨터를 쓰다 보니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우선 속도가 러시아 수준이다) 이런 페이퍼를 쓰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대선이 낀 달이어서 어차피 일반의 관심은 책에서 좀 비껴나 있는 듯해 열의도 좀 줄었다. 출판쪽은 예년보다 일찍 파장 분위기이고 송년 모드다. 막판 스퍼트에 해당하는 책도 없진 않겠지만... 여하튼 한해를 보내며, 다 보내기 전에 읽어볼 만한 책들의 목록을 마련해본다.

 

 

 

1. 문학

 

김미현 교수가 고른 책은 서유미 소설집 <당분간 인간>(창비, 2012)이다. "총 8편의 단편소설들은 노동을 하고 싶지만 노동을 하지 못하거나 노동을 해도 수입이 보장되지 못하는 인간들의 비인간적 생태에 대한 보고서다. 그래서 그들은 ‘당분간’은 인간일 수 있지만 조만간 인간으로 살아가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는 사실의 증명서이기도 하다"고 평했다. 작가는 <판타스틱 개미지옥>(문학수첩, 2007)으로 이름을 알린 후 <쿨하게 한걸음>(창비, 2008), <당신의 몬스터>(자음과모음, 2011) 등의 장편소설을 발표해왔다. '당분간 인간'은 사회적 '잉여'에 대한 새로운 명명으로도 읽힌다. 당장은 손에 들기 어렵지만 조만간 읽어봐야겠다.

 

 

 

12월에 읽어보고 싶은 국외소설(이라고 하지만 번역소설)은 파키스탄 청년의 아메리칸 드림을 다룬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민음사, 2012)이다. 짧은 분량의 소설임에도 작가는 이미 나이폴과 루슈디를 연상시킨다는 평판을 얻고 있다. 그리고 케네디 암살사건을 다룬 스티븐 킹의 신작 <11/22/63>(황금가지, 2012)이 또한 독서욕을 한껏 자극하는 책이다. 안 그래도 케네디를 비롯한 1960년대 정치인과 정치상황에 관심을 갖고 있는 터라 '맞춤식'인가 느낀 소설. 무지막지한 분량이 이럴 땐 더 자극적이다.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고른 책은 백승종의 <금서, 시대를 읽다>(산처럼, 2012)이다. <마흔, 역사를 알아야 할 시간>(21세기북스, 2012)과 함께 이미 구비해놓은 책이다. 같이 목록을 만들어놓기도 했지만 금서에 관한 이야기로는 장동석의 <금서의 탄생>(북바이북, 2012)도 더 얹을 수 있다.

 

 

 

1960년대에 대한 관심 때문에 자연스레 손이 가는 책은 국문학 연구자들이 쓴 <1960년을 묻다>(천년의상상, 2012)다. '박정희 시대의 문화정치와 지성'이 부제. 그 시대의 인물사에도 손길을 뻗어볼 수 있는데, 장준하 선생 의문사 사건의 진상을 다룬 <장준하, 풀지 못한 진실>(돌베개, 2012)과 김삼웅의 <민주주의자 김근태 평전>(현암사, 2012)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과연 박정희와 유신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난 것인지 질문하도록 한다. 

 

 

 

3. 철학

 

박인철 교수가 고른 철학서는 토머스 모리스의 <파스칼의 질문>(필로소픽, 2012)이다. 파스칼과 그의 주저 <팡세>에 대한 요긴한 안내서로서 "단순히 파스칼의 생각을 그대로 전달하기보다는,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마치 파스칼이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는 듯, 친근감 있고 또 설득력 있게 말을 풀어나간다. 그럼으로써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인간존재와 삶의 의미, 그리고 신은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도록 한다"는 평이다. 거기에 더 얹자면 전혀 다른 경향이지만 20세기 철학을 지배한 두 철학자 하이데거와 비트겐슈인의 책도 좋겠다. 하이데거의 <사유의 경험으로부터>(길, 2012)와 레이 몽크의 <비트겐슈타인 평전>(필로소픽, 2012)이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이자 제일 먼저 떠오르는 책이다.  

 

 

 

4. 정치/사회

 

마인섭 교수가 추천한 책은 <복지국가의 정치학>(생각의힘, 2012)이다. "2007년 현재 한국의 사회복지지출은 GDP의 8.1%로 OECD 30개국 가운데 29위이다. 최근 여러 선거에서 복지가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한국은 세계 10위의 경제력에 비해 복지국가의 발달이 이렇게 뒤쳐졌을까? 선거제도 때문인가? 인종때문인가? 가난이 게으름 탓이라고 믿기 때문인가? 열심히 미국을 뒤쫓아 온 우리를 저자들은 어떻게 볼까?"라는 게 마 교수의 질문이다. 복지국가를 화두로 한 책들은 국내에서도 적잖게 출간되고 있는데, '입문서'라는 게 있다면 복지국가 전도사 이상이 교수의 <복지국가가 내게 좋은 19가지>(메디치, 2012), 오건호의 <나도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다>(레디앙, 2012) 등이 유력하다.

 

 

더불어, 선거가 코앞인 만큼 '이슈북'들도 때맞춰 읽어볼 만하다. 길쭉한 '이슈북' 시리즈 가운데 <우리는 유권자다!>(알마, 2012), <경제민주화가 희망이다>(알마, 2012), <노동시간 줄이고 농촌을 살려라>(알마, 2012) 어느 것이나 한권쯤은 읽고 투표장에 가면 좋겠다.

 

 

5. 경제/경영

 

김은섭 위원이 추천한 책은 <모든 비즈니스는 로컬이다>(반디출판사, 2012). 마케팅에 관한 책이라니 따로 덧불일 말은 없다. 찾아보니 이 분야의 올해 베스트셀러로는 홍성태의 <모든 비즈니스는 브랜딩이다>(쌤앤파커스, 2012), 그리고 에이드리언 슬라이워츠키의 <디맨드>(다산북스, 2012)가 있다.

 

 

6. 과학

 

김웅서 위원이 고른 책은 공우석의 <키워드로 보는 기후변화와 생태계>(지오북, 2012)다. "오랫동안 이 분야 연구를 해온 저자는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농작물을 비롯한 다양한 식물부터 곤충, 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생물들이 기후변화에 따라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자세하게 설명한다." 기후변화는 해마다 관련서들이 출간되는 주제다. 올해 나온 책 가운데는 <왜 열대는 죽음의 땅이 되었나>(미지북스, 2012)와 <기후가 사람을 공격한다>(푸른숲, 2012)도 챙겨둘 만하다.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추천한 책은 사진책이다. 이경민의 <경성, 카메라 산책>(아카이브북스, 2012).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모던한 문화적 감수성이 싹트고 있었던 옛 서울이며, 당시 사진과 신문기사들을 통해 엿볼 수 있는 서울 사람들의 발랄한 일상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해방 이전의 서울에 내려 그 시절 거리를 산책하듯 책장을 넘기다 보면, 오늘날 우리에게 내면화되어 있는 감수성들이 어디에서 기원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평했다. 근대 사진 아카이브로 유명한 저자의 책으론 <카메라당과 예술사진 시대>(아카이브북스, 2010), <제국의 렌즈>(산책자, 2010) 등이 더 있다. <제국의 렌즈>는 그래도 읽은 책이군...

 

 

 

8. 교양

 

내가 고른 교양서는 존 그레이의 <불멸화위원회>(이후, 2012)다.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이후, 2010) 이후 <추악한 동맹>(이후, 2011)에 이어서 나온 책으로 '존 그레이 3종 세트'라고 불러도 좋겠다. 내가 적은 소개는 이렇다.

저자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죽음에 맞서기 위해 동원된 과학의 사례를 통해서 과학이 어떻게 주술과 다시금 결합했는지 자세히 살핀다. 당시 영국과 러시아의 근대적 인간은 비록 종교는 부정했을지라도 불멸에 대한 종교적 믿음마저 폐기하지는 못했다. 종교적 믿음 없는 불멸은 어떻게 가능한가? 바로 과학을 통해서다. 영국의 사회적 명사들은 영혼이 육체의 죽음 이후에도 지속된다는 걸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애썼고, 러시아 볼셰비키의 한 분파인 건신주의자들은 인간이 죽음을 정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한 믿음은 레닌의 사체를 영구 보존하기 위해 ‘불멸화위원회’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서, 곧 인간이 신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새로운 인간’으로 개조될 필요가 있었고, 그러한 혁명적 개조의 실험은 수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삼게 된다. 매우 인간적인 욕망처럼도 보이지만 불멸을 향한 꿈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우면서 부조리한 시도로 귀결되는지 저자는 신랄하게 보여준다.

 

 

9. 실용

 

이계성 위원이 고른 실용서는 이름트라우트 타르의 <내 안의 겁쟁이 길들이기>(유아이북스, 2012)다. 무대공포증이나 울렁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더 없이 '실용적인' 도움을 주는 책. 저자는 독일의 심리치료사인데, 의외로 여러 권의 책이 이미 소개돼 있다. <고슴도치 길들이기>(해냄, 2005)가 시작이었고 <나는 위로받고 싶다>(펼침, 2009)와 <겁쟁이 길들이기>가 최근에 나온 책들다.

 

 

10. 문재인 

 

이번 대선의 야권 단일후보는 문재인이다. 당장의 지지율 열세를 극복하고 새로운 운명의 개척자가 될지 이제 열흘 후면 판가름나게 된다. 문재인으로 검색되는 책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책이 차례로 <문재인의 운명>(가교, 2011), <사람이 먼저다>(퍼플카우콘텐츠그룹, 2012), 그리고 조기숙의 <문재인이 이긴다>(리얼텍스트, 2012)이다. <우리는 유권자다!>(알마)에서 한홍구 교수는 이번 대선의 의미를 이렇게 짚었다.

제가 요새 대한민국에서 유신에 대해서 제일 많이 언급하고 다니는 사람일 거에요. 그런데 저도 가끔씩 느끼는 게 제 몸에는 유신이 남아 있습니다. 제 마음에는 광주가 제일 크게 자리 잡고 있을지 모르지만, 제 몸에는 여전히 유신이 남아 있어요. 길을 가다가 애국가가 나오면 '동작 그만' 하면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 하는 것처럼 제 자신도 그러고 있습니다. 우리 몸에 들어 있는 유신체제를 우리부터 우리가 내몰고 단호히 결별해나가는, 그럼으로써 우리 사회에 유신의 부활을 바라고 있는 그 모든 세력을, 그 모든 불순의 기도를 막아내는 것, 그걸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해야 합니다. 소극적이지만 굉장히 중요한 거죠. 유신이 다시 살아나면 어떻게 돼요? 우리는 창피해서 어떻게 삽니까? 저는 유신을 우리 모두가 다 같이 막아내야 하고,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25-26쪽)

 

12. 12. 08.

 

 

 

P.S. '12월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이다. 분량이 짧은 희곡이라 언제든 일독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 '정치의 계절'인지라 한번 다시 읽어보고 싶기도 하다. 세 마녀들을 먼저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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