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시사IN(272호)에 실은 서평을 옮겨놓는다. 분기별 책꽂이가 특집이라 타이틀은 '겨울의 책꽂이'로 돼 있다.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석달간 출간된 책 가운데 주목할 만한 책 다섯 권을 선정해달라는 요청에 응했고 그중 한권에 대한 서평을 쓰게 됐는데, 바로 위화의 <사람의 목소리가 빛보다 멀리 간다>(문학동네, 2012)가 그 대상이었다. 아직도 하드를 복구하지 못한 상황이어서 메일함에서 찾아다 옮겨놓는다.

 

 

 

시사IN(12. 12. 01) 현대 중국을 흔든 두 개의 혁명

 

중국 공산당의 제18차 당대회가 폐막하고 시진핑을 당 총서기로 하는 5세대 지도부가 출범했다. 알려진 대로 시진핑은 공산혁명가의 자제들 그룹인 태자당의 일원으로 분류된다. 자오쯔양과 당 총서기직을 다투기도 했던 혁명원로 시중쉰의 아들이어서다. 하지만 문화대혁명기에 실각했던 부친 때문에 시진핑은 어두운 소년시절을 보냈다. 산골마을의 동굴 움막에 살면서 7년간 강제노역을 한 경험이 있고 그의 공산당 가입도 10전 11기 끝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인상적인 인생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라고 할까.

 

그렇다고 시진핑의 사례가 특별히 예외적인 것은 아니다. 실상 그보다 더 드라마틱한 것은 중국의 현대사 자체이기 때문이다. 시진핑보다는 조금 아래 연배이지만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문학동네, 2012)에서 중국의 대표작가 위화가 열 개의 단어로 집약해서 전해주는 중국의 모습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파란만장하고 흥미롭다.

 

 

 

지금은 ‘시진핑 이후의 중국’이 세계의 관심사이지만 중국현대사로 시야를 확장하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의 역사는 중국사학자 모리스 마이스너의 표현대로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로 나뉜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인민의 ‘영수(領袖)’ 마오쩌둥이 말년에 ‘사령부를 포격하라’는 대자보를 직접 써붙임으로써 촉발한 문화대혁명이다. 절대권력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오는 항상 군중의 힘을 빌려 일을 도모하고자 했다. 결과는 중국 대륙 전체를 집어삼킨 군중의 광기였다.

 

1976년 마오의 서거 소식이 전해졌을 때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위화는 집단적 애도의 물결 속에서 문득 유머를 느낀다. “몇몇 사람들이 소리 내어 울고 있을 때, 내가 느꼈던 것은 틀림없는 슬픔이었다. 하지만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대한 공간에서 한꺼번에 울부짖을 때, 내가 느낀 것은 유머였다”고 그는 적는다.  

 

“우리는 적이 반대하는 것을 옹호해야 하고 적이 옹호하는 것을 반대해야 한다”는 게 마오 시대의 구호였다면 덩샤오핑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잡는 고양이가 훌륭한 고양이다”라는 말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것을 위화는 “마오쩌둥의 흑백시대에서 덩샤오핑의 경제지상주의 컬러 시대”로의 이행이라고 정리한다. 물론 그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이 가져온 기록적인 경제성장은 모두가 궁핍했던 중국을 경제대국임과 동시에 극도로 불균등한 국가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일례로 1980년대 중반부터 상하이 같은 동부 연해지역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코카콜라를 마셨지만 1990년대 중반에도 중부 산간지역 출신들은 설을 쇠러 고향에 갈 때 코카콜라를 선물로 가져갔다. 같은 중국이라지만 10년 이상의 시차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정치혁명과 경제혁명 사이에서 어떤 연속성을 읽어내는 게 위화의 통찰이다. 오늘날 중국 부호들 가운데 상당수는 빈손의 가난뱅이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억만장자가 된 이들이다.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위화는 마오의 문화대혁명과 덩의 개혁개방이 중국이 풀뿌리 계층에 두 차례 거대한 기회를 가져다준 것이라고 말한다. 곧 문화대혁명이 정치권력의 새로운 분배였다면 개혁개방은 경제권력의 재분배였다. 시진핑의 중국은 이제 중국 인민에게 무엇을 가져다줄 것인가.

 

12.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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