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소개되지 않은 책을 다루는 게 '세계의 책' 카테고리인데, 찾아보니 지난 2월에 올린 페이퍼가 마지막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방치한 셈인데, 한해가 가기 전에 늦게라도 한권 더 올려놓는다. '슬라보예 지젝의 특별한 강의' <임박한 파국>(꾸리에, 2012)에 등장하는 책이다.

 

 

 

지난 6월말 방한강연 때 지젝이 언급한 책이고 곧 나올 <멈춰라 생각하라>(원제는 'The Year of Dreaming Dangerously')에도 같은 취지의 멘트가 들어가 있기도 하다. 야니쉬 바로파키쉬(Yanis Varoufakis)의 책 <글로벌 미노타우로스>(2011)다(나는 초판을 주문했는데, 2013년에 2판이 나올 예정이다. 분량이 좀 보태졌다). '미노타우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설상의 괴물. 바로파키쉬('바로우파키스'라고도 표기)는 미국을 이 괴물에 비유한다. 2008년 이후의 세계 경제 위기에 대한 그의 진단/분석을 지젝은 이렇게 요약한다.

애널리스트 야니쉬 바로파키쉬는 지금 직면하고 있는 경제 위기가 닉슨 대통령 재직 때였던 1970년대 초반에 이미 예견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미국은 1960년대 후반까지 기계를 수출하는 나라였는데 그때부터 무역적자를 기록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닉슨 행정부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고안해냈는데, 무역적자를 없애려고 고군분투할 것이 아니라 큰 액수의 무역적자를 그대로 놔두자는 것이었습니다. 대신 엄청난 양의 물품을 수입하는 데 쓴 돈을 다시 미국으로 가져오는 데 골몰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지난 30-40년 동안의 전 지구적 시스템이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이상한 시스템입니다. 미국은 끔찍한 중세 시대의 신 같은 존재이고, 우리들은 이 신을 위해 돈을 지불하면서 희생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매일 미국에 10억 달러를 주고 있는 셈이니 말죠. 우리들이란 다름 아닌 유럽의 독일과 중국, 일본, 한국 등의 생산국들과 광물 등의 자연자원을 수출하는 후진국들입니다. 2008년의위기는 이 시스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시스템의 균형은 미국이 빚을 갚지 못하는 깊은 불균형에 기초해 있었습니다.(18-19쪽)

이런 흥미로운(동시에 심각한) 내용을 담은 바로파키쉬의 책은 비교적 얇다. 경제 위기 관련서들이 숱하게 쏟아졌는데, 왜 이 책은 누락됐는지 좀 의아하다. 조만간 번역될 수 있으면 좋겠다.

 

 

 

<글로벌 미노타우로스>을 얼마전에 주문하면서 저자의 다른 책들도 검색했었는데, <경제학의 기초>, <게임이론>, <현대 정치경제학> 등이 눈에 띈다. 이중 '2008년 이후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표방한 <현대 정치경제학>은 우리에게도 요긴한 책일 듯싶다.

 

 

현재 정치경제학을 다룬 국내서는 김수행 교수의 책들이 가장 대표적인데, 바로파키쉬의 책이 비교대상이자 좋은 참조점이 될지 않을까 해서다. 관심 있는 출판사가 있었으면 싶다...

 

12. 11. 27.

 

P.S. <임박한 파국>은 몇 군데를 읽어봤지만 잘 마무리된 책은 아니다. 오탈자들 때문인데, 22쪽에서 지젝이 말한 '우리나라(슬로바키아)'는 '우리나라(슬로베니아)'의 오기로 보이며, 23쪽 "하나의 국가로 전혀 존재하지 못합니다."와 164쪽 "또 다른 전도체로의 실험예술이었다."에서 '로써'는 모두 '로서'로 교정돼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흠에도 불구하고 '슬라보예 지젝 인 서울'은 충분히 흥미롭고 자극적이다. 2013년부터는 경희대 석좌교수로도 활동한다고 하니 지젝과의 만남은 앞으로도 더 해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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