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002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여러 권이 한꺼번에 쏟아진 스테판 에셀의 책들을 거리로 삼았다. 작년 여름에 <분노하라>(돌베개, 2011)에 대한 서평을 쓴 적이 있으니 이번이 두번째이다.

 

 

 

주간경향(12. 11. 27) 세상을 바꾸려면 공감하고 참여하라

 

유럽 국가들의 긴축재정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시위가 최근 유럽 전역 23개국에서 벌어졌다. 스페인에서는 수백만이 시위에 참가했고 프랑스에서도 전국 각지에서 시위가 발생했다. 전면적인 경제 위기를 노동 계급의 희생을 통해서 넘어서려는 자본의 시도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새로운 저항 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을까. 1917년생 레지스탕스 투사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져가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스테판 에셀의 책이 연이어 출간되고 있다. 2010년 그가 펴낸 소책자 <분노하라>는 프랑스에서만 300만부 가까이 팔려나갔고, 30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적으로는 3500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신드롬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열광적인 반응이다. ‘분노하라!’는 간명하고도 시의적절한 메시지가 갖는 호소력이 그러한 반응의 한 요인이라면, 다른 요인은 아마도 그의 발언 자격일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가 독일군에 체포돼 수용소를 전전하면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에셀은 1948년 유엔 세계인권선언문 작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전력이 있다. 이 선언문의 1조는 이렇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 모든 인간은 이성과 양심을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에게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분노하라> 이후의 메시지를 집약하고 있는 <분노한 사람들에게>(뜨인돌, 2012)에서 에셀은 이 조문의 갖는 이상적 성격을 인정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이 ‘특별하고 놀라운 내용’을 아직 온전하게 실현하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이것은 “희망이고, 목표이고, 강령”이다. 분명 아직은 실망스러운 상태이지만 1950년 이래 많은 진보도 이루어냈다는 게 에셀의 평가다. 하지만 2008년 세계경제위기 전후의 상황은 이러한 낙관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 유엔헌장과 세계인권선언을 만들고 유럽에 평화를 정착시킨 세대로서의 자부심이 자칫 무너질 수도 있다는 절박감이 에셀로 하여금 젊은 시절을 능가하는 활발한 활동에 나서도록 만든다.

 

 


우리는 무엇에 분노하고 또 대항해야 하는가. 되짚어보자면, 에셀은 두 가지를 말했다. 첫째는 세계의 양극화이다. ‘1퍼센트’가 부와 권력을 장악하고 있고, 나머지 절대 다수는 기아와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전 세계 70억 인구 가운데 최소 3분의 1이 비인간적인 조건 아래서 생존하고 있다면 그러한 사실 자체가 특단의 대책을 필요로 한다. 둘째는 환경의 파괴다. 지구라는 행성은 인간의 무차별적인 개발과 착취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것이 우리의 분노를 촉발하는 위험들이다. 물론 분노만으로 충분하진 않다. 에셀은 연이어 펴낸 <참여하라>를 통해서 미래를 짊어질 젊은 세대에게 참여하고 연대할 것을 촉구했다. 이성적으로 용인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분노와 그러한 세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참여는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조건이다.


거기에다 에셀은 ‘공감하라’는 주문을 덧붙인다. 우리는 공감이 별로 필요하지 않았던 옛 세계와 공감이 없이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 새로운 세계 사이의 문턱에 살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공감이란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 보고 그들의 고통과 그들의 행복을 느끼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과 단합하는 것”이다. 변화는 연대 없이 가능하지 않다. 공감은 그 연대를 만들어내는 힘이다. 연대는 물론 개인 간의 연대뿐 아니라 국가들 간의 연대를 포괄한다. 이러한 공감과 연대가 구축되지 않는다면 세계는 증오의 테러리즘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에셀이 좋아하는 릴케의 시구는 “그대의 삶을 변화시켜야 합니다”이다. 그는 이렇게 호소한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삶을 바꾸어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분노합니까? 여러분이 지금까지 여러분의 삶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2.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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