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문학사상사)에 부록으로 실려 있는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를 읽고 들춰본 <새로 쓴 일본사>(창비, 2003)의 내용을 정리해본 것이다. 일본의 선사시대에 관한 마땅한 자료가 더 있는지 궁금하다. 한편 다이아몬드의 일본인 기원론은 보급판(1999)에는 실려 있지 않고 하드카바판(2005)에만 들어 있다. 문학사상사의 개정증보판에 따르면 이 원서 증보판은 2003년에 처음 나온 것으로 돼 있다. 어쨌든 내가 갖고 있는 보급판에는 빠져 있어서 아쉽다...
한겨레(12. 11. 10) 한일 과거사 해법, 뿌리부터 캐볼까
‘서울대 대출도서 1위’란 타이틀 덕에 새삼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개정증보판에는 ‘일본인은 어디에서 왔는가’란 논문이 부록으로 들어 있다. 일본인 조상은 누구인가라는 문제를 다룰뿐더러 “한국인과 일본인은 성장기를 함께 보낸 쌍둥이 형제와도 같다”는 결론 또한 주목할 만하다. 고대사에 관한 한 양국의 시각이 많이 엇갈리는 터여서 3자적 입장에 놓인 지은이의 객관적 논증은 좋은 참조가 된다.
일본인의 기원에 대한 일본 학자들의 견해가 궁금해서 펼쳐본 책이 현역 연구자들이 공동집필한 개설서 <새로 쓴 일본사>(창비, 2003)이다. 적은 분량은 아니지만 단권으로 일본사 전체를 서술하고 있기에 ‘일본인의 기원’에 관해서는 많은 분량이 할애돼 있지 않다. 물론 그럼에도 기본시각은 확인해볼 수 있다.
일본 선사시대와 관련하여 쟁점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토기를 사용했지만 수렵채집 단계에 머물렀던 조몬인과 벼농사를 시작한 야요이인의 관계다. 책에는 “오랫동안 식료채집을 기본으로 하는 조몬 문화가 계속되다가 2000여년 전에 마침내 농경사회가 성립한다”고 개략적으로 서술돼 있다. 하지만 조몬 문화와 야요이 문화의 경쟁·이행관계에 대해서는 명확한 언급이 없다. 벼농사는 일본 외부로부터 유입된 것이다. 동아시아의 경우 중국 양쯔강 하류에서 처음 벼농사가 시작됐으며 한반도를 거쳐서 일본열도에 전해졌다. “야요이 도작의 직접 루트는 한반도 남부였다”고 일본 학자들도 기술한다. 문제는 어떻게 전해졌는가이다.
다이아몬드는 일본사의 결정적인 두가지 변화로 1만2000년 전께 토기를 발명하면서 조몬인들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과 기원전 400년께 한반도 남부로부터 새로운 생활양식(농경)이 들어오면서 두번째 인구폭발이 일어난 것을 든다. 조몬인이 한반도 이주민으로 대체된 것인지, 단지 그들로부터 기술만 습득한 것인지가 관건이다. 대략 세가지 학설이 나뉜다. 첫번째 학설은 조몬인이 점차 현대 일본인으로 진화했다고 보며, 두번째 학설은 야요이 문화가 농업 기술을 가진 한반도 도래인들이 대량 이주한 결과 생겨났다고 본다. 그리고 세번째 학설은 적은 수의 식량생산 이주자들이 건너갔지만 인구가 조몬인들보다 훨씬 빨리 불어나서 곧 그들을 압도했을 거라고 본다. 비슷한 양상의 변화를 보여주는 세계 다른 지역 역사를 고려하면 두번째나 세번째 학설이 더 타당하다는 게 그의 견해다.
<새로 쓴 일본사> 지은이들은 벼농사 문화를 전한 이들을 ‘도래계 야요이인’이라고 부르면서 “본토에서는 도래계인과 조몬계인의 혼혈이 진행되었고, 그 결과 현대의 본토인을 형성했다”고 정리한다. 하지만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야요이인 두개골이 현대 일본인과 가장 닮았으며 도래계 야요이인과 조몬인의 혼혈은 현대 아이누인과 유사하다. 형질인류학적으로 현재 본토인은 1억2000만명 이상이고 아이누인은 2만4000명이 남아 있는 정도다. 다이아몬드가 한국인과 일본인이 ‘쌍둥이 형제’와 같다고 한 이유다. 이런 시각은 한일간 과거사의 상처와 영토 분쟁을 좀 다르게 바라보도록 해주지 않을까.
12. 11.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