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책&(412호)에서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문화대혁명 관련서들을 다루려고 했는데, 자연스레 '그 이후'까지 언급하게 됐다. 안 그래도 중국에서는 오늘 18차 당대회가 개막해서 오는 14일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중국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문화대혁명을 전후로 한 중국현대사에 눈길을 주어봄직하다. 위화의 책이 좋은 출발점이다.

 

 

 

책&(12년 11월호) 중국의 문화대혁명과 그 이후

 

중국 작가 모옌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경제뿐 아니라 중국의 문학 또한 세계적 주목거리가 됐다. 중국문학의 힘은 무엇일까. 모옌, 쑤퉁과 함께 동시대 중국문학 3대 작가로도 꼽히는 위화의 에세이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문학동네, 2012)는 그 힘이 파란만장한 중국 현대사에 대한 성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인상을 깊게 해준다. 그 역사는 크게 구분하자면 마오쩌둥의 정치혁명(문화대혁명)과 덩샤오핑의 경제혁명(개혁개방)으로 나눠지는 역사다. 중요한 것은 이 두 혁명 사이의 단절 못지않은 연속성이다. 오늘의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중국현대사의 핵심적 사건으로 문화대혁명을 간과할 수 없는 이유다.  


1949년 마오쩌둥의 공산당은 국민당의 오랜 투쟁 끝에 승리하여 중국대륙에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마오의 혁명이 종료된 것은 아니었다. 무장투쟁을 동반하지 않을 뿐 혁명은 항구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마오는 믿었다. 대약진운동(1958-1960)과 문화대혁명(1966-1976)이 바로 그러한 혁명의 정점이었다. 그렇지만 1976년 마오가 세상을 떠나고 뒤이어 덩샤오핑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혁명의 시대는 사라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사실 지난 30여 년 동안 이루어진 경제기적에서도 혁명은 사라지지 않았다. 단지 환골탈태하여 다른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을 뿐”이라는 게 위화의 주장이다. 아니 그렇게 지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그는 전한다. 


일례를 들어보자. 개혁개방 첫해인 1978년 중국의 철강생산량은 3천만 톤 남짓이었다. 하지만 불과 2년 뒤에 3천 7백만 톤을 넘겨 세계 5위를 기록하더니 1996년 이후에는 부동의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 2008년에는 철강생산량이 5억 톤을 넘어 전 세계 생산량의 32퍼센트까지 차지하게 됐다. 이는 세계 2위에서 8위까지 국가들의 생산량을 다 합친 것보다 많은 양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놀라운 고속성장이다. 이러한 성장 이면에는 대약진운동 시기의 경험이 깔려 있다. 당시 중국 전역 도시 마당과 농촌 들판에는 소형 용광로가 설치되어 인민 모두가 철강을 제련하는 일에 동원되었다. 영국을 따라잡고 미국을 추월해야 한다는 열기가 충천했다.

 

이러한 상황은 1990년대에 한 번 더 벌어진다. 농민들이 철강노동자로 변신하여 간이 용광로에서 제작한 쇳물을 레미콘차량에 싣고 철강공장에 갖다나름으로써 생산량을 두 배 이상 늘릴 수 있었다. 과거와 다른 것은 농민들이 정치적 구호가 아닌 돈을 위해서 철강제련에 나섰다는 점이다. 위화는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과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이 중국 인민, 혹은 ‘풀뿌리’ 계층에게 두 차례 기회를 가져다주었다고 말한다. 문화대혁명이 정치권력의 새로운 분배였다면 개혁개방은 바로 경제권력의 재분배였다.


이 ‘두 중국’에 대한 자세한 기술은 미국의 중국사학자 모리스 마이스너의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이산, 2004)에서 읽을 수 있다. 저자는 1986년에 펴낸 책의 2판에서 덩샤오핑이 시작한 개혁을 평가하면서 중국의 관료집단체제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길, 모두를 가로막는 장벽이 될 거라고 보았으나 1998년에 펴낸 3판에서는 공산주의 국가가 오히려 중국 자본주의를 촉진하는 핵심요체였다고 견해를 수정한다. 저자의 비교분석에 따르면 애초에 마오는 레닌과 달리 자본주의 문화가 사회주의 건설의 전단계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서양 부르주아 문화와 자본주의 방식이 중국의 유교적 봉건문화만큼이나 유해하다고 판단했고 문화대혁명은 이 두 가지 악영향을 모두 제거하기 위한 시도였다. 물론 이 시도의 밑바탕에는 노년에도 최고 권력자의 자리를 계속 유지하고자 했던 마오의 권력욕도 깔려 있었다. 

 

 


1966년 마오가 ‘사령부를 포격하라’는 대자보를 붙이고 톄안먼 광장에서 수십만의 홍위병을 사열하면서 시작된 문화대혁명은 중국 전역을 광풍으로 뒤덮었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더 멀리 간다>가 이 시기에 성장기를 보낸 위화의 문화대혁명 체험담이라면 천이난의 <문화대혁명, 또 다른 기억>(그린비, 2008)과 션판의 <홍위병>(황소자리, 2004)은 홍위병들의 체험적 회고록이다. 거기에 학술적인 조명까지 얹자면, 백승욱의 <중국 문화대혁명과 정치의 아포리아>(그린비, 2012)는 문혁을 주도했던 조반파의 이론적 배후 천보다의 사상을 집중적으로 검토함으로써 보다 일반론적인 차원에서 문화대혁명이 제시하는 이론적 아포리아를 탐구하는 책이다. 그에 따르면 대중, 혹은 인민이 스스로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과 그 난점을 동시에 보여준 것이 문화대혁명이 머금고 있는 이론적 아포리아다.

 

 


‘인민의 아버지’였던 마오 이후의 시대는 문화대혁명의 광기와 과오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그것이 펼쳐놓은 가능성의 공간에서 시작되었다. 그렇게 해서, 위화의 표현에 따르면 “정치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마오쩌둥의 흑백시대에서 덩샤오핑의 경제지상주의 컬러시대로 접어들었다.”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가. 1980년부터 2010년까지 30년간 고속성장기 중국대륙에서 벌어진 핵심 사건들에 대해서는 카롤린 퓌엘의 <중국을 읽다 1980-2010>(푸른숲, 2012)이 가장 잘 정리해준다.

 

12. 11.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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