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000호)의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가나자와 사토시의 <지능의 사생활>(웅진지식하우스, 2012)의 내용을 몇가지 간추렸다. 진화심리학에서 바라본 지능 문제가 흥미로워서 고른 책이었다. 저자의 책으론 <처음 읽는 진화심리학>(웅진지식하우스, 2008)이 더 소개돼 있다. 앨런 밀러와 공저한 책으로 요긴한 진화심리학 입문서. 대학 교재용으로 많이 읽히는 책은 물론 데이비드 버스의 <진화심리학>(웅진지식하우스, 2012)이다.

 

 

 

주간경향(12. 11. 13) 진보주의자가 지능이 높다?

 

20년 정도의 짧은 역사를 갖고 있지만 진화심리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분야이며, 국내에도 적잖은 관련서가 출간돼 있다. <지능의 사생활>은 가나자와 사토시의 신작으로 지능 문제를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흥미로운 책이다. 원제는 ‘지능의 역설’이다.

 

저자는 진화심리학의 몇 가지 원칙을 소개하고 지능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를 불식시킨 다음에 본격적으로 ‘지능의 역설’을 파헤친다. 어떤 역설인가. “지능이 높은 개인들은 진화가 우리에게 설계해놓지 않은 부자연스러운 선호와 가치관을 갖고 지지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역설이다.

 

 

먼저 지능에 대한 오해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IQ검사가 문화적으로 편향돼 있다거나 IQ가 환경에 의해 결정되며 교육을 통해서 높일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을 반박한다. 그에 따르면 IQ검사는 객관적이며 혈압이나 체중 측정 이상의 정확도를 갖는다. 혈압이나 체중이 문화적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듯이 IQ 또한 그렇다. 또한 지능은 주로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

 

유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지능이 우리의 생존과 번식에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어떤 특성의 유전 가능성과 적응성은 일반적으로 반비례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지능은 장구한 기간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수렵채집 생활을 한 우리 조상들에게는 진화적으로 새로운 아주 협소한 영역에서만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진화적으로 익숙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굳이 높은 지능이 필요하지 않으며, 지능이 높다고 해서 지능이 낮은 개인보다 문제를 더 잘 해결하는 것도 아니다. 지능이 높을수록 상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으며 결혼과 번식이라는 진화적으로 익숙한 영역에서는 특별히 유리하지도 않다.

 

문제는 지난 1만년 동안 우리의 환경이 아주 급격하게 달라지면서 지능이 다른 심리기제들보다 중요하게 됐다는 점이다. 곧 지능이 낮은 개인은 지능이 높은 개인보다 진화적으로 새로운 상황을 이해하고 처리하는 데 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지능과 정치의 관계를 예로 들어보자. 소규모로 무리를 지어 수렵채집 생활을 했던 진화의 역사 대부분 동안 우리 조상들이 평등주의적이고 민주적이었다 하더라도 보통선거권이나 비례대표제 같은 현대 대의민주주의의 장치들은 진화적으로 새로운 것이다. 그에 비하면 세습군주제에 대한 욕구가 차라리 진화적으로 익숙하다. 즉 우리의 뇌는 대의민주주의에 맞게끔 진화하지 않았다. 지능의 역설에 따르면 이런 경우 지능이 높은 개인과 집단이 반대 경우보다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욕구와 수용력이 더 크다. 달리 말하면 인구의 평균지능이 높을수록 그 정부는 더 민주적이다.

 

정치적 진보주의와 보수주의에도 지능의 역설은 적용된다. “유전자적으로 무관한 다른 사람들의 복지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이들 타인의 복지를 위해 사적 자원의 많은 부분을 내놓는 자발성”으로 진보주의를 정의한다면 이것은 진화적으로 새로운 것이다. 우리의 뇌는 완전히 낯선 불특정 다수에게까지 이타적으로 행동하도록 설계돼 있지 않다. 즉 진보주의는 진화한 인간의 본성에 속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정치이념을 받아들이려면 평균보다 높은 지능이 필요하다. 실제로 ‘아주 보수적’인 미국 청년과 ‘아주 진보적’인 미국 청년이라는 범주의 청소년기 IQ를 조사해보니 전자가 평균 94.82점이었던 데 비해 후자는 106.42였다. 여기서 11점은 작지 않은 차이며, 통계학적으로 유의미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진보는 인간에게 부자연스러운 이념이지만 “평균지능이 높은 국민일수록 소득세를 더 많이 내고 소득분배가 더 평등하다”는 사실이 지능의 역설이다.

 

12. 1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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