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사이드의 <지식인의 표상>(마티, 2012)을 읽다가 문득 어제오늘 펼쳐본 책들의 공통점이 눈에 띄기에 적는다. 다름아니라 강연록이라는 점. 오르한 파묵의 <소설과 소설가>(민음사, 2012), 그리고 뇌신경과학자 마이클 가자니가의 <뇌로부터의 자유>(추수밭, 2012)가 모두 같은 성격의 책이다.

 

 

사이드의 책은 <권력의 지성인>(창, 1996/2011)이란 제목으로 나온 적이 있는데(번역이 좋지 않았다), 이번에 에드워드 사이드 선집의 하나로 새로 번역돼 나왔다. 원래의 제목을 찾은 이 책은 영국 BBC방송의 리스강좌를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다. 사이드는 1993년에 이 강좌를 맡아 진행했었다.

 

 

<지식인의 표상>이 제대로 번역됨으로써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학사, 2007)과 함께 대표적인 지식인론을 편하게 읽을 수 있게 됐다. 거기에 한권 더 얹자면 토니 주트의 <지식인의 책임>(오월의봄, 2012)도 유력한 후보다. 사이드는 존 캐리의 <지식인과 대중>(1993)이 강연 원고를 마친 이후에 읽은 흥미로운 저작이라고 평했지만 우리말로는 번역되지 않았다.  

 

 

 

파묵의 <소설과 소설가>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소설론이라 흥미를 끄는 책인데, 하버드대학의 노턴 강좌에 초빙받아 강연한 원고를 모은 것이다. 원제는 '소박한 소설가와 성찰적 소설가'로 프리드리히 실러의 저명한 논문에서 제목을 따왔다. 국내에는 <소박문학과 감상문학>(인하대출판부, 1996)으로 번역돼 있는 논문이다.

 

 

 

파묵은 강좌를 준비하면서 두 권의 책을 참고했다고 하는데, 놀랍게도 너무 친숙한 책들이다. 포스터의 <소설의 이해>와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이어서 그렇다. 1952년생인 저자와는 세대 차이가 없는 거 아닌가 싶어 좀 신기했다. 쿤데라의 소설론을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랄까(쿤데라는 1929년생이다).

 

 

가자니가의 <뇌로부터의 자유>는 저명한 기포드 강좌를 책으로 묶은 것이다.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밝히고 있지만 윌리엄 제임스, 닐스 보어,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 등이 이 강좌의 선배 강연자들이었다. 저자의 명망을 확인하게 해주는데, 세계적인 뇌과학자가 인간과 자유의 문제를 어떻게 보는지 경청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이 주제에 관한 책들이 여럿 나와 있어서 같이 비교해보며 읽을 수도 있겠다). 

 

'강연록'이란 형식 때문에(물론 책으로 낼 때 많이 보완되지만) 세 명의 저자를 같이 묶어 보았다. 주제로 묶는다면 '지식인-소설-뇌'가 될까. 어느 쪽을 고르든지 한동안 열독할 만한 책들이 나와 있어서 반갑다(나는 파묵의 소설도 이번에 잔뜩 구했다). 이 책들과 함께 10월은 시작된다...

 

12. 10.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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