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뤄놓은 일이 많더라도 당장은 연휴 기분을 내보도록 한다(그래봐야 이달의 읽을 만한 책들을 골라놓는 것이지만). 어느덧 10월이 되는군. 가는 세월이 아쉬운 법이지만, 대선 국면이라 올해는 꽤 긴장감 넘치는 연말이 될 듯싶다. 독서 또한 그런 분위기를 타면 좋겠다. 흥미진진한 독서...

 

 

 

1. 문학

 

김미현 교수가 추천한 책은 이승우의 <지상의 노래>(민음사, 2012)다. "작가 이승우가 십수 년 전부터 구상해 온 모티프를 가지고, 인간 존재와 내면세계에 대한 다층적 사유와 철학으로 욕망과 죄의식의 근원을 파헤친 또 하나의 문제작". 소개된 줄거리만으로도 작가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을 법한 소설이다. 한국 작가의 소설로 박성의 소설집 <하루>(문학과지성사, 2012)와 백가흠의 첫 장편소설 <나프탈렌>(현대문학, 2012)도 같이 읽어볼 만하겠다. 10월이면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발표될 터이니 10월의 외국작가는 공란으로 남겨놓는다.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고른 역사서는 오항년의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너머북스, 2012)이다. 요즘 흥행작 <광해, 왕이 된 남자> 덕분에 새삼 주목받는 군주가 광해군인데, 찾아보면 본격적인 역사서가 극히 드물다. 한명기 교수의 <광해군>(역사비평사, 2000)을 더 얹을 수 있는 정도다. 광해군에 대한 저자의 시각은 '그 위험한 거울'이란 부제에 드러나 있다. 광해군 시대에 대한 평가적 논쟁에 불을 당기는 책으로도 읽힌다.

 

 

 

3. 철학

 

박인철 교수가 고른 책은 권용혁의 <한국가족, 철학으로 바라보다>(이학사, 2012)이다. 제목이 책의 요강을 말해주고 있는 책. 서구의 철학적 개념이 한국의 가족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하에 저자는 새로운 해석의 틀을 모색한다. 말이 나온 김에 학술적인 성격의 책은 더 고르자면 양현아 교수의 <한국 가족법 읽기>(창비, 2012), 손승영 교수의 <한국 가족과 젠더>(집문당, 2011) 등이 더 참고할 만한 책들이다.

 

 

 

4. 정치/사회

 

마인섭 교수가 추천한 책은 지그문트 바우만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동녘, 2012)이다. "바우만이 그의 유동하는 근대의 불안한 삶이라는 관점에서 세대차이, 온라인과 트위터, 프라이버시, 소비, 유행, 불평등, 교육, 공포, 종교, 운명과 성격 등의 일상의 주제를 읽기편한 문체로 쓴 44개의 편지"로 구성된 책. 그런 성찰과 더불어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진단도 우리에겐 필요한데, 독일 해적당의 탄생과 성공 비결을 다룬 마르틴 호이즐러의 <해적당>(로도스, 2012), 그리고 시사평론가 김종배의 <30대 정치학>(반비, 2012)이 안팎의 상황을 들여다보도록 해준다.

 

 

정치와는 별도로 '정치학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알려주는 <그들은 어떻게 최고의 정치학자가 되었나>(후마니타스, 2012)도 이번에 완간되었기에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같이 골라놓는다. "비교정치학 분야에서 지난 50년간 가장 큰 학문적 업적을 남긴 석학 15인과의 인터뷰를 담은 책"이다.

 

 

5. 경제/경영

 

박원함 교수가 고른 책은 함유근, 채승병의 <빅데이터, 경영을 바꾸다>(삼성경제연구소, 2012). 과문하여 모르고 있었는데, '빅데이터'란 말이 요즘 뜨는 모양이다. 이미 관련서들도 몇 권 더 나와 있는데, 설명을 보니 "빅데이터는 정보화 시대에 인터넷과 모바일 및 활자매체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다양한 데이터를 모두 포괄한다. 데이터가 들어오는 속도도 매우 빠르다는 점에서 종래의 데이터와 다르다." 빅데이터 시대에 대한 조감도를 얻는 데 도움을 줄 만한 책 같다.

 

 

더불어, 자본주의에 관한 책 몇 권의 독서목록에 올려두고 싶다. '천박한 자본주의에서 괜찮은 자본주의로'란 부제의 <자본주의 고쳐쓰기>(한겨레출판, 2012)가 이번에 나온 책이고, <자연자본주의>(공존, 2011)와 <자본주의4.0>(컬처앤스토리, 2011) 등도 화제를 모았던 책들이다(나는 이번에 구입했다).

 

 

6. 과학

 

김웅서 위원이 고른 과학서는 정갑수의 <세상을 움직이는 물리>(다른, 2012)다. "중력에서부터 나노과학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 위대한 과학적 발견을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들과 함께 살펴"본 책. 최근에 양자 물리학과 관련한 교양서로 <얽힘의 시대>(부키, 2012)와 <양자 불가사의>(지양사, 2012)도 출간됐는데, 이 분야의 독자들에겐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될 듯싶다.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고른 책은 오랜만에 사진책이다. 셔터 시스터스의 <내가 제일 아끼는 사진>(이봄, 2012). '셔터 시스터스'는 사진을 통해 마음을 나누는 사진가들의 모임이라고 하는데, '시스터스'란 말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여성들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친한 친구의 앨범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힐링 포토북'이란 평이다.  

 

 

 

8. 교양

 

내가 고른 교양서는 전성원의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인물과사상사, 2012)다.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 운영자이기도 저자의 문제의식과 공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추천사를 일부 옮기면 이렇다.

자동차왕 헨리 포드에서 ‘살림의 여왕’ 마사 스튜어트까지 저자가 고른 인물들은 대부분 성공적인 기업의 창업자이거나 운영자들이다. 이들 가운데는 월마트의 창업자가 샘 월튼, ‘메이드 인 저팬’의 신화를 만든 소니의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를 비롯해 호텔의 제왕 콘래드 힐튼, <플레이보이>를 창간하면서 포르노제국을 건설한 휴 헤프너까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들도 있고, 대중심리를 조종하는 선전 전략의 창안자로 ‘PR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드워드 버네이스나 중남미 ‘바나나 공화국’을 농단했던 유나이티드프루트컴퍼니의 경영자 새뮤얼 제머리처럼 숨겨진 인물들도 있다. 공통적인 것은 모두가 우리의 일상을 바꾼 ‘혁명가’들이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지배자’들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이들에 대한 흥미로운 평전을 겸하면서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는 우리가 누리는 일상에 대한 빼어난 성찰을 제공한다.

교양서로 같이 읽어볼 만한 평전들로 눈길을 돌리니 크메르 루즈 살인고문관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본 티에리 크루벨리에의 <자백의 대가>(글항아리, 2012)와 터키 건국의 아버지 아타튀르크의 일대기를 다룬 앤드류 망고의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애플미디어, 2012)도 흥미를 끈다.

 

 

9. 실용

 

이계성 위원이 고른 책은 임정묵의 <좋은 아버지 수업>(좋은날들, 2012)이다. 흠, 별로 읽고 싶지 않은 책이지만, 뒤늦게 후회하고 싶지 않은 아버지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라니 '울며 겨자먹기'다. <대한민국 부모>(문학동네, 2012)와 <10대의 부모로 산다는 것>(아름다운사람들, 2012) 등도 '좋은 부모' 카테고리의 책들 가운데에서 호응을 얻고 있는 책들이다. 그러고 보니 나 또한 '10대의 부모'로군...

 

 

10. 브루스 채트윈

 

이달의 주제로 고른 작가는 브루스 채트윈이다. 사실 이름도 모르고 있었는데, 여행문학이 브루스 채트윈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평판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됐다. 찾아보니 펭귄판으로도 나와 있어서 한번 더 주목하게 됐고. '여행기라면 채트윈처럼'이라고 할까. <파타고니아>(현암사, 2012)와 <송라인>(현암사, 2012), 두 권이 이번에 나왔는데, 가을 분위기를 타고 훌쩍 어딘가로 떠날 때 가방에 꼭 챙겨갈 만한 책이다. 

 

12. 09. 28.

 

 

P.S. 10월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민음사, 2012)을 고른다. 마침 이번에 박상진 교수의 완역본 나왔기 때문인데, 그간에 몇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었지만(나도 을유문화사판을 갖고 있었다) 왠지 손에 들게 되진 않았다. 이번에 나온 새 번역본이 정본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음, 피에르 파졸리니의 영화 <데카메론>도 이 참에 챙겨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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