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나온 책 가운데 <여성, 거세당하다>(텍스트, 2012) 덕분에 안면을 트게 된 저자가 '20세기 후반의 가장 중요한 페미니스트'로 소개되는 저메인 그리어이다. 저명한 셰익스피어 학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놀라 그녀가 쓴 셰익스피어 입문서를 <여성, 거세당하다> 원서와 같이 구입하기도 했다(<셰익스피어의 아내> 같은 책도 소개되면 좋겠다).

 

 

 

<여성, 거세당하다>(1970)는 저메인 그리어의 데뷔작이기도 한데, 국내엔 그보다 먼저 <보이>(새물결, 2004)란 책이 소개됐었다. 이번에 알게 돼 구입한 책인데(2004년에 나왔으니 내가 모를 만하다), '아름다운 소년'이 부제. 일종의 화집 성격의 책이다. 소개에 따르면 "19세기 이후 망각 속으로 사라져버린 '소년들'을 복권해내고 있는 책"으로 저자는 "여성의 벌거벗은 육체가 미의 이상으로 규범화된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일 뿐이라며, 동물의 세계에서 아름답게 치장하는 쪽은 수컷들이듯 자본주의 이전의 문화에서도 남성들이 더 아름다웠다고 말한다. 그리고 수많은 도판자료들을 통해 19세기 이전의 '소년들'을 불러낸다."

 

 

 

한편 <여성, 거세당하다>를 표지에서 구면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바로 <비치: 음탕한 계집>(황금가지, 2003)과 <프로작 네이션>(민음사, 2011)의 저자 엘리자베스 워첼이다. 책의 발문 중 하나를 워첼이 쓰고 있는데, 그녀는 이 선배 페미니스트의 책에 대해서 이렇게 평했다. "이 책이 내 삶을 바꿔놓았다. 저메인 그리어는 무모하리만큼 용감하며 예리하고 도발적이다."(This book changed my life. Germaine Greer is brave and crazy, serious and fun, sharp and sexy.) 워첼의 책은 2004년에 나온 게 신작인 걸 보면 활동이 뜸한 듯하다.

 

여하튼 두 사람이 <여성, 거세당하다>란 책을 통해 엮인다는 걸 알게 됐다. 1970년이면 42년 전에 나온 책인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책에는 1991년판 저자의 서문이 맨앞에 붙어 있는데, 저메인 그리어도 이 문제를 먼저 언급한다. "20년 전 <여성, 거세당하다> 서문에서 나는 이 책이 금방 시대에 뒤처져 사라지리라 생각한다고 썼다. 나는 20세기 후반에 선진국에서 이뤄지고 있던 성 억압에 대한 내 분석과 전혀 무관한 새로운 유형의 여성이 지구에 나타나길 바랐다."

 

 

 

그런 서두라면, 그 다음엔 실제로 새로운 여성들이 많이 등장했지만 성에 대한 억압 또한 여전히 존속하고 있기에 이 책이 던지는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 식의 애기를 자연스레 기대해볼 수 있다. 이 서문의 제목이 번역본에는 '팔라딘 출판사의 21세기 기념판 서문'이라고 돼 있는데, 오류이다. '21st Anniversary Edition'(21주년 기념판)에 붙인 서문이다. '21주년'을 '21세기'로 옮긴 건 나름대로 전략적 판단의 결과일지도 모르겠지만, 사실과는 무관하다. 사실 '21주년 기념판'이란 게 혼동을 낳을 만하다. 보통은 '20주년'처럼 10년 단위로 끊어지니까. 추정컨대, '20주년 기념판'을 내려고 준비했지만 좀 늦어졌던 게 아닌가 싶다.

 

 

 

<여성, 거세당하다>는 다른 책들에서 보통 <거세된 여성>이나 <거세된 여자>란 제목으로 번역됐는데, 찾아보니 크리스티아네 취른트의 <책>(들녘, 2003), 데보라 펠더의 <여성의 삶을 바꾼 책 50권>(부글북스, 2007) 등에서 언급된다. <게코스키의 독서편력>(뮤진트리, 2011)의 한 장도 <거세된 여자>에 할애돼 있는데, 저메인 그리어의 이런 말을 인용하고 있다. “해방 전략의 열쇠는 상황을 까발리는 데 있으며, 그렇게 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더할 나위 없이 뻔뻔한 말과 행동으로 학자와 전문가를 격분시키는 것이다.”

 

 

12. 0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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