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990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지난주에 이런저런 관련서를 뒤적이게 한 백승종의 <정감록 미스터리>(푸른역사, 2012)에 대해 적었다. 저자의 <정감록>를 마무리하는 책이어서 좀더 체계적인 독서를 원한다면 <한국의 예언문화사>(푸른역사, 2006)부터 읽거나 김탁의 해설서 <정감록>(살림, 2005)와 같이 읽는 것도 좋겠다(책이 절판돼 나는 지난주에 도서관에서 대출했다). 예언문화사에 대한 논문집으로 저자의 문제의식의 기원을 엿볼 수 있다. 책에는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많이 포함돼 있지만 다른 리뷰들과의 중복을 피하다 보니 좀 맨숭맨숭해졌다...
주간경향(12. 08. 28) 성리학에 대한 '대항 이데올로기'는 존재했나
조선시대 가장 대표적인 금서이면서 동시에 비공식 베스트셀러였던 책은? 그렇다, <정감록>이다. 하지만 우리의 상식은 그 정도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 조선왕조의 몰락을 예언한 책이라고 하지만 <정감록>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며, 누가 쓴 것이고, ‘정도령’이나 계룡산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등등 우리가 상식선에서 답할 수 없는 물음이 수두룩하다. 이런 것이 <정감록>을 둘러싼 미스터리다.
한국의 예언문화사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백승종의 <정감록 미스터리>는 제목 그대로 이 미스터리들에 대해 “미제사건을 풀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영화 속의 이름난 형사”처럼 파고들어간 책이다. 놀랍게도 그는 이 ‘미제사건’에 20년 이상 몰두해 왔다! 더불어 놀라운 것은 이 책이 그간의 예언서 연구를 일단락짓는 의미를 갖는다는 점. 그 후일담으로 내놓은 것이 <정감록 미스터리>라면 ‘정감록’은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는 듯도 하다. 하지만 성과가 없는 건 아니다. 우리가 무얼 알게 됐고 무얼 아직 모르는지 아는 것도 앎이고, 앎의 진전이니까.
애초에 발단은 조선의 지배 이데올로기(성리학)를 상대로 한 ‘대항 이데올로기’가 과연 존재했던가에 대한 관심이었다. 조선후기 사회사를 전공한 저자는 지배문화와 맞선 다른 문화, 새로운 문화는 없었는지 탐색해보고자 했다. 그런 과정에서 발견한 주제가 조선의 예언문화였고 <정감록>이었다. 문자로 기록된 한국 예언서의 역사는 1350여년을 헤아린다지만, 한국 역사에서 예언문화의 전성기는 18∼20세기였고 <정감록>은 예언문화의 핵심이자 ‘태풍의 눈’과도 같은 책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최초의 기록은 영조 15년이다. 1739년께 황해도, 함경도 및 평안도 지방에서 ‘정감의 참위한 글’로서 <정감록>이 유행하고 있다는 보고에 영조는 그런 ‘나쁜 기운’은 ‘좋은 기운’을 북돋우면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라고 훈시한다. 하지만 성리학이란 ‘좋은 기운’은 양난을 겪은 조선후기 민중들에게 더 이상 미치지 못했다. <정감록>의 주된 내용에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진인(眞人)의 출현에 대한 예언과 함께 난을 피하게 해줄 명당 혹은 길지로서 십승지(十勝地)가 포함돼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조선후기 사회사적 맥락에서 <정감록>의 등장을 이해하는 저자는 이 시기에 지식의 생산과 소비가 더 이상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평민층에서도 독서인이 나오고 그들이 직접 저술에 참여하기도 하면서 사회문화적 지각변동이 일어난 것이다. 종이의 생산량이 늘어나 책이 흔해진 것도 <정감록>의 필사본 유행을 거들었다. 18세기의 <정감록> 초기본이 한글본이었다는 사실은 그런 점에서 중요한데, 현재 남아있지 않아서 한문본과 한글본 <정감록>이 어떤 관계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앞으로 규명해야 할 과제이자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다.
<정감록>에 대한 독보적인 연구를 통해서 저자는 조선후기 평민 지식인들이 생산·보급한 <정감록>이 동학과 증산교, 원불교 등 대표적인 신종교들의 산파가 됐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신종교가 기성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대체하기 전에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것이 우리 현대사의 불행인데,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 초반 보천교라는 신종교의 신도 수가 600만명을 헤아렸다고 하니까 그 교세가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알 수 있다. “때가 되면 진인이 나와서 계룡산에 도읍한다”는 <정감록> 신앙이 그토록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민중의 갈망이 그만큼 컸다는 증거다. “<정감록>은 난세를 만난 민중의 나침반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아직도 <정감록>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가.
12. 08. 22.
P.S. <정감록 미스터리>를 읽으며 궁금했던 것 중의 하나는 당시 지배층 양반들이 읽은 <주역>과의 관계다. 미래를 내다보기 위한 용도라는 점에서는 <정감록>이나 <주역>이나 비슷하니까. 둘 사이의 접점은 무엇이고, 어떻게 읽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