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책&(409호)에서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주제는 '삼국지'이다. 적잖은 관련서들 가운데 몇 권을 언급했는데, 생각해보니 이중톈의 <삼국지 강의>(김영사) 등은 빼놓았다. 김구용 선생 번역의 <삼국지연의>(솔출판사)를 읽게 되면 참고하고 싶다. 관련서 가운데 <삼국지 해제>(김영사, 2003)는 절판됐다...

 

 

 

책&(12년 8월호) 삼국지의 재발견

 

고전이라면 언제라도 다시 읽어볼 만한 책, 곧 ‘다시 읽기’의 대상으로 간주되지만 예외도 없지 않다. ‘다시 읽어야 하나’를 고심하게 만드는 경우다. <나관중 삼국지> 혹은 그냥 <삼국지>라 불리는 <삼국지연의>가 대표적이지 않을까. <삼국지>에 관한 두 가지 통설만 하더라도 순진한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한쪽에서는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하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다른 쪽에서는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하고는 만나지도 말라!”고 말한다. 일독은 하되, 삼독은 곤란한 책? 무엇이 문제인가? <삼국지>와는 별도로 ‘<삼국지>에 관한 책’에도 눈길이 안 갈 수 없다. 과연 <삼국지>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전체적인 맥락을 알려주는 책으론 중국의 역사학자 여사면의 <삼국지를 읽다>(유유, 2012)가 요긴하다.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저자는 전목, 진인각, 진원과 함께 중국 근대 4대 역사학자로 꼽힌다 한다. 그가 쓴 유일한 대중교양서가 1940년대에 나온 <삼국지를 읽다>인데, 이 역사학의 대가가 <삼국지>에 주목한 것은 당시로서도 중국의 출판물 가운데 가장 널리 팔리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학교에서 가르쳐보니 역사에 대한 대중의 지식은 터무니없는 경우가 많았지만 유독 삼국시대에 관해서만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삼국지> 덕분이다. 다만 정사(正史)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더라도 소설인 만큼 <삼국지>에는 교정되어야 할 대목이 적잖게 들어 있다. 저자가 기존의 잘못된 관점을 바로잡는 ‘고쳐 읽기’를 시도한 이유다.

 


가령 <삼국지>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적벽대전의 진실은 무엇일까? 저자는 적벽대전 당시 조조, 유비, 손권의 형세를 자세히 짚은 다음에 적벽에서 대적한 양측의 군사력을 비교한다. 북방에서 온 조조군이 대략 20여만 명이었고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이 5만 정도 돼 대략 5대 1의 비율이었다. 하지만 남방의 연합군이 지리에 대한 숙지와 수전(水戰) 숙련도에서 앞섰고, 황개의 화공책이 가세해 조조군을 대파할 수 있었다. 비록 연합군의 승리로 돌아가긴 했지만 손권이 조조에 대항하기로 결심한 이유가 저자는 미심쩍다고 본다. 손권이 조조에게 항복했다면 당시 상황으로는 각별한 대우를 받았을 것이고 천하도 좀 더 일찍 통일되어 분열의 재앙을 피할 수 있었으리라는 것이 역사학자의 논평이다. 


적벽대전의 자세한 진상은 김운회 교수의 <삼국지 바로 읽기>(삼인, 2004)를 통해서도 읽을 수 있다. 이 전투에 할애된 분량이 <삼국지>의 거의 10분의 1에 육박하지만 내용의 90퍼센트 이상이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하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예컨대 화공을 제안하고 이를 성공시킨 적벽대전의 실제 영웅은 주유의 부장 황개이지만 <삼국지>에서는 모든 것이 제갈량의 공으로 돌려진다. 또 적벽대전에 동원된 조조군의 수가 많아야 15만 이하였던 것으로 추정하며, 정사들의 기록으로 보건대 이 전투가 갖는 의의도 너무 과장됐다고 지적한다. 물론 삼국시대의 개막을 알린 신호탄이었던 만큼 적벽대전이 <삼국지>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외교관으로서 손권을 설득한 것 정도가 제갈량의 실제 역할이었더라도 그가 모든 것을 지휘한 것처럼 꾸며서 제갈량을 빼놓은 적벽대전은 상상할 수 없게끔 만든 것도 <삼국지>의 위력이다.

 

 


<삼국지>의 위력은 동시에 <삼국지>의 위험성을 말해준다. 류짜이푸의 <쌍전>(글항아리, 2012)은 이 위험성을 본격적으로 문제 삼는다. <수호전>과 <삼국지>를 중국문학사의 문제적인 두 경전으로 비판하는 저자는 <삼국지>를 한마디로 ‘중국 권모술수의 집대성’이라고 평한다. 중국의 민간에는 어려서는 <수호전>을 읽지 말고, 나이 들어서는 <삼국지>를 읽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고 한다. 문학적으로는 걸작이라고 평해줄 수 있지만 정신적으로나 도덕적으로는 배울 게 없는 작품, 아니 오히려 유해한 것만 배우게 되는 작품이 <삼국지>라는 뜻이겠다.

 

이미 1917년에 중국사상가 이종오는 <후흑학>에서 중국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후흑’이란 두 글자로 읽어냈는데, ‘후(厚)’란 얼굴 가죽이 유비처럼 두꺼운 자를 말하며 ‘흑(黑)’이란 조조처럼 속마음이 시커먼 자를 가리킨다. <삼국지>의 두 인물 가운데, 누가 진정한 영웅인가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곤 하지만 후흑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낯이 두꺼운 자’와 ‘속이 시커먼 자’를 두고 누가 더 나은가를 논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류짜이푸는 유비를 유가적 술수의 달인으로 조조를 법가적 술수의 대가로 평가한다.


이 ‘후흑’의 대가들이 어떤 본보기가 될 수 있을까. <삼국지> 군웅들의 리더십을 다룬 신동준의 <삼국지, 군웅과 치도를 논하다>(지식산업사, 2011)는 조조를 응변(應辯)의 인물로, 유비를 가인(假仁)의 인물로 평한다. ‘난세의 간웅’으로도 불리지만 조조는 임기응변으로 난세를 넘어선 탁월한 군사전문가이자 인문주의자였다. 반면에 유비는 능력은 출중하지 못했지만 사람을 볼 줄 알았다. 겉으로는 관인(寬仁)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는 냉정한 판단력으로 뛰어난 인물을 만나면 기꺼이 자신을 낮춰 인재를 거둬들였다. 다만 조조와 같은 시대를 산 것이 그에겐 악운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12. 08. 10.

 

 

P.S. 참고로 삼국지 강의는 이중톈의 책 두 권과 함께 리둥팡의 <삼국지 교양강의>(돌베개, 2010)가 소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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