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 덕분에 그래도 개운하게 맞은 7월이다. 대학 강의는 모두 마무리됐기에(성적처리가 아직 남은 곳도 있지만) 일정과 무관하게 '방학'이긴 하다. 독서시간도 그만큼 늘어났으면 싶지만, 결과는 두고봐야 하리라. '7월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놓는다.

 

 

 

1. 문학

 

김미현 교수가 고른 책은 은희경의 <태연한 인생>(창비, 2012)이다. 은희경 소설의 애독자는 아니지만 "소설 속에 인용되고 있듯이 “이제부터는 쓸쓸할 줄 뻔히 알고 살아야 한다.”(허연, 「일요일」중에서) 최소한 이 소설을 읽으면 문학-연애-인생에서의 상실을 경험하게 될지언정 패배하지는 않게 된다."라는 소개를 보니, 역시나 '은희경 소설'다운 장편인 듯하다. 산문집 <생각의 일요일들>(달, 2011), 장정이 바뀌어 나온 데뷔작 <새의 선물>(문학동네, 2010)까지 패키지로 묶어도 좋겠다. 태연하게.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고른 역사책은 강명관의 <그림으로 읽는 조선 여성의 역사>(휴머니스트, 2012)이다. "150여 점의 그림을 통해 조선 여성의 역사를 복원해 본" 책. 조선 여성사에 관한 책이 썩 많진 않은데, <조선 여성의 일생>(글항아리, 2010), <조선의 여성들, 부자유한 시대에 너무나 비범했던>(돌베개, 2004)와 같이 읽어봄 직하다.

 

 

찾아보니 근현대 여성사 책도 세 권짜리로 작년에 나왔었다. <한국 근현대 여성사>(모티브북, 2011)이란 타이틀이다. 어찌된 일인지 전혀 기억에 없는 책이다. 세일즈포인트로 봐선 별로 주목받지 못햇던 듯하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고른 책은 스티븐 랜즈버그의 <경제학자 철학에 답하다>(부키, 2012). <발칙한 경제학>(웅진지식하우스, 2008), <런치타임 경제학>(바다출판사, 2005)의 저자가 쓴 신작이다. 원제는 '빅 퀘스천'. 경제학자가 철학적 문제들에 답하고자 한 점이 가장 큰 특징인 책. "철학자들이 경제학의 근거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연구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수학자 겸 경제학자가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연구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면서도 환영할 일"이란 평이다.

 

 

맘 먹고 철학 입문서를 읽어보려는 독자라면 적절한 가이드로 삼을 만한 책도 몇 권 출간됐는데, 케임브리지대학의 고전철학 교수 사이먼 블랙번의 <철학을 낳은 위대한 질문들>(휴먼사이언스, 2012)가 대표적이다. 줄스 에반스의 <철학을 권하다>(길벗, 2012)도 요긴한 길잡이가 될 만한 책인데, 개인적으론 추천사를 쓰느라 미리 훑어볼 기회가 있었다. 이렇게 적었다.

"철학은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 습관을 통해서이다. 반복적인 훈련과 실천을 통해서 철학이 습관이 될 때 삶은 바뀐다. 철학이 우리 정신의 근육이 될 때 공동체적 삶도 바뀌어간다. <철학을 권하다>는 그 철학의 기본근육을 만들어주는 최적의 학당이요 도장이라 할 만하다."

덧붙여, 동시대 철학자들의 근황이 궁금하다면 <볼온한 철학자>(이후, 2012)를 통해 8인의 철학자와 만나볼 수도 있겠다. 지난주에 방한했던 슬라보예 지젝과의 인터뷰도 포함돼 있는데, 개인적으론 이달에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이 책을 교재로 한 강의(http://cafe.daum.net/purunacademy/8Bko/33)도 진행한다('산책'에 동참하고픈 분은 참고하시길).

 

 

4. 정치/사회

 

마인섭 교수가 추천한 책은 조은의 <사당동 더하기 25>(또하나의문화, 2012)다. 사회학자가 참여관찰과 질적 연구 방법론을 동원해 기술한 "불량 주거지에 거주하는 한 빈민 가족의 가난한 삶의 기록"이다. 지난 4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골라놓은 적이 있지만, <벼랑에 선 사람들>(오월의봄, 2012)과 <가난의 시대>(동녘, 2012)도 같이 읽을 만한 책으로 한번 더 불러다놓는다.

 

 

 

빈곤과 함께 관심을 가져볼 만한 테마는 '20대'이다. <88만원 세대> 이후 하나의 트렌드를 이루고 있는 쪽인데, 최근에 20대 사회학을 다룬 몇 권 더 나왔다. 리처드 세서터텐 등의 <20대=독립은 끝났다!>(에코의서재, 2012)와 로스 펄린의 <청춘 착취자들>(사월의책, 2012) 등이 거기에 속한다. 국내서로는 <청춘을 반납한다>(인물과사상사, 2012)에서 우리시대 20대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

 

 

 

5. 경제/경영

 

경제/경영부터는 한참 쓴 걸 날려버리고 다시 쓴다(아무래도 더 짧게 쓰게 된다). 박원암 교수가 고른 책은 아비지트 배너지 외,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생각연구소, 2012). 제목을 반복하자면, 가난한 사람들의 행동이 나름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책. 빈곤의 경제학 외 요즘 트렌드를 이루는 건 경제학의 빈곤을 주제로 한 책들인데, 최근에도 존 퀴긴의 <경제학의 5가지 유령들>(21세기북스, 2012)와 이브 스미스의 <이콘드>(21세기북스, 2012)가 출간됐다. <이콘드>의 부제는 '탐욕경제학의 종말'. 말 그대로 '종말'이 범람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데, 새로운 희망을 과연 찾을 수 있을까. 지젝의 말대로, "파국적이지만 심각하진 않아..."라는 게 우리의 (대책없는) 대응 자세일까... 

 

 

 

6. 과학

 

김웅서 위원이 추천한 책은 이강영 교수의 <보이지 않는 세계>(휴먼사이언스, 2012)다. 작년에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한 (사이언스북스, 2011)의 저자가 연이어 쓴 물리학 안내서이다. 월터 르윈의 <나의 행복한 물리학 특강>(김영사, 2012)와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추천한 책은 모처럼 음악책이다. 카트린 마십의 <음악의 모험>(한길아트, 2012). 올해 음악학 분야의 관심도서로 몇 권 나온 게 있었는데, 같이 언급할 수 있게 돼 반갑다. 존 파웰의 <과학으로 풀어보는 음악의 비밀>(뮤진트리, 2012)와 크리스티안 레만의 <음악의 탄생>(마고북스, 2012)가 기억하고 있던 책 두 권이다. 좋은 세월을 만나면 모아서 읽어봐야겠다.

 

 

 

8. 교양

 

내가 고른 교양서는 후베르트 필저의 <최초의 것>(지식트리, 2012)이다. 직립보행부터 시작하여 18가지 '최초의 것'에 관한 우리의지식을 업데이트 시켜주는 책이다. 브라이언 페이건의 <크로마뇽>(더숲, 2012), 그리고 스펜서 웰스의 <판도라의 씨앗>(을유문화사, 2012)과 같이 읽으면 독서의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9. 실용

 

손수호 위원이 고른 책은 오영욱의 <그래도 나는 서울이 좋다>(페이퍼스토리, 2012)다. '오기사'란 필명으로 더 유명하다는 저자의 건축 에세이. 소개에 따르면, "오영욱 글의 특징은 건축에 대한 엄숙주의나 근본주의에 빠지지 않고 쿨하다는 것이다. 이 책 또한 거대도시 서울을 흔적, 장소, 집합, 기호, 상징, 미학, 기억, 상상 등 8개의 키워드로 가볍게 읽어낸다."

 

 

 

10. 현대 일본사상

 

내가 고른 주제는 현대 일본사상이다. 더 구체적으론 1970년대생 비평가들의 작업이 관심거리인데, 가라타니 고진과 아사다 아키라 이후의 스타 아즈마 히로키의 책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현실문화연구, 2012)과 <일반의지 2.0>(현실문화, 2012)가 연이어 출간된 게 계기. 동갑내기로 역시나 프랑스 현대철학이 주전공인 사토 요시유키의 <권력과 저항>(난장, 2012)도 같이 읽어볼 수 있겠다.

 

 

 

전체적인 그림은 사사키 아쓰시의 <현대 일본사상>(을유문화사, 2010)을 참고할 수 있다. 덧붙여 아사다 아키라의 <도주론>(민음사, 2012)도 재출간된 김에, 절판된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원제는 '구조와 힘')도 다시 나오면 좋겠다. 

 

12. 07. 01.

 

 

 

P.S. '7월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도스토에프스키의 <죄와 벌>(민음사, 2012)을 고른다. 작품의 배경이 7월 초순이라 언제나 7월이면 한번쯤 떠올리게 되는 작품이다. 얼마전 새 번역본이 나온 것도 좋은 이유가 되겠다. 물론 다시 읽을 만한 이유다.

 

 

지난주엔 러시아 영화 <죄와 벌>(1969)도 DVD로 구입을 했기에 오랜만에 다시 한번 보게 될 듯하다. 자막이 없긴 하지만 유튜브 버전(http://www.youtube.com/watch?v=q5s1WVYd0kE)으로도 보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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