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두차례 방한 강연을 갖고 오늘 이한한 슬라보예 지젝에 관한 취재기사를 일부 옮겨놓는다. 기자의 전화인터뷰에 나도 몇 마디 보탰다. 기사는 오늘 올라왔지만 짐작에 월요일자 지면에 나가는 게 아닌가 싶다. 기사 전문은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6301654421&code=940100 에서 읽어보실 수 있다.

 

 

경향신문(12. 07. 02) 시대를 읽고 싶다면, 지젝을 읽어라

 

(...)

·어려운 이론을 일상 사례로 쉽게 설명
한국에서 1980년대가 마르크스의 시대였고, 1990년대가 푸코와 들뢰즈의 시대였다면, 2000년대 이후는 지젝의 시대다. 지금까지 그의 단독 저서만 30여권이 넘게 번역됐고, 공저를 합하면 국내에 소개된 그의 책은 50권이 넘는다. 지젝을 한국에 처음으로 알린 책은 1995년에 출간된 <삐딱하게 보기>다. 이 책에서 지젝이 라캉 이론을 원용해 할리우드 영화를 해부하는 방식은 영화비평가들 사이에 화제가 됐고, 덕분에 한국 수용 초기에는 철학자라기보다는 문화비평가로 받아들여졌다. 전환점은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의 출간이다. 이 책의 출간 이후 지젝이 서구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진지한 철학자로 수용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젝은 서양철학의 거인들에 대한 교양이 없는 독자들로서는 적잖이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 철학적 논변을 전개하면서도 영화, 장르소설 등 대중문화와 일상의 에피소드를 자유자재로 인용하는 글쓰기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난해하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이 재미를 주는 것은 이러한 그의 글쓰기 스타일과 무관하지 않다고 평가한다. 국내 최초의 지젝 인터뷰집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을 펴낸 박용준 인디고연구소 팀장은 “지젝이 고수하는 스타일은 지적 호기심을 가진 독자들에게 대단한 쾌감을 주는데, 그것은 독자를 지젝을 향해 잡아당기는 유혹이기도 하지만 지젝 이론의 핵심을 간파하는 데 장벽으로 작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을 펴낸 서평가 이현우씨는 “헤겔이나 라캉 같은 사람들의 난해한 이론들을 일상적인 에피소드를 끌어들여 설명하는 면에서는 지젝이 독보적이다. 가장 어려운 이론들을 가장 피부에 와닿는 사례들로 설명하는 게 지젝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지젝은 이번 한국 강연에서도 우디 앨런의 <애니홀>, <007> 시리즈, <다빈치 코드> 같은 할리우드 영화부터 스타벅스, 선진국의 유기농 열풍, 자선활동 등 일상 영역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사례들을 논의에 끌어들이며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강연장은 지젝의 열정적인 수다가 지배하는 철학 콘서트장이었다.

 



·좌파의 무기력 비판하는 좌파 철학자
좌파 이론가로서 지젝의 입지는 어디쯤일까. 이현우씨는 “지젝의 별명 중 하나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철학자’다. 좌파와 좌파 이론이 침체에 직면한 지금 좌파의 무기력함을 가장 예리하게 비판하면서 동시에 좌파적 입장을 가장 강경하게 견지하는 철학자가 지젝”이라며 “지젝은 마르크스의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 상황을 진단하는 데는 새로운 사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당연히 지젝에게 관심을 가질 법하고 또 가져야만 한다”고 말했다.

물론 반론도 있다. 정치평론가로도 활동하는 한윤형 미디어스 기자는 지젝을 읽지 않은 지 7년쯤 됐다. 그는 “다른 철학자들의 이론을 현란하다시피 끌어들이는 지젝의 작업이 갖는 정당성은 좌파정치의 실천이라는 대의”라며 “그러나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한국에서 좌파적 실천을 하는 데 꼭 지젝을 읽어야 할 필요는 없다. 실천적 방법은 각자 처한 자리에서 고민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젝은 6월 29일 오전 11시 덕수궁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분향소를 방문해 해고자들과 지속적으로 연대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정우 쌍용차 지부장은 그에게 쌍용차 투쟁 셔츠와 스카프를 건넸다. 지젝은 “내일 공항에서 출국할 때 이 옷을 입겠다. 지금 입고 있는 옷도 유럽 좌파들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화답했다. 지젝은 강연회에서 자신이 비관론자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의 부조리에 대해 발언하고 행동으로 개입함으로써 그것을 바꿔내려 한다는 점에서 그는 소극적 비관론자와는 거리가 멀다. 한국에서의 지젝 열기도 그의 이런 실천적 면모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정원식 기자)

 

12. 06. 30.

 

 

P.S. 덧붙여, 성공회대 김민웅 교수의 강연 참관기는 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20629170347&Section=05 에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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