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로 바쁘다 보니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르는 것도 며칠 늦어졌다. 날씨는 진작부터 여름이었지만, 막상 6월 진입하니 느낌이 또 다르다. 이젠 '땀 흘려' 책을 읽어야 하는 계절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물론 그 전에 어떤 책들이 나와 있는지 먼저 둘러보는 게 좋겠다.


1. 문학
김미현 교수가 추천한 책은 이노우에 야스시의 <내 어머니의 연대기>(학고재, 2012)다. 생소한 이름이지만 일본의 국민작가라 한다. 국내엔 <둔황>(문학동네, 2010), <칭기즈칸>(선영사, 2010) 등이 더 소개돼 있다. <내 어머니의 연대기>는 자전소설로 치매를 앓다가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작년 5월에는 강상중 교수의 <어머니>(사계절, 2011)가 출간됐었다. 올해 나온 책으론 강제윤의 <어머니전>(호미, 2012)과 <김용택의 어머니>(문학동네, 2012)가 지난달에 나왔다. 물론 5월이 가정의 달이었기에. 카네이션 값 정도로 책 한권 더 사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겠다.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추천한 책은 류쨔이푸의 <쌍전>(글항아리, 2012)이다. 제목의 쌍전은 <수호전>과 <삼국지>를 가리킨다. 여느 책과 다르게 이 두 고전을 맹렬히 비판하는 게 특징이다. "이 두 책은 모두 상당한 매력이 있어 분명히 사람들을 황홀케 하지만, 인간의 영혼을 어둡게 하는 매우 위험한 책이라는 것이다." 조금 다른 시각에서 우리가 읽은 고전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해준다. 류짜이푸의 책으론 미국대학에서 중국문학을 강의하는 딸 류젠메이와 나눈 편지를 옮긴 <삶을 안다는 건 왜 이리 어려운가요?>(글항아리, 2012)도 같이 나왔다. 언젠가 마이리스트에서 같이 묶은 적이 있지만 같은 세대 중국 지식인 첸리췬의 <내 정신의 자서전>(글항아리, 2012)와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음 거기에 더 보태자면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문학동네)가 드디어 완간됐다. 작년 여름에 첫권이 나오고 지난달에 마지작 3권이 나온 것. 올 여름 독서의 강력한 '원정군'이지 않을까 싶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고른 책은 줄리언 바지니의 <에고 트릭>(미래인, 2012)다. 국내에 자주 소개되는 대중적인 철학자인데(철학 대중화에 애쓰는 철학자) 개인적으론 <빅 퀘스천>(필로소픽, 2011)에 해제를 붙이기도 해서 더 친숙하다. 제목 그대로 '자아'란 무엇인가를 다룬 책. 자아의 문제를 신경과학, 사회학, 종교학, 심리학 등에서 철학적으로 탐구해 들어간 흥미로운 탐구서란 평가다. 사회학쪽에서 이 문제를 다룬 책으로 앤서니 엘리엇의 <자아란 무엇인가>(삼인, 2007)도 같이 떠오른다.


덧붙여 6월에 읽을 만한 철학자로는 단연 마이클 샌델과 슬라보에 지젝을 들고 싶다. 샌델 교수는 <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와이즈베리, 2012) 홍보를 겸하여 현재 방한중이고(개인적으론 이번에 인터뷰할 기회도 가졌다) 지젝은 이달말에 방한할 예정이다. 자주 오는 건 아니므로 이번 기회에 책으로 안면을 터두는 것도 좋겠다. 지젝의 경우엔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궁리, 2012)부터 손에 드는 걸 추천한다. 샌델의 데뷔작 <정의의 한계>(멜론, 2012)는 가장 '철학적'인 책인데, 개인적으로 아직 완독을 못했다. 6월엔 시간을 내봐야겠다.


4. 정치/사회
마인섭 교수가 추천한 책은 맥스웰 맥콤스의 <아젠다 세팅>(엘도라도, 2012)이다. 찾아보니 <현대사회와 여론>(한울, 1995)이란 책이 소개됐던 저자다. 소개에 따르면 "맥콤스 교수는 1968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에서 채플힐 연구팀을 주도하여 언론이 여론에 미치는 영향을 아젠다 세팅 이론으로 정립하였다. 저자는 그 후 30여 년간 아젠다 세팅에 대한 새로운 증거를 풍부하게 수집하고 분석하였다." 말하자면 '아젠다 세팅'에 관한 최고 전문가인 셈. 그렇잖아도 연말 대선을 앞두고 아젠다 '세팅'이나 '선점' 문제가 자주 화제에 오를 테니 미리 '선점 독서'를 해두는 것도 좋겠다. 같이 읽을 만한 책으론 미국 사회에 대한 책 두 권이다. 토마스 프랭크의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갈라파고스, 2012)와 매트 타이비의 <오 마이 갓!뎀 아메리카>(서해문집, 2012). 모두가 반면교사 거리가 될 만한 책들이다.


5. 경제/경영
박원암 교수가 추천한 책은 베스트셀러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의 저자 토드 부크홀츠의 <러시>(청림출판, 2012)다. "도전과 경쟁의 삶이 바로 행복"이라고 설파하는 책. 반대의 입장에서 시장과 자유경쟁이라는 신화를 비판한 저스틴 폭스의 <죽은 경제학자들의 만찬>(랜덤하우스코리아, 2010)도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 제목에 이끌려 얼마 전에 구입한 책이다. 덧붙이자면 <죽은 경제학자의 망할 아이디어>(비즈니스맵, 2012)도 같이 구입했다.


6. 과학
김웅서 위원이 고른 책은 김병소의 <풀잎 위에 알고리즘>(해마을, 2012)이다. '풀과 꽃들의 디자인 자연 속에 아름다운 수학과 생명의 의미들'이 부제. 풀잎(식물)과 알고리즘(수학)을 같이 다룬 책으로 "들판이나 산에 갈 때 식물도감과 함께 가지고 갈 수 있는 낭만적인 수학책"이라고. 수학 교양서로 장우석의 <수학, 철학에 미치다>(페퍼민트, 2012)도 눈길을 끈다. 개인적으론 로버트 크리스의 <측정의 역사>(에이도스, 2012)를 이달에 읽어보려고 한다. 측정 또한 수학과 무관한 영역은 아니므로 관련서라고 우겨도 되지 않을까.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고른 책은 박삼철의 <도시 예술 산책>(나름북스, 2012). 한낮의 땡볕이 아니라면 6월은 걷기 좋은 계절인데, 그에 맞는 책이라고. "지금 당장 걷기를 시도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미술 안내서가 되어 줄 책". 예술까지는 아니더라도 도시를 주제로 한 책들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앤 미코라이트의 <도시를 보다>(안그라픽스, 2012),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 연구소에서 엮은 <도시 속의 역사>(라움, 2012) 등이 최근에 나온 책.


개인적으론 최근에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에 대한 해설서로 박정태의 <철학자 들뢰즈, 화가 베이컨을 말하다>(이학사, 2012)가 나왔기에 읽어보려 한다. 베이컨의 그림도 오랜만에 볼 겸.


8. 교양
교양분야의 책으로 내가 고른 건 강신주의 <김수영을 위하여>(천년의상상, 2012)다. 추천사는 이렇게 적었다.
김수영은 누구였던가. 그의 시는 무엇이었고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는가. 저자는 한마디로 ‘자유’라고 말한다. “김수영을 읽어 낸다는 것. 그것은 자신만의 제스처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요구하는 행위다.” ‘자신만의 제스처로 살아가겠다는 의지’, 그것이 자유이고 자유의 의지다. 남을 흉내 내는 삶이 아니라 자기만의 고유한 삶을 제대로 살아내겠다는 의지. 저자는 온몸으로 온몸을 밀고 나갔던 김수영의 시와 삶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그러한 삶의 초상을 그린다. 시인의 초상을 통해서 우리들 각자가 ‘한 번밖에 없는 자신의 삶’을 자기 스타일대로 살 것을 권유한다.
그렇게 적고 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지난달엔 <김수영> 전집을 다시 구입했다!


9. 실용
손수호 위원이 추천한 책은 김용규의 <숲에서 온 편지>(그책, 20120)다. "2009년에는 <숲에게 길을 묻다>를 내기도 한 저자는 충북 괴산의 군자산 자락에 ‘백오산방(白烏山房)’을 짓고 5년째 혼자 살면서 농사와 저술, 강연을 겸업하고 있다" 한다. 조금 뜬금없을지는 모르지만 체호프의 드라마 <숲귀신>(<바냐아저씨>는 <숲귀신>의 개작본이다)과 같이 읽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10. 12세기 혁명
내 맘대로 고르는 이달의 주제는 '12세기 혁명'이다. '12세기 르네상스'라고도 부르는 듯하다. 개인적으론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자음과모음, 2012) 때문에 '급' 관심을 갖게 된 주제다. 그래서 급하게 찾은 책이 로버트 스완슨의 <12세기 르네상스>(심산, 2009)와 자크 르 고프의 <중세의 지식인들>(동문선, 1999) 등이다. 이달에 다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생각난 김에 주제로 정해놓는다. 독서 압박용이다.
12. 06. 03.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론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을 고른다. 이유는 딱히 없다. 아니 보르헤스가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한 걸 읽고 다시금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엊그제 일이긴 한데, 그간에 새 번역본이 여럿 더 나온 것도 자극이 됐다. 예전에 읽어보려고 했을 때는 <유령의 집> 같은 제목으로나 번역돼 있었다.


아, 지젝의 <시차적 관점>(마티, 2009)에서도 헨리 제임스에 관해 장이 간주곡으로 하나 들어가 있다. 지젝이 주로 다루는 건 <비둘기의 날개> 같은 작품이지만 헨리 제임스의 문학세계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래서 첫번째로 고른 책이 <나사의 회전>인 것이고. 사실 더 읽어보고 싶은 건 그의 최고작이라는 <여인의 초상>이지만, 오래전에 절판되고는 나올 기미가 없다. 이 또한 세계문학총서에 빨리 포함되면 좋겠다. 아래는 니콜 키드먼이 주연을 맡았던 영화 <여인의 초상>(제인 캠피온 감독)의 한 장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