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배송받은 책 가운데는 미국의 철학자 리처드 슈스터만의 원서들도 들어 있다. 얼마전 그의 책으론 세번째로 번역돼 나온 <삶의 미학>(이학사, 2012)을 구입하고 번역본들과 짝을 맞추기 위해 그 세 권의 원서도 주문했는데 예상보다 빨리 도착했다. <삶의 미학>보다 먼저 나온 책이 <몸의 의식>(북코리아, 2010)과 <프라그머티즘 미학>(북코리아, 2009)이다.

 

 

<삶의 미학>은 제목보다도 부제에 더 끌렸는데, 페이퍼의 제목으로 삼은 '예술의 종언 이후 미학적 대안'이 그 부제다. 한데 한국어판 머리말을 읽으니 번역본은 '영어판 원본'과 좀 다르다! 저자의 생각은 이렇다.

프래그머티즘 철학자로서 나는 책이란 것이 사색을 위한 도구이지, 원본의 형식을 물신화하는 대상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영어판 원본의 재생산이나 번역 또는 복제품을 한국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것보다는 유용하고 상황에 맞게 갱신된 텍스트를 제공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7쪽)

허를 찔렸다는 느낌이지만 그래도 '훌륭한 생각'이라고 인정해줄 만하다. 과연 얼마나 달라진 것인지는 비교해서 읽어봐야 알겠지만. 더불어 책이 놓인 전반적인 맥락에 대해 설명해주는 대목도 요긴한 참고가 된다. 그의 미학적 주장의 핵심은 '몸미학(somaesthetics)'으로 압축되는 듯하다.

 

 

이 책은 내가 <프래그머티즘 미학>(1992)과 <실천하는 철학>(1997)에서 탐구하기 시작했던 삶, 예술, 체화, 철학 그리고 문화라는 주제에 대한 일반적인 연구 노선을 지속하면서 예술과 감정, 쾌, 지식, 엔터테인먼트, 문화 그리고 스타일의 본질적 관련성이나 미적 경험에 대한 훨씬 더 풍성한 구체적 분석을 제공한다. 이 책은 미학의 관례적 영역을 뛰어 넘어 철학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들과 삶의 행위를 다루는 분야의 나의 몸미학 이론에 대한 해명을 더욱 발전시킨다.(8쪽)

그럼, 그의 기본 입장은 무엇인가?

나의 프래그머티즘 철학의 주된 목적은 순수예술의 영역을 넘어서서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미적 경험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예술과 삶을 더욱 밀접하게 통합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다양한 삶의 예술을 고양시킴에 있어서, 예술적 스타일의 가치를 더욱 깊이 인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프래그머티즘적 포스트모더니즘은 시뮬라크르 또는 이미지보다 오히려 생생한 경험을 강조하고, 더욱 적극적이고 건강한 의식, 즉 윤리와 공적 삶이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의식을 갖고 삶을 미적으로 가꾸는 데 목적이 있다.(8쪽)

'프래그머티즘적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도 불렀지만, 저자는 '삶의 예술로서의 윤리학'이라는 이념이 훨씬 오래 된 뿌리를 갖고 있다는 걸 강조하다. 그 뿌리란 일단 아름다운 것과 선한 것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았던 고대 그리스인들의 윤리적-미적 이상이다. 이 그리스철학의 전통에 흥미롭게도 '동아시아 유가사상의 전통'에 더해진다. 서양 미학자의 책에서 <논어>의 많은 구절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좀 특이한 느낌을 갖게 하는데, 그 연결고리에 대한 설명은 이렇다.

유가철학은 나의 미학 이론이 서양의 동료 학자들로부터 쾌락주의적이라고 비난받았을 때, 예술에 대한 경험에 있어서 정감과 쾌의 가치를 옹호할 수 있도록 나에게 큰 용기를 안겨주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서양 미학자들이 예술의 지적 내용이나 예술의 형식과 해석적인 의미 또는 진리를 강조하기 위해, 느낌과 향유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유가철학자들은 그 대신에 예술의 인식적이고 윤리적인 그리고 형식적인 가치와 모순되기보다 오히려 그것들을 심화시키거나 풍성하게 해주는, 예술의 정서적 측면이나 기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13쪽)

 

 

미학의 쾌락적 차원과 공자 사상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저자가 편집한 <프래그머티즘의 범위와 철학의 한계>에 실린 글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한다. 아무튼 저자가 이러한 이론적 관심과 문제의식에서 도달하게 된 것이 몸미학인데, "나의 가장 최근 저작인 <몸의 의식>(2008)은 이러한 개념들과 몸미학의 윤리적이고, 정치적이며, 심리적인 차원과 관련된 많은 논제를 다루고 있다."(17쪽) 이상이 프래그머티즘 미학에서 몸미학으로 이어지는 여정의 간략한 개요다.

 

 

 

'예술의 종말'이란 주제는 아서 단토란 이름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밖에 없고 실제로 <삶의 미학>에도 자주 이름이 거명되고 있다(단토의 책의 어느새 절판된 것들도 있다). '예술의 종언 이후'란 주제에 늘 관심을 갖고 있던 차였는데, 그에 부합하는 책이 출간돼 반갑다. 조만간 시간을 내봐야겠다...

 

12. 0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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