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은 5월이지만 날씨는 이미 6월로 넘어간 듯하여 '5월의 읽을 만한 책'이라고 적는 게 멋쩍지만 '계절의 여왕'을 홀대할 수 없으니 5월의 책들도 골라놓는다. 여유가 없어 며칠 늦어졌다.


1. 문학
김미현 교수가 고른 책은 성석제의 <위풍당당>(문학동네, 2012)이다. "성석제가 귀환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성석제의 ‘웃음’이 귀환했다."는 평이다. "2000년대 들어 창작한 최근작들의 무거움에서 벗어나 “입담계의 아트이자 재담계의 클래식”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소설의 진경을 선사하고 있기 때문"이 이유다. 90년대 작품이라면 <홀림>(문학과지성사, 1999) 이전을 뜻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즐겁고 유쾌한 작가, 성석제의 컴백? 개인적으론 '위풍당당'이란 타이틀에서 떠올린 건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다. 주제가가 '위풍당당 행진곡'이었기 때문에. 석제의 소설, 옥희의 영화, 짝이 그렇군...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추천한 책은 주강현의 <유토피아의 탄생>(돌베개, 2012)이다. 민속학에서 해양문명 연구로 관심영역을 확장한 저자가 동서고금의 '섬-이상향[ 담론의 궤적을 추척한 책이다. "종합사로서의 역사학, 현재사로서의 역사학의 의미를 잘 구현했다는 점에서, 역사 연구의 외연을 넓혀주었다고 평가"된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고른 책은 나이절 워버턴의 <철학자와 철학하다>(에코리브르, 2012). 대중교양서를 주로 집필해온 영국 철학자의 책으로 원제는 '철학소사(A Little History of Philosophy)'. '물음을 던진 사람' 소크라테스부터 '현대의 등에' 피터 싱어까지의 서양철학사를 40개의 장으로 나누어서 소개한다. 철학사 일람에 요긴한 책.


4. 정치/사회
마인섭 교수가 추천한 책은 최대권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서울대출판문화원, 2012)다. "저자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형식적인 양식을 넘어 선한 사회의 실질적인 조건이 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자질이 필요하다고 한다." 새로운 주장은 아니지만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기본이론을 잘 정리하고 있는 책으로 보인다. 사실 법치주의를 다룬 책은 별로 나와 있지 않다. 민주주의에 관한 책으론 래리 바텔스의 <불평등 민주주의>(21세기북스, 2012)와 강준만 교수의 <자동차와 민주주의>(인물과사상사, 2012)를 더 얹어놓고 싶다.


국제정치와 한반도 관련서들도 몇권 구해놓고 손에 들지는 못하고 있었는데, 일부라도 들춰보려 한다. 로버트 코헤인의 <헤게모니 이후>(인간사랑, 2012)가 미국의 단일 패권 이후 국제관계를 다룬다면, 정욱식의 <핵의 세계사>(아카이브, 2012)와 홍석률의 <분단의 히스테리>(창비, 2012)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사다.


5. 경제/경영
박원암 교수가 추천한 책은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김영사, 2012)이다. "경제학적 합리성에 의문을 제기한 연구로 2002년에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이 ‘사고의 작동메커니즘’과 ‘직관의 편향’을 주제로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정리한 책"으로 이미 좋은 반응을 얻고 있기에 군더더기 설명은 불필요하겠다. 공저자 리처드 탈러(세일러)는 화제작 <넛지>(리더스북, 2009)와 <승자의 저주>(이음, 2007)의 저자이기도 하다.


6. 과학
김웅서 위원이 추천한 과학책은 강석기의 <과학 한잔 하실래요?>(MID, 2012)다.현직 과학기자인 저자가 "물리학에서부터 생물학, 수학, 의학, 지질학, 화학, 공학까지 커피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과학 분야"의 48가지 주제에 관해 소개하는 책. 같은 교양과학서 범주에 들어갈 책으로는 리처드 도킨스의 <현실, 그 가슴뛰는 마법>(김영사, 2012)과 조지 가모프의 <1,2,3 그리고 무한>(김영사, 2012)도 커피 한잔을 옆에 놓고 읽어봄직하다.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고른 책은 안느 바리송의 <더 컬러 - 세계를 물들인 책>(이종, 2012)이다. 제목이 이미 어떤 책인지 짐작하게 해준다. "색에 대한 수많은 미신과 신화를 문화인류학적인 접근 방식으로 해석한 흥미로운 책". 좀 뜬금없는지는 몰라도 같이 떠올리게 되는 책은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민음사, 2009)이다. 같이 읽어봄직하지 않을까.


8. 교양
내가 고른 교양서는 이사야 벌린의 <칼 마르크스>(미다스북스, 2012)다. "<칼 마르크스>는 마르크스에 대한 입문서이면서 동시에 벌린에 대한 입문서이기도 하다. <공산당선언>과 <자본론>의 저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유론>(아카넷, 2006)과 <러시아 사상가>의 저자로 ‘가장 지적인 대학인’이라고 불렸던 이사야 벌린을 이해하는 데에도 아주 요긴한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고 평했다. 벌린의 <자유론>과 <러시아 사상가>(생각의나무, 2008)가 모두 절판된 점에 대한 유감도 같이 적고 싶다.


9. 실용
손수호 위원이 추천한 책은 임준수의 <나무야 미안해>(해누리, 2012)다. '천리포수목원 일군 민병갈의 자연 사랑'이 부제다. 덕분에 알게 된 사실인데, 주인공은 귀화 미국인으로 "57년 동안 사재 500억 원을 들여 19만 평의 땅에 나무의 천국을 일궜다. 동백과 목련, 호랑가시 등 3개 분야는 세계 정상급이다." 그 수목원에 한번 가보고픈 생각이 든다. 관련서도 두 권 더 눈에 띈다.



10. 진화심리학
내 맘대로 고른 주제는 '진화심리학'이다. 관련서들이 꾸준히 나오고 있어서 새삼스레 다룰 건 아니지만, <인간은 야하다>(21세기북스, 2012), <문명이 낯선 인간>(공존, 2012), <남성 퇴화 보고서>(21세기북스, 2012) 등이 한꺼번에 나와서 같이 묶어놓을 만하다. <남성 퇴화 보고서>는 인류학자가 쓴 책이다.
12. 05. 04.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론 괴테의 <파우스트>를 고른다. 고전이야 매번 다시 읽는 것인데, 이번에 펭귄클래식판으로 새로 번역돼 나온 게 계기다. 주요 번역서들을 모두 갖고 있으니 대략 6-7종은 되는 듯싶다. 그래도 새 번역본이 나오면 챙겨두게 된다. 내 안의 어떤 파우스트적 욕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려나 아직 안 읽어보신 분이라면 이참에 파우스트박사와 한번 대면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