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마지막 택배로 배송된 책은 오토 바이닝거의 <성과 성격>(지만지, 2012)이다. 지난주에 나온 가장 '놀라운' 책으로 바로 주문했지만 배송이 좀 늦어졌다. 지젝의 독자가 아니라면 오토 바이닝거란 이름은 다소 생소할 듯싶다. 내가 처음 접한 것도 지젝의 <향락의 전이>를 통해서였는데, '여성'을 다룬 2부의 마지막 장 제목이 '오토 바이닝거 또는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였다. 덕분에 관심을 갖게 됐고 러시아어본과 영어본도 그간에 구했지만 우리말 번역본이 나올 줄은 몰랐다(이번에 발췌본과 완역본이 동시에 나왔는데, 완역본의 경우 본문의 분량이 824쪽이다!). '놀라운' 책이라고 적은 이유다.

 

 

사실 놀라운 건 책뿐만이 아니다. 저자의 생애 또한 뒤통수를 친다. 소개에 따르면 "오토 바이닝거는 1880년 4월 3일 빈의 유복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1903년 10월 4일 23세의 나이로 자살한 오스트리아의 철학자"다. 놀랄 만큼 짧은 생애를 살다간 것인데, 자신의 극단적인 이론을 담은 <성과 성격>, 그리고 "베토벤이 숨을 거둔 집에서 자살"한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의 과격한 이론은 어떤 것이었나? 역자 해설을 조금 간추린다.

 

바이닝거는 자신도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죽기 전까지 극도의 반유대주의와 반페미니즘, 육체 혐오적인 자세를 견지했다. 그는 또한 최초로 남성과 여성에 대한 철학적-심리학적 이론을 전개했으며, 그 이론의 중심에 인간의 '양성' 이론이 있다. 바이닝거는 엄청난 이론을 쏟아놓고 너무 젊은 나이에 자살함으로써 신화가 되었고, 그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842쪽)

물론 당대의 베스트셀러였다는 얘기일 텐데,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1900) 초판 600부가 다 팔리는 데 9년이 걸린 것에 비해서 1903년에 출간된 <성과 성격>은 그때 이미 11판이 나왔고, 1932년까지 28쇄를 찍었다고 한다. 그의 유명세에는 물론 극적인 자살이 한몫해서 전 유럽에 그의 명성이 퍼지게 됐고 <성과 성격>은 숭배의 책이 됐다고. 그의 악명 높은 주장 가운데는 "여성은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여성은 무(無)다"는 것도 들어 있다. 성차별적인 발언으로 들리지만 동시에 양성간의 '차이'와 '구분'에 주목한 것이어서 라캉의 성구분 공식으로도 이어진다.

 

흥미로운 건 그의 양성이론이다. 그는 인간이 본래 양성적이라고 보았고, 남성적 요소와 여성적 요소 가운데 어느 요소가 많은지에 따라 남성 또는 여성으로 불린다고 주장했다. 완전한 남성(M)과 완전한 여성(W)이 양극단에 있다면 그 사이에 4분의 3의 M과 4분의 1의 W로 구성된 사람도 있고, 반대로 4분의 1의 M과 4분의 3의 W로 구성된 사람도 있다. 이 경우는 서로 보충적이어서 서로를 찾게 된다.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라는 점. 바이닝거는 W의 요소를 완전히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M-되어 가기'가  '여성 해방'의 정도를 가리킨다.

 

바이닝거의 반유대주의는 이러한 성이론에서 나온다고. 그는 유대인을 '여성적'이라는 이유로 혐오했다. "여성과 유대인은 단지 섹스, 육체, 물질일 뿐이며, 정신과 영혼이나 도덕도 없고, 성적 금욕 생활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종의 위협적인 존쟤"라는 것이다. 따라서 유대주의 또한 여성성과 마찬가지로 극복의 대상이다.

 

이런 생각들에 흥미가 발동한다면 <성과 성격>은 모처럼의 '서프라이즈'가 될 것이다. 책값 또한 서프라이즈하다...

 

12. 0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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