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에 배송된 책 가운데 하나는 후지타 쇼조(1926-2003)의 <천황제 국가의 지배원리>(논형, 2009)다. 특별히 꽂혀서가 아니라 쓰루미 슌스케의 <전향>(논형, 2005)을 구입하려다 보니 후지타 쇼조의 <전향의 사상사적 연구>(논형, 2007)가 눈에 띄었고, 같은 저자의 다른 책이기에 같이 구입한 것이다. <전향>에 대한 관심은 또 쓰루미 슌스케 등의 <사상으로서의 3.11>(그린비, 2012) 때문에 촉발된 것이니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셈. 그 마지막에 해당하는 게 후지타 쇼조의 <전체주의의 시대경험>(창비, 1998)이다. 창비식 표기론 '후지따 쇼오조오'라고 돼 있어서 '후지타 쇼조'로는 검색이 되지 않는다. 더 나쁜 건 절판된 책이라는 점.

 

 

<천황제 국가의 지배원리>에는 후지타의 제자인 이이다 다이조의 한국어판 서문이 붙어 있는데, 학통을 따르자면 마루야마 마사오와 사제지간인 후지타, 그리고 이이다 다이조로 이어진다. 이이다는 독자적인 사상가라기보다는 마루야마와 후지타의 저작집 편집자 역할이 주인 것으로 보인다. <전체주의의 시대경혐>에도 그가 쓴 '후지타 쇼조의 시대와 사상'이 해제로 붙어 있다고. 그래서 찾아보니 <전체주의의 시대경험>은 아쉽게도 중고서점은 물론 도서관에도 잘 없는 책이다(알라딘 중고에는 '고서' 가격의 책으로 나와 있는 게 하나 있긴 하다).

 

기사를 좀 검색해보니 후지타는 현대 일본사회를 '안락을 위한 전체주의'라고 비판했다. 작년 4월 프레시안의 서평기사에는 이런 언급이 보인다(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10421170308§ion=05).

 

 

지진과 화산이 빈번한 일본에 원자력 발전소가 50기가 넘는 것도 결국은 에너지의 대량 소비와 관련되는 "불편함의 원천을 일소하려는 욕구"로 해석할 수 있다. 원자 폭탄을 얻어맞은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1954년 3월, 비키니 섬의 수소 폭탄 실험으로 일본인 어부가 사망하게 되는 사고가 일어난 바로 그날, 훗날 일본 총리가 되는 청년 정치가 나카소네 야스히로는 "모두가 미적댈 때 국가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가의 책임"이라며 원자력 발전 연구를 밀어붙이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이런 황당한 행동도 후지타 쇼조가 비판하듯, 천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가족 국가 체제에서 몽매한 '어린 아이' 같은 신민들을 보살피는 용기 있는 정치가의 결단인 것이다. 그렇게 출발한 이 위험천만한 원자력 발전 체제를 "세계 최고 기술력" 운운하며 끝끝내 고집하는 행태는 또한 후지타 쇼조가 현대 일본의 정신이라고 명명한 "자기비판 능력이 결여된, 자기애로서의 나르시시즘"으로 설명할 수 있다.(이계삼 밀성고등학교 교사)

'전체주의의 시대경험'이 일본만의 것일까. 식민지배 시대를 거쳐서 군부독재를 경험한 나라의 '신민들'이 갖는 정신상태도 뭔가 문제적인 대목이 있지 않을까. 후지타 쇼조의 문제의식을 연장하자면,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현대 일본의 정신, '자기애로서의 나르시시즘'이 필연적으로 초래한 재난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런 나르시시즘에서 자유로운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전체주의의 시대경험>은 타산지석이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사상으로서의 3.11>에서 쓰루미 슌스케는 '일본인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란 질문을 던졌다. 후쿠시마 1년을 맞아 일본 핵발전의 진실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혹은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남의 나라의 지진일 뿐'이라는 안이한, 나르시시즘적 태도에서 벗어나 무겁게 끌어안아야 할 질문이다...

 

12. 0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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