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달 책&(404호)에 실은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3월에는 독서법에 관한 책들을 몇권 골랐다. 올해가 '독서의 해'라고 하는 만큼 맘잡고 책을 손에 드는 인구가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관련서들의 이미지도 같이 골라놓는다.
책&(12년 3월호) 독서법
3월이고 새 학기다. 새로 진학하거나 한 학년 올라간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학교를 오래 전에 졸업한 이들에게도 3월은 공부에 대한 의욕을 부추기고 독서를 자극하는 달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조병화)는 시구도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분의 말씀’은 ‘항상 봄처럼 부지런히 책을 읽어라’로 새겨도 좋겠다. 꽃눈이 틔는 소리 들리고 봄을 맞는 마음은 저절로 분주하다. 하지만 분주함만으로 뭔가 이루기는 어렵다. 분주함에 덧붙여 마음의 갈피를 잘 잡는 일이 중요하다. ‘닥치고 독서’도 한 방법이긴 하지만 독서에도 ‘길’은 있다. 물론 먼저 걸어간 이들이 낸 길이다. 그들은 무슨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
김영수의 <현자들의 평생공부법>(역사의아침, 2011)을 머리에 둘 만하다. <사기>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저자가 “독서가 나와 사회의 격과 질을 결정한다”는 생각으로 중국 현자들의 공부법을 소개한다. 그가 꼽은 ‘현자들’의 첫머리에는 물론 공자가 자리한다. “배우고 수시로 복습하라(學而時習)”는 것이 공자 공부론의 요체다. 여기서 ‘복습하라’는 말을 저자는 공부의 목적과 연관 짓는다. 독서만을 위한 독서가 아니라 현실에 응용할 수 있는 공부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시경> 300편을 다 외워도 정치를 맡기면 처리하지 못하고, 사방 여러 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많이 외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게 ‘공자님 말씀’이었다. 더불어 공자는 공부와 생각의 균형을 강조했다.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어록은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지.
저자는 공자와 맹자에서 루신(노신)과 마오쩌둥(모택동)에 이르는 중국사의 걸출한 현자 10인의 공부법을 소개하면서 동시에 일화들도 곁들이는데, 그중 책과 공부를 좋아하는 바람에 독서인들이 치른 대가가 흥미롭다. 서한 시대 광형은 가난한 농가출신이었지만 책을 너무도 좋아했다. 그래서 책이 많은 부잣집을 찾아가 품값 없이 일을 해주는 조건으로 그 집의 책을 읽었다. 그는 당대에 비교할 자가 없을 만한 큰 학자가 됐다. 또 남조 시대 유협은 중국 역사상 손꼽히는 대학자인데 학문에 매진하기 위해 결혼도 마다하고 아예 절간에 가서 스님들과 살았다. 그의 <문심조룡>은 그렇게 하여 나온 저작이다. 또 후위의 가사백이란 인물은 학비를 제 때 내지 못해 스승 음봉에게 온갖 모욕을 당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중에 관리가 된 그는 스승에게 비단 100필을 보냈다고. 진(晉)나라의 왕환은 아내의 닦달에도 불구하고 굶어죽을지언정 책을 내다팔 수는 없다며 고집스레 공부하여 결국 높은 벼슬까지 지냈다. 독서인들이 치른 대가는 이제나저제나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밥은 하루 안 먹어도 괜찮고 잠은 하루 안 자도 되지만 책은 단 하루도 안 읽으면 안 된다”는 어록은 누구의 것일까. 바로 ‘독서광’ 마오쩌둥이다. 마오의 독서법은 두 가지로 압축되는데, 세 번 반복해 읽고 네 번 익히라는 ‘삼복사온(三復四溫)’과 ‘붓을 움직이지 않는 독서는 독서가 아니다’를 요체로 하는 ‘사다(四多)’가 그것이다. ‘사다’란 많이 읽기(多讀), 많이 쓰기(多寫), 많이 생각하기(多想), 많이 묻기(多聞)를 말한다. 공부와 독서에 혁명만큼 열정적이었던 마오의 독서법에 관해서 중국에서는 전문서도 여럿 출간됐다고 하는데, 그중 측근참모들이 쓴 <마오의 독서생활>(글항아리, 2011)이 국내에도 번역됐다. <현자들의 평생공부법> 가운데 ‘모택동편’의 깊이 읽기라고 할까.
마오가 마르크스와 레닌의 저작을 탐독한 건 당연해보이지만 루쉰에 대한 열독은 눈길을 근다. 그는 <아Q정전>을 높이 평가했고 특히 루쉰의 잡문을 애독했다. 루쉰은 무려 600여 편의 잡문을 썼고 16권의 잡문집을 출간했는데, 마오는 이를 매우 공들여 읽고 자신의 사색으로 발전시켰다. “루쉰은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자이며 철저한 유물론자이다”라는 게 루쉰에 대한 그의 평가였다. ‘공부하는 사람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말을 마오만큼 잘 입증해주는 인물도 드물 것이다.
공부와 독서의 멘토를 물론 중국에서만, 그리고 과거에서만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홍상진의 <그들은 어떻게 읽었을까>(북포스, 2012)는 한비야에서 안철수, 구본형까지 ‘우리시대 10인 멘토’가 어떤 책을 읽고 어떻게 자신의 삶을 바꿔나갔는지 살펴본 책이다. 저자는 그들의 독서편력과 습관을 소개하면서 한비야의 글쓰기 비결이 일기 쓰기와 메모 습관에 있다는 점, 문화사학자 신정일이 만난 최고의 책이 도스토옙스키 전집이라는 점, 그리고 안철수가 정독주의자라는 점 등을 알려준다. 물론 모두의 공통점은 그들의 성공인생의 바탕에 독서의 힘이 놓여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시대의 독서가 23인과의 인터뷰를 묶은 장동석의 <살아있는 도서관>(현암사, 2012)도 ‘그들은 어떻게 읽었을까’를 엿보게 하는 유익한 자료다. 물리학자 장회익 교수의 조언은 이렇다. “좋은 책도 있고 나쁜 책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현재 나에게 맞는 책이냐 아니냐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12. 03.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