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안 읽히거나 글이 안 써질 때 곧잘 빅토르 최의 노래를 듣는다. 주당들이 단골 선술집에 들르는 기분이랄까. 기억엔 그의 노래를 1993년쯤 친구의 방에서 러시아산 CD로 처음 들은 것 같으니 20년 전이다. 그리고 지난 2004년에 러시아에 있던 때에도 자주 들었다. 그땐 내가 산 CD로. 노래는 그런 시간과 정서를 보존한다. 그러고 보니 음악에 대한 나의 취향은 심히 복고적이다. 새로운 것보다는 오래된 노래들이 좋고 편하다.

 

 

 

빅토르 최의 노래를 들으며 신간들을 둘러보다가 셔우드 앤더슨의 <와인즈버그, 오하이오>에 눈길이 멈춘다. 이름은 들어봤지만 한번도 실물은 본 적이 없는 듯하다. 이유가 없지 않다. 80년대에 나온 번역본도 있지만 다시 번역본이 나온 게 2004년이기 때문이다. <와인즈버그, 오하이오>(글빛, 2004), <와인즈버그, 오하이오>(해토, 2004)라고 그해 말에 거의 동시에 출간됐다. 그리고 이번에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부북스, 2012)라고 한번 더 출간된 것. 그렇게 자주 나오는 건 저자가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1876년생, 1941년 몰. 작가로서 명성을 얻게 된 대표작이 단편집 <와인즈버그, 오하이오>(1919)다. 찾아보니 이런 인상의 작가.

 

 

미국 문학사에서의 평가는 단출하다. "앤더슨의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체는 이른바 건조체(hard-boiled style)의 대가인 헤밍웨이는 물론 포크너, 샐린저 등의 작가에게도 영향을 끼쳤다"는 것. 그러니까 헤밍웨이의 걸작 단편들의 선조 중 한 사람으로 읽어볼 만하다는 얘기다. 국내에 몇 차례 이 단편집이 소개된 형국이지만 언론의 주목을 크게 받지는 못했다. 물론 이상한 일은 아니다. 2005년 1월로 넘어가서야  단신 소개기사들이 몇 개 쓰였는데,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랜덤하우스가 선정한 20세기 영문소설 100권 중 24위를 차지한 책이다. 1915년과 1916년 쓰여졌던 단편 모음집으로 이번에 해토와 글빛 출판사에서 각각 재출간됐다. 번역에 있어 똑같은 문장은 거의 없으나 저자의 뜻은 일맥상통한다."(매경이코노미)

 

"마크 트웨인에서 어니스트 헤밍웨이로 이어지는 미국 문학사에서중요한 역할을 했던 셔우드 앤더슨의 단편집 ‘와인즈버그, 오하이오’(해토)가 번역, 출간됐다. 1915∼1916년 광고일을 하면서 썼던 단편들을 모은 것으로 가상의 작은 시골마을 와인즈버그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간군상의 이야기를 풀어냈다."(문화일보)

 

"죽은 나무토막, 뒤틀린 괴짜들, 고상하고 가련한 인간 패배자들이 난무하는 고향 마을 풍경을 우화적으로 묘사한 단편소설집."(한겨레)

 

 

 

그렇게 별로 주목받지 못한 게 또한 마음에 든다. 그래서 조만간 영어본과 같이 읽어보겠다는 계획을 세운다(책이 안 읽히는 시간엔 책 읽을 계획을 짠다!). 영어본을 찾아 표지 이미지들을 감상한다. 책은 옥스포드판을 구할 예정이다. 가장 저렴하면서 표지도 맘에 들기에. 그래, 조만간 빅토르 최의 노래를 들으며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를 읽어보기로 한다. 이런 표정을 짓고 싶은 날에...

 

 

 

12. 03.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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