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밀린 빨래나 청소를 한다고 부러워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텐데(나도 하고 싶다?) 밀린 페이퍼를 쓰는 것도 그런 종류이다. 단지 빨래를 다 내걸고 나면 느껴지는 약간의 개운함 정도가 보상이라고 할까. 밀린 때를 밀어내듯이 밀린 페이퍼를 적기로 한다. 몇가지 아이템이 대기중이지만 일단 '옛날 것'부터 처리하자면 고대 중국에 대한 컬렉션 얘기이고, 주중에 중고로 구입한 마크 에드워드 루이스의 <고대 중국의 글과 권위>(미토, 2006)가 시작이다.


변동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책날개의 소개를 보면 저자는 미국 스탠포드대학교의 중국 문화학 교수이다. 주로 'Early China'에 관한 책들을 펴내고 있다. 이게 '초기 중국' 혹은 '고대 중국'이라고 옮겨지는데, '선진시대'는 아니고, '진한제국'까지 포함하는 개념인 듯싶다. 번역서는 참고문헌까지 포함해서 779쪽에 이르는 책. 당연히(?) 독자가 많지 않아서 절판된 걸로 보인다. 원저는 1999년에 나왔다. 선행연구인 'Sanctioned Violence in Early China'(1990) 이후에 9년만에 내놓은 책으로 역자에 따르면 "그 규모에 내용의 충실성으로 볼 때 초기 중국에 관해 서구 학자가 내어놓은 근래의 연구 중 단연 압권"이다. '근래'는 물론 2000년대 중반까지를 말한다.


서양 고대와 함께 중국 고대에 관심을 갖게 돼 주섬주섬 책들을 모으다가 결국 손이 이 책에까지 닿았다(갑골학까진 안 가도 교양 한자학까지는 관심 범위다). 저자 마크 에드워드 루이스에 대해선 별다른 정보를 더 갖고 있지 않고 책도 아직 읽기 전이라 보탤 말은 없는데, 역자에 대해선 따로 언급하고 싶다. 물론 이런 두툼한 연구서를 번역해준 노고에 대한 감사다. 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시점에서 역자는 이미 크리스토퍼 리 코너리의 <텍스트의 제국>(소명, 2005)를 우리말로 옮겼고, 왕후이의 <새로운 아시아를 상상한다>(창비, 2003)도 공역했다. 한데 그보다 놀라운 경력은 짱롱시의 <도와 로고스>(강, 1997)의 공역자라는 사실이다. 지금은 절판됐지만 이 비교철학 책은 출간됐을 당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 가운데 하나다(당시 철학적 해석학 책들을 읽고 있어서 더 흥미롭게 읽었다). 번역도 수준급이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이 책의 공역자 중 한 명이라고 하니까 반가움마저 느끼게 된다. 해서 <텍스트의 제국>도 바로 주문했다.


절판되진 않은 책이지만 허진웅의 <중국 고대사회>(동문선, 1991)도 최근에 구한 책이다. 그리고 알라딘에는 절판된 걸로 뜨는 <예의 정신>(동문선, 1994)는 어제 종로에서 구했다. 송조린의 <생육신과 성무술>(동문선, 1998)도 얼마전에 절판될까 싶어 구한 책. 모두 홍희 교수의 번역으로 동문선에서는 출판사 이름에 걸맞게 초기엔 이런 요긴한 책들을 많이 출간했다.


갑골문에 관한 책이지만 학술서라기보다는 교양서로 분류될 김성재의 <갑골에 새겨진 신화와 역사>(동녘, 2000)도 지난주에 구한 책이다. 2003년에 나온 2쇄본인데, 쇄를 더 찍긴 어려울 듯싶어서 바로 구입했다. 어지간한 도서관에도 없는 책이니 알아서 챙겨두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자와 관련해서는 다케다 마사야의 <창힐의 향연>(이산, 2004)도 최근에 구했다.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는데, 공상철의 <중국을 만든 책들>(돌베개, 2011)의 참고문헌에서 발견하고 구한 것이다. 끝으로 덧붙이자면, 친후이와 쑤원의 <전원시와 광시곡>(이산, 2000)이 있다. '농민학에서 본 중국의 역사와 현실사회 비판'이 부제다. 농민과 농민반란에 관심이 생겨서 구한 책인데, 알라딘에는 이제 품절로 뜬다. 내가 마지막 구입자였기 때문이다...
12. 0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