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지각원고를 보내고 잠시 남는 시간을 이용해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놓는다. 벌써 달력 한장을 넘기게 돼, 이제 2월이다. 윤년이라 올해는 29일까지 있다. 방학이 하루 더 늘어난 셈인가? 어차피 무급 방학이니 그게 그거이긴 하지만, 괜히 시간을 더 번 듯해서 기분이 나쁘진 않다. 하루 더 책을 읽을 수 있겠다?!


1. 문학
김미현 교수가 고른 책은 신경숙 소설집 <모르는 여인들>(문학동네, 2011)이다. 나로선 이미 지난달에 꼽아놓았으니 덧붙일 말은 없다(<모르는 여인들>을 모르는 독자도 없을 것이고). 독서기간이 한달 연장된 걸로 치면 되겠다(그런 책이 이달에 몇 권 있다). 내친 김에 한국문학쪽으로만 고르면, 젊은 작가들의 신작 소설집 두 권을 읽어봐도 좋겠다. 황정은의 <파씨의 입문>(창비, 2012)와 한유주의 <나의 왼손은 왕, 오른손은 왕의 필경사>(문학과지성사, 2011)가 그 두 권이다. 두 작가 모두 신경숙 문학과는 색깔이 많이 다르지만 든든한 중견작가로 발전해나가길 기대한다.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고른 역사서는 심재우의 <네 죄를 고하여라>(산처럼, 2011)이다. 이 역시 지난달에 꼽았던 책이다. '법률과 형벌로 읽는 조선'이 부제다. "정말이지 법률이나 형벌 용어는 가장 어려운 한자말로 되어 있어,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면 도저히 자신 있게 대중적으로 풀어쓰지 못하는 분야이다. 이 책을 계기로 역사대중서와 TV사극에 있어 한 단계 진전된 형벌 장면이 생생하면서도 정확하게 묘사되기를 희망한다"고 김교수는 적었다. 사실 '포도청'이란 말은 너무도 친숙하지만, 조선의 형벌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바는 많지 않다. <네 죄를 고하여라>를 계기도 좀더 다양하고 깊이 있는 책들이 출간되면 좋겠다. 예전에 도서관에서 이 분야의 책을 찾다가 발견한 게 허남오의 <너희가 포도청을 어찌 아느냐>(가람기획, 2001) 정도였다. 어린이용으로 <조선시대 포도청에 가다>(가나출판사, 2008)도 나와 있군...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고른 철학책은 슈테판 클라인의 <이타주의자가 지배한다>(웅진지식하우스, 2011)이다. 저자가 철학과 물리학을 전공하고 생물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특이한 경력을 갖고는 있지만 철학서로 분류되진 않는 책인데, 넓은 의미의 인문교양서로 읽을 수 있겠다. 이제 보니 <시간의 놀라운 발견>(웅진지식하우스, 2007), <행복의 공식>(웅진지식하우스, 2006) 등 댓권의 책이 소개돼 있는 베스트셀러 저자다.


이타주의에 대해서는 원제가 '미덕의 기원'인 매트 리들리의 <이타적 유전자>(사이언스북스, 2001), 마이클 토마셀로의 <이기적 원숭이와 이타적 인간>(이음, 2011), 최정규의 <이타적 인간의 출현>(뿌리와이파리, 2009) 등이 단골로 거론되는 책이다.


4. 정치/사회
마인섭 교수가 추천한 책은 데이비드 건틀릿의 <커넥팅>(삼천리, 2011)이다. 소셜네트워크혁명을 다룬 책인데, "저자는 웹2.0이 단순히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고유의 철학이자 방법론이라고 한다. 존 러스킨과 유튜브, 윌리엄 모리스와 위키피디아, 이반 일리치의 상생ㆍ공존과 소셜네트워크를 연결시킨 저자의 발상은 파격적이지만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고 소개된다. 지난 세기말 니콜라스 네그로폰테의 <디지털이다>(커뮤니케이션북스, 1999)가 디지털시대의 철학을 제시한 걸로 화제가 됐던 게 생각난다. 어느새 '올드'한 얘기인가. 디지털혁명의 진화가 우리를 어디까지 데려갈지 궁금하다.


5. 경제/경영
박원암 교수가 고른 책은 <이노베이터 DNA>(세종서적, 2012)다. "스티브 잡스와 애플을 필두로 어떻게 세계적인 혁신들이 이루어질 수 있었는지 조사하고 분석한 이 분야 최고 학자들의 책"이다. 책에서는 한국, 일본, 중국을 많은 아랍 국가들처럼 혁신을 이루기 어려운 나라로 지목하고 있다는걸로 보아 저자들이 알 건 다 아는 듯싶다. 공저자 중의 한 명인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는 혁신에 대한 다른 책들의 저자로서 잘 알려져 있다고 해서 찾아보니, 꽤 여러 권의 책이 뜬다. 혁신할 기업만 갖고 있다면 읽어볼 만하겠다.



6. 과학
김응서 위원이 추천한 책은 수학책이다. 안소정의 <배낭에서 꺼낸 수학>(휴머니스트, 2011). '배낭'이란 말이 비유가 아니어서 "인류 문명의 발상지이자 고대 수학사의 무대가 되었던 이집트, 그리스, 이탈리아, 인도로 수학을 만나러 가는 여행기"라 한다. 지난 12월에도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수학책을 꼽은 적이 있는데, 다시 검색해보니 '축구공 위의 수학자'로 잘 알려진 강석진 교수의 <수학의 유혹>(문학동네) 시리즈도 눈길을 끈다.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추천한 예술서는 박철호의 <베를린, 천 개의 연극>(반비, 2011)이다. "저자의 손을 잡고 베를린 곳곳의 극장을 함께 따라다니며, 인생의 희비극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책". 오랜만에 연극 개론서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 무엇인지 찾아봤다. 밀리 배린저의 <연극 이해의 길>(평민사, 2010)이다. 흠, 연극 본 지도 오래됐군...


8. 교양
내가고른 교양서는 최재천 교수의 <다윈 지능>(사이언스북스, 2012)이다. 다윈의 생각에 대한 최적의 안내자가 진화론의 이모저모를 소개한다.
<다윈 지능>은 진화론에 대한 우리의 이해 수준을 재볼 수 있는 유용한 척도이다. 진화란 무엇인가? “세대 간에 일어나는 생물체의 형태와 행동이 변화”이다. 그리고 다윈의 자연선택론은 이 모든 변화의 과정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지난 150여 년간 많은 비난과 오해에 휩싸였지만 이제는 생명의 의미와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훌륭한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다윈의 생각에 대한 최적의 안내자를 따라가다 보면 그처럼 간결한 이론이 얼마나 많은 현상과 행동을 우아하고도 명쾌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지 경탄하게 된다.
찰스 다윈 서간집 <기원>과 <진화>도 이 참에 같이 읽으면 좋겠다(최재천 교수가 지휘하는 다윈 저작의 새 번역판들은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 나는 구입하는 것까지가 이달의 목표다.


9. 실용
손수호 위원이 추천한 실용서는 차동엽의 <잊혀진 질문>(명진출판, 2012)이다. 특이한 기원을 갖고 있는 책인데, 삼성의 故 이병철 회장이 던진 질문들에 대한 신부님의 답변이 24년만에 한권의 책으로 묶였다고. '질문'이라고 하니까 떠오르는 책은 존 판던의 <이것은 질문입니까?>(랜덤하우스, 2011)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의 입학면접시험 문제들에 대해 저자가 답한 책. 거기에 보태자면 교양과학서에 들어갈 책이겠지만, 37명의 과학자가 각자가 생각하는 마음과 생명, 그리고 우주에 대해 털어놓는 책 <과학자처럼 사고하기>(이루, 2012)도 같이 읽어볼 만하다. 고등학생 정도라면 충분히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을 듯싶다.


10. 헤겔
내가 따로 고른 주제는 '헤겔'이다. 프레더릭 바이저의 <헤겔>(도서출판b, 2012) 덕분에 기획한 것인데, 수전 벅모스의 <헤겔, 아이티, 보편사>(문학동네, 2012)와 라나지트 구하의 <역사 없는 사람들>(삼천리, 2011)까지 뻗어나가면 좋겠다.



헤겔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서로는 한스 프리드리히 풀다의 <헤겔>(용의숲, 2010)이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이다. 피터 싱어의 <헤겔>(시공사, 2000)이 간결한 입문서이고, 테리 핀카드의 <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이제이북스, 2006)이 규모 있는 평전이지만 두 권 모두 절판된 상태다. 다시 춮간되면 좋겠다.
12. 01. 30.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은 <시경>이다. 여러 번역본 가운데 김학주 선생의 <새로 옮긴 시경>(명문당, 2010)과 이기동 교수의 <시경강설>(성균관대출판부, 2004)을 기본서로 골랐다. <시경>에 대한 깊이 있는 책은 의외로 찾기 어려운데, 마르셀 그라네의 <중국의 고대 축제와 가요>(살림, 2005) 정도가 그나마 연구사적 의의를 갖는 책이다. 이 책이 포함된 '살림 클래식'에는 그라네의 또다른 책 <중국의 고대 춤과 전설>도 근간예정으로 돼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 소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