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플라톤의 <향연> 가운데 한 대목을 읽고 있다. <향연>에 대해서는 강의를 진행중이어서 여러 종의 번역본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내가 갖고 있는 것만 해도 7-8종이다. 활달한 대화체의 느낌은 주지 않지만 표준적인 건 정암학당 전집판의 <향연>(이제이북스, 2010)이다.
한겨레(12. 01. 21) 고대 그리스 ‘최고의 사랑’은…동성애라네
‘사랑에 관한 철학’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책, 바로 플라톤의 <향연>이다. 플라톤의 작품 가운데 <국가>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책이라고도 하지만, <국가>의 분량을 고려하면 믿기진 않는다. 번역종수로는 <소크라테스의 변론> 다음으로 많은 것이 <향연>이다. 이래저래 플라톤의 독자라면 두번째로 많이 손에 들 법한 책이다.
<향연>은 아가톤의 집에서 열린 향연 자리에서 일곱명의 연사가 사랑의 신 에로스를 각각 찬양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이야기의 정점은 소크라테스의 연설이지만 다른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가장 먼저 말문을 연 파이드로스만 봐도 그렇다. 다른 신들과 달리 에로스에 대해선 변변한 찬가조차 없다는 게 평소 그의 불만이었다. 이야기의 주제를 사랑으로 하자는 제안은 그의 발상에서 비롯됐기에 그는 향연에서 ‘이야기의 아버지’라고 호명된다.
파이드로스에 따르면 에로스는 카오스(틈)와 가이아(땅)에 이어서 생겨난 가장 오래된 신으로서 “우리에게 있는 최대로 좋은 것들의 원인”이다. ‘최대로 좋은 것’이란 무엇인가. 물론 ‘사랑’인데, 고대 그리스인들이 생각한 건 특별한 유형의 사랑이었다. “사실 나는, 젊었을 때부터 고결한 연인을 갖는 것, 그리고 그 연인의 사랑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지 의문이었다네”(박희영 옮김, 문학과지성사)라고 옮길 때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어린 사람에게는, 그것도 아주 어렸을 적부터, 자기를 사랑해주는 쓸 만한 사람을 갖는 것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쓸 만한 소년 애인을 갖는 것보다 더 크게 좋은 어떤 것이 있을지 나로서는 말할 수 없거든”(강철웅 옮김, 이제이북스)이라고 하면 좀 명확해진다.
파이드로스가 말하는 ‘연인’이나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남자를 가리키며, 그에게 ‘사랑받는 사람’ 역시 남자다. 다만 사랑받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보다 나이가 좀 어리기에 ‘소년 애인’이라고 옮겼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사랑하는 사람’은 중년 남자이고, ‘사랑받는 사람’은 미소년이다. 인생에서 최대로 좋은 것이란, 두 남자가 각각 그런 상대를 갖는 것이다. 국가나 군대가 이렇듯 사랑하는 자와 소년 애인으로 구성된다면 아무리 적은 수라 할지라도 모든 사람을 이길 수 있다는 게 파이드로스의 장담이다. 실제로 테베에서는 남성 커플 150쌍으로 이루어져 혁혁한 공을 세운 ‘신성 부대’가 있었다고 한다!
이런 사랑의 이상적인 사례가 뜻밖에도 아킬레우스다. 비극시인 아이스퀼로스는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를 사랑하고 있다고, 곧 파트로클로스의 ‘연인’이라고 말하지만 엉뚱한 소리라는 게 파이드로스의 주장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따르면 아킬레우스는 아직 턱에 수염도 나지 않은 젊은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자’(에라스테스)가 될 수 없다. 아킬레우스는 ‘사랑받는 자’이다. 영화 <트로이>에서는 아킬레우스(브래드 핏)가 친구인 파트로클로스보다 연장자로 나오지만 실상은 거꾸로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에로스적 관계에서는 두 가지 ‘소중히 여김’이 있다. 사랑하는 자가 사랑받는 자를 소중히 여기는 것과 사랑받는 자가 사랑하는 자를 소중히 여기는 것. 그리스의 신들이 더 높이 평가하는 것은 사랑받는 자가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아킬레우스가 자기를 사랑하는 자 파트로클로스의 복수에 나선 것은 그래서 높이 칭송된다고 파이드로스는 말한다. 제법 흥미로운가? 그렇다면 <향연>의 나머지 이야기들에도 귀 기울여볼 수 있겠다. 그리스의 속담을 약간 비틀면, 훌륭한 사람은 초대장이 없이도 향연에 참석할 수 있다.
12. 01. 21.
P.S. 고대 그리스에선 동성애가 사랑의 모델이었다는 사실은 상식에 속하기에 사실 칼럼의 초점은 다른 곳에 있다.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관계를 정확하게 옮기는 게 중요하다는 점. 이제이북스판에서는 "한데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한 아이스퀼로스는 엉뚱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네"라고 옮겼는데, 원문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해도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를 사랑하고 있다"가 "아킬레우스가 파트로클로스의 에라스테스(사랑하는 자)라는 말이다"라고 각주에 설명돼 있지 않다면 모호하게 읽혔을 것이다. 두 사람은 소위 말해 에로스적 관계이지만 대등하진 않다. 고대 그리스에선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가 엄격하게 구분돼 있었기 때문이다. 수염이 안 난 아킬레우스는 사랑받는 자이기 때문에 '파트로클로스를 사랑하고 있다'고 한 아이스퀼로스는 잘못 말한 것이라는 게 파이드로스의 주장이다.
손에 잡히는 대로 더 살펴보면, 안티쿠스판에서도 그냥 "아이스퀼로스는 아킬레우스가 (...) 파트로클로스를 사랑했다는 터무니없는 말을 하네"라고만 옮기고 있는데, '사랑했다'는 말의 의미를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독자로선 둘의 관계가 헷갈릴 수 있다. 지만지판에서는 "그런데 아이스킬로스가 아킬레우스를 파트로클로스의 연인으로 묘사한 것은 엉뚱한 이야기입니다"라고 옮겼는데, 그래서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연인이 아니다'라고 정리하게 되면 우리말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문예출판사판에서 "그런데 아이스킬로스가 아킬레우스를 파트로클로스의 애인이라고 말한 것은 아주 잘못입니다"라고 한 것도 마찬가지다. 아주 잘못은 아니더라도, 잘못된 번역이라는 생각이다.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니 말이다. 다른 번역본으로 읽을 때도 유의해서 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