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배송받은 책 가운데 하나는 미셸-롤프 트루요의 <과거 침묵시키기>(그린비, 2012)다. 저자는 아이티 출신의 인류학자로 현재는 시카고대학의 명예교수로 재직중이고 카리브지역과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중심으로 한 미국사회가 주요 연구관심사라 한다. '권력과 역사의 생산'이란 부제의 이번 책은 그의 역사론 내지는 역사철학을 담고 있다.

 

 

한겨레(12. 01. 07) 역사는 왜 보들레르의 연인 잔 뒤발을 지웠나

 

잔 뒤발은 <악의 꽃>의 시인 보들레르에겐 상상력의 원천이었다. 그녀는 아이티 출신의 무용수로 시인과 폭풍과 같은 사랑을 나눴고, 시인은 그녀를 “블랙 비너스”, “여인 중의 여인”이라 불렀다. 하지만 14년 전 에마뉘엘 리숑의 전기물이 나오기까지 누구도 그녀가 보들레르 시학에 미친 결정적인 영향력을 이야기하길 꺼렸다. 흑인 피가 섞인 여인에겐 연기자보다는 창녀의 이미지가 제격이었다. 흑인성은 이국적 풍물로 넘쳐나는 파리에서 결코 ‘선한 야만’의 지위도 얻지 못했다. 당연히 그녀는 전기작가들에게 점잖게 무시당했다.

그랬다. 프랑스혁명의 인권선언은 “모든 인간이 자유롭게 태어났다”고 적었지만, 여성이나 흑인은 아직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여성의 시민권을 외쳤던 올랭프 드 구주는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었고, 마리 앙투아네트는 국사범이 아니라 잡범으로 처단되었다. 혁명은 철저하게 “형제들의 계약”이었다. 잔 뒤발과 올랭프 드 구주는 뒤늦게 망각과 침묵을 깨고 재해석되고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도 어처구니없는 죄명에서 해방되었다. 역사 기술자들은 늘 권력자들로부터 특정한 의제만 서술할 것을 강요당한다. 권력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진실은 침잠한다.

시카고대학 인류학 교수인 미셸롤프 트루요가 쓴 <과거 침묵시키기: 권력과 역사의 생산>(1995)은 역사기술이 얼마나 권력 지향적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역사철학서이다. 이 책은 두개의 아이티 사건, 그리고 콜럼버스 영웅 만들기에 얽힌 불편한 진실을 예화로 서사와 서사 만들기 과정을 분석한다. 일어났던 과거는 결코 그대로 기록되지 않는다. 역사로 기록되려면 적어도 네 차례의 침묵 만들기 과정을 통과해야만 한다.

첫째, 사실생산(소스 만들기)의 순간. 모든 것이 기록되거나 기억되지 않는다. 둘째, 사실 취합의 순간(아카이브 만들기)에도 침묵과 선택이 이뤄진다. 셋째, 사실추출의 순간(서사 만들기)에도 내레이터의 가치관에 따른 취사선택이 이뤄진다. 넷째, 역사 만들기. 모든 서사가 표준적인 역사적 서사로 수용되지 않는다. 이 가운데 극히 일부만 ‘역사’란 이름으로 독자에게 전달된다.

이러한 ‘침묵’의 과정을 트루요는 세개의 사례로 살펴본다. 첫째는 상수시 궁전 이야기이다. 상수시 궁전은 아이티 독립운동 지도자로 나중에 앙리 1세가 된 앙리 크리스토프가 지었다. 독일의 포츠담에도 프리드리히 대제가 묻혀 있는 상수시 궁전이 있다. 미국인 의사 출신 조너선 브라운은 크리스토프가 죽은 지 10년 뒤 이렇게 썼다. “크리스토프 왕은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대왕에게 매혹되었고, 상수시 궁전의 이름을 포츠담 궁전에서 따왔다.” 이 진술은 후대 영미권 작가들이 두고두고 인용할 원자료가 된다.

하지만 상수시는 아이티 독립혁명 당시 비타협적인 무장투쟁을 이끌었던 대령의 이름이기도 했다. 상수시는 루베르튀르, 데살린, 크리스토프, 페티옹과 같은 흑인 크레올 장군들이 무장혁명을 이끌 때 부하로 가담했고, 이들이 1802년에 프랑스군에 투항했을 때, 무기를 내리지 않고 게릴라 전투를 벌여 프랑스군과 크레올 장군들을 곤경에 빠뜨렸다. 앙리 크리스토프는 과거에 자신의 부하였던 그를 매복해서 살해했다. 조너선 브라운이 상수시 궁전을 포츠담의 상수시와 연결지으면서, 그럴듯한 서사가 완성되었고, 비타협적 무장투쟁의 상수시 대령은 역사에서 지워졌다.

둘째 사례는 아이티 노예들의 독립혁명에 대한 프랑스의 반응이었다. 흑인들의 반란이 백인 프랑스를 무찌르고 독립을 쟁취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황열병이나, 백인들 내부의 갈등 또는 통제에서 벗어난 물라토들이 봉기를 일으킨 것으로 이해하려고 했다. 당대 프랑스인들의 인종주의 인식 틀이 얼마나 사실을 왜곡해서 받아들였는지 트루요는 잘 보여준다.

셋째 사례는 이미 잘 알려진 콜럼버스 영웅 만들기이다. 1492년 콜럼버스의 바하마 섬에 대한 ‘침입’ 스토리가 미국의 팽창 과정에서 얼마나 과대포장 되었는지, 소위 ‘발견’ 400돌 기념식을 예를 들어 설명한다.

 


트루요의 주장은 <글로벌 변환: 인류학과 북대서양>(2003)과 겹쳐 읽으면, 좀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근대화나 세계화와 관련된 북대서양의 지배적 서사들도 세계사에 대한 거대한 침묵을 강요한다. 따라서 발전, 진보, 민주주의, 국민국가의 개념들도 모두 비서구 지역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그는 서구중심의 서사 해체를 통해 복수로만 존재하는 근대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엔리케 두셀의 <1492: 타자의 은닉>이 탈서구주의 역사철학의 일단을 보여주었다면, 트루요의 이 책은 좀더 내밀하게 역사 생산과정이 갖는 권력 현상에 주목한다. 역사물에 탐닉하는 독자들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예방접종과 같은 책이다.(이성형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 교수)

 

12. 01. 08.

 

 

 

P.S. 아이티혁명에 관한 책으론 시 엘 아르 제임스의 <블랙 자코뱅>(필맥, 2007)이 있다. 아이티혁명과 역사철학에 대해서는 수잔 벅-모스의 <헤겔, 아이티, 보편사>가 번역돼 나온다고 들었다. 올해의 기대작 가운데 하나다. 탈식민주의 역사철학이란 점에서 라나자트 구하의 <역사 없는 사람들>(삼천리, 2011)과 같이 읽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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