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주문한 책 가운데 하나는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의 <2013년 이후>(백산서당, 2012)이다. 이전에 그의 칼럼을 몇 차례 옮겨온 바 있어서 관심은 갖고 있었지만 책을 읽은 적은 없다. 인터뷰기사에서 "한국 진보가 2,000만 취약계층의 희망이 되어 집권을 넘보려면 그 고용노동 비전은 '정리해고ㆍ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아니라 '정리해고가 있어도 비정규직이어도 그런 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눈길이 가서 '아주 후진' 책 모양새에도 불구하고 읽어보기로 했다(정책자료집이나 쓰일 법한 표지다. '사회디자인'과 '책디자인'은 무관한 것인가). '문제는 일자리와 공평이다'가 저자의 핵심주장이다.
한국일보(12. 01. 07) "진보가 2000만 취약계층 희망되려면 비정규직이어도 살만한 세상 만들어야"
'좌충우돌'이라는 말이 어울릴 거 같다. 5년여 전 공공정책컨설팅 회사로 출범했다가 사단법인으로 바뀌어 사회정책 싱크탱크가 된 사회디자인연구소의 김대호(49) 소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신간 <2013년 이후>(백산서당 발행)에서 올해 총선, 대선이 위기에 처한 한국사회를 구할 전기라며 보수는 물론 진보를 향해 마치 기관총 속사라도 하듯 비판을 쏟아 붓는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으로 감옥살이까지 했던 그는 전형적인 '운동권 386세대'다. 1990년대 중반 '공생공영'을 기치로 내걸고 대우그룹이 '386세대'를 대거 입사시켰을 때 서울 구로공단에서 벌이던 노동상담 활동을 접고 대우 행을 택했지만, 시대정신의 세례를 받은 그의 영혼까지 다락에 올려놓지는 못했다. 거칠게 말해 '한국사회 개조론'을 담은 책을 이미 서너 권 냈다. 보수에 대한 쓴소리 못지않게 지난해만도 '희망버스' 비판 등으로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한국의 진보와 보수는 '실체조차 의심스러운 마녀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고 마녀사냥을 획책하고 있'으며 그 '마녀의 이름은 보수에게는 좌파정권과 친북좌파이고, 진보에게는 신자유주의와 한미 FTA'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새 책 이야기를 6일 들었다.
-보수가, 진보가 뭐가 문제인가.
"보수와 진보, 그리고 관료집단에 의해 한국사회의 '공공'이 뒤틀려 있다는 게 문제다. 공공은 '정의' '원칙' '상식'과 동의어인데, 이런 것들이 뒤틀려 있다. 한국 사회의 모순은 진보가 말하듯 시장 논리 과잉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된 시장 원리가 통하지 않아서 잘못된 곳이 대단히 많다. 보수든 진보든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 원리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에 산업생태계가 대단히 피폐해 있다. 한국의 IT계를 두고 안철수가 '삼성ㆍLG동물원'이라고 한 것처럼 대기업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시장 구조, 고용ㆍ임금체계가 노동의 양과 질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수익성과 조직력에 비례하는 것이 문제다. 스웨덴은 볼보자동차 직원과 하청업체의 처우 수준이 비슷하다. 우리 진보에 이런 개념이 있는가. 한국의 진보는 양극화를 더욱 심화한다. 보수의 그늘 못지않게 진보의 그늘도 크다."
-진보가 집권하면 문제가 해결 될까.
"진보의 한국 사회 진단의 핵심은 신자유주의의 과도한 수용이라는 한심한 것이다. 시장 원리를 시장을 통해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이 짓이기는 게 한국 사회다. 공정한 경쟁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뒤집어 엎는다. 이런 상태로 진보가 집권하면 1년도 안 돼 '박살'이 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위기 상황이다. 보수도 진보도 혁신 경쟁을 해야 하고 환골탈태 해야 한다. 진보는 특히 반대만을 비전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는 책에서 한국 사회의 물질적 재생산구조의 핵심을 '고단한 산업구조'와 '양반ㆍ상놈으로 나누어진 고용구조'라며 이것이 '양극화ㆍ민생불안, 절망과 불신 등을 확대재생산하는 핵심구조'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정리해고ㆍ비정규직 없는 세상'이라는 비전을 타도해야 할 '지적 앙시앵 레짐'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한국 진보가 2,000만 취약계층의 희망이 되어 집권을 넘보려면 그 고용노동 비전은 '정리해고ㆍ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아니라 '정리해고가 있어도 비정규직이어도 그런 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복지 논쟁이 뜨겁다.
"보편ㆍ선별주의라는 이슈가 한심할 따름이다. 복지 정책은 (복지의)두께, 대상, 프로그램의 우선 순위 등 3가지 차원이 있다. 보편ㆍ선별 논쟁은 대상의 문제이다. 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거의 대다수가 10년 안에 국민총생산(GDP)의 20%를 복지에 지출하자고 한다. 이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다. 하지만 한국은 연금을 안 부은 노인들과 기타 사각지대도 적지 않다. 여기서 뭉텅이로 예산이 떨어져 나가고 나면 보편주의를 하더라도 OECD 평균보다 적은 돈으로 복지시스템을 돌려야 한다. 고용률이나 임금근로자 비율이 낮고 자영업자가 많은 현재의 한국 사회에서는 그러면 (복지의)두께가 얇아질 수밖에 없다. 두께, 대상, 프로그램 우선순위의 문제를 종합해서 어떤 것은 보편주의, 어떤 것은 두꺼운 선별주의 하는 식으로 다양하게 조정해야 한다."
-'2013 체제'는 무엇인가.
"민주화의 열망이 녹아 형성된 '87 체제'라는 지금까지 가치의 총체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남북관계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겠지만 중요한 것은 강하고 유능한 정치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헌법과 선거법 개정이 필요하다. 5년 대통령 단임제, 소선거구제는 독재 방지를 위해 정치를 무능하게 만들어 놓은 모양새다. 그래서 연임이 가능하도록 헌법을 바꾸고, 국회의원을 500명으로 늘려 정치가 관료 집단을 끌어나가야 한다." (김범수기자)
12. 01.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