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고 나이를 더 먹는 일에 아무런 '비장함'을 느끼지 못하니 중년은 중년인가 보다. '기획독서'(최재천 교수의 표현)로 독서실에서 문화인류학 책을 몇권 들춰보고 돌아와 얼마남지 않은 올해의 마지막 시간을 '1월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르는 데 선용하기로 한다. 파일손상으로 윈도가 많이 불안정한 상태라서 올해 안으로 끝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여하튼 해오던 일이니 거르지 않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

 

 

1. 문학

 

김미현 교수가 추천한 책은 이문열의 <리투아니아 여인>(민음사, 2011)이다. "디아스포라소설이나 연애소설뿐만 아니라 예술가소설"로서 "1인 망명 정부로서 예술 그 자체가 모국어인 문화적 노마드들에게 바쳐지는 선언이자 헌사"라는 평이다. 작가의 명망에 기댄다면 신경숙의 소설집 <모르는 여인들>(문학동네, 2011)도 독서목록에 올려놓음직하다('여인'이나 '여인들'이나). 작가의 산문집 <아름다운 그늘>(문학동네, 2011)도 오랜만에 다시 출간됐다.

 

 

마이리스트로도 만들어놓았지만 알바니아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의 소설들도 읽어봄직하다. 데뷔작인 <죽은 군대의 장군>(문학동네, 2011)이 다시 번역돼 나온 게 다시 눈길을 주는 이유다.

 

 

다시 번역돼 나온 걸로 치면 전집판으로 새로 번역된 쿤데라의 <웃음과 망각의 책>(민음사, 2011)과 <삶은 다른 곳에>(민음사, 2011)도 빼놓을 수 없겠다. <웃음과 망각의 책>은 문학사상사판과, <삶은 다른 곳에>는 까치판 <생은 다른 곳에>와 비교해서 읽을 수도 있다. 1월은 첫달이니까 좀 풍족하게 읽어두기로 하자...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추천한 역사서는 이순구의 <조선의 가족, 천개의 표정>(다산북스, 2011)이다. "이 책은 17세기 사회변화의 전후시기의 가족 모습을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보여주고 있다. 처가살이, 처가와 외가의 위력, 집안의 중심이 되는 여자와 가족들의 이야기가 17세기 전후로 어떻게 변모하는지를 역사에세이 형태로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역사성을 갖고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같은 조선사를 다룬 책으로 조선시대 형벌에 관한 심재우의 <네 죄를 고하여라>(산처럼, 2011)도 읽어봄직하다. 학술적인 책으로는 <조선후기 국가권력과 범죄 통제>(태학사, 2009)도 나와 있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추천한 철학서는 이수영의 <명랑철학>(동녘, 2011)이다. 니체 철학 입문서이자 소개서. 내친 김에 니체의 책도 읽고자 한다면, 책세상 전집도 나와 있는 상태이지만 새로 번역된 <도덕의 계보학>(연암서가, 2011)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한길사, 2011)를 권하고 싶다. 다시 읽어도 좋은 책이 고전이라면, 또한 다시 번역돼도 좋은 책이 고전이다.

 

  

 

4. 정치/사회

 

마인섭 교수가 고른 책은 정재호 편, <중국을 고민하다>(삼성경제연구소, 2011)이다. 초강대국 중국과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을까에 대해서 중국 전문학자들이 해법을 제시한 책이라고. 중국이 우리에게만 고민인 것은 아니어서 미국과 유럽에서 바라보는 중국도 매번 참고할 만하다. 조나단 와츠의 <중국 없는 세계>(랜덤하우스코리아, 2011)와 스테판 할퍼의 <베이징 컨센서스>(21세기북스, 2011)이 그런 류의 책들이다. 

 

 

 

5. 경제/경영

 

박원암 교수가 추천한 경제서는 브랑코 밀라노비치의 <가진 자, 가지지 못한 자>(파이카, 2011)이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은 글로벌 불균형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따라서 한 나라의 소득 불균등에만 관심을 두지 않고 국가 간 및 전 세계적 소득불균등에 관심을 두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점점 더 격화되고 있는 부의 불균형과 소득 격차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시사를 얻을 수 있을 듯싶다. 전에 언급한 책들이지만 마이크 데이비스의 <자본주의, 그들만의 파라다이스>(아카이브, 2011)와 이정우 교수의 <불평등의 경제학>(후마니타스, 2011)도 이 주제를 다루고 있다.

 

 

6. 과학

 

김응서 위원이 추천한 과학서는 박성래 교수의 <인물과학사1: 한국의 과학자들>(책과함께, 2011)이다(2편은 <세계의 과학자들>). "평생 과학사를 연구해온 과학사학자가 천문학, 역법과 지리학, 의학, 기술과 발명, 농학과 동물학, 수학, 과학행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한국의 과학기술자를 발굴하여 책에 담았다." 저자의 책으론 <한국 과학사상사>(유스북, 2005)도 기억해둠직하다.

 

 

더불어 꼽자면,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에코리브르, 2011)이 50주년 기념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이 환경학 고전을 아직 소장하지 않고 있는 분들은 이 참에 장만해두시길...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추천한 예술서는 박현정, 최재혁의 <아트, 도쿄>(북하우스, 2011)다. 예술서이면서 동시에 여행서. "캔 커피 또는 캔 맥주 하나 사들고 일본인들 사이에 파묻혀 두리번거리는 기분으로 도쿄를 탐색해 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라고 추천한다. 아직은 일본 여행에 자신 있게 나설 사람이 많지는 않을 테지만 요긴한 책으로 기억해둠직하다. 내친 김에 일본미술에 관한 책을 검색해보니 <에도시대의 일본미술>(예경, 2004), <일본의 실험미술>(시공사, 2001) 등이 눈에 띈다. 묵직한 책은 아직 소개되지 않은 듯싶다.

 

 

8. 교양

 

내가 고른 교양분야의 책은 김성홍의 <길모퉁이 건축>(현암사, 2011)이다. 중간건축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이 좀더 확산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 건축의 미래는 중간건축에 발을 담그고, 관찰하고, 해석하는 학자와 여기에 실험을 모색하는 건축가들이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포진하는가에 달려 있다." 중간건축에 대한 고민과 대비해서 읽어볼 만한 책은 데얀 수딕의 <거대건축이라는 욕망>(작가정신, 2011)이다. 이젠 '건설한국'이라는 신화에서 벗어나 우리에게 필요한 건축문화를 고민할 때이다. 너무 늦지 않았다면...

 

 

9. 실용

 

손수호 위원이 고른 실용서는 박종만의 <닥터만의 커피로드>(문학동네, 2011)다. 전국에 있는 커피전문점 수가 1만개를 넘어섰다고 하고 '커피공화국'이란 말도 나온다. "이 책의 전편 격인 『커피기행』이 커피의 발견지인 아프리카를 다뤘다면 이번에는 아랍과 유럽을 돌았다." 여행서를 겸한 커피문화 탐방기로 보인다. 또 다른 커피전문가 이윤선의 <테라로사 커피로드>(북하우스엔, 2011)도 비슷하게 나온 책이다.

 

 

10. 통섭의 식탁

 

오늘 배송받은 책의 하나는 최재천 교수의 <통섭의 식탁>(명진출판, 2011)이다. <과학자의 서재>(명진출판, 2011)의 속편 격으로 '책벌(冊閥)'을 자임하는 저자의 서평집이다. 여러 분야의 책들이 망라돼 있지만 그래도 역시 주종은 과학서이고, 저자가 식탁에 올려놓은 요리들을 음미해보기 위해서 고른 책이다(물론 서평은 '맛보기'만을 제공한다). 우선은 '세프' 추천메뉴에 오른 <요리본능>(사이언스북스, 2011)이 새해에 제일 먼저 읽을 책이다. 손 가까이에 있어서이긴 하지만... 그렇게 또 한해가 시작되는군...

 

11. 12. 31.

 

 

P.S. '1월의 읽을 만한 고전'은 플라톤의 <향연>으로 정했다. 번역도 많이 나와 있고, 해설서도 몇권 된다.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뭔가 '잔치' 분위기로 새해를 시작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