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기 전에 올해의 마지막 북리뷰들을 둘러보다가 한겨레에서 '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를 옮겨놓는다. 평소 장르문학을 읽지 않기 때문에(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먼저 읽고픈 책들이 많아서다) '장르문학 읽기'에 눈길이 간 적은 거의 없는데, 이번엔 좀 다르다. <물만두의 추리책방>(바다출판사, 2011)이 다뤄졌기 때문이다. 본명인 홍윤보다는 물만두라는 필명으로 우리(알라디너)에겐 친숙한 그이의 유작이다. 사실 나는 <별다섯 인생>(바다출판사, 2011)만을 구입했고 아직 손에 들진 못했다. 그럼에도 <물만두의 추리책방> 읽기로 2011년을 마무리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싶다. '올해의 책' 가운데 하나이니까...
한겨레(11. 12. 31) 가벼운 소설들이 한사람의 묵직한 삶과 맞닿은 지점
이번에는 어떤 책을 고를까 오래 고민했다. 서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책의 선정, 더욱이 한 해의 독서를 마무리하는 날이므로 우아하고 매혹적이며 숨넘어갈 만큼 재미있는 책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의외의 선택일지 모르나 올해의 마지막 책은 <물만두의 추리책방>이다. 유명 작가의 장르 소설이 아니라 서점 사이트에서 블로거로 활동하던 고인이 쓴 글을 모은 추리소설 서평집이다. 전문적이든 취미로든 공개적 서평을 쓰기란 쉽지 않다. 서평 모음 <악평>의 서문에 나오듯이 서평자는 존경받지도 못하고 친구를 잃기도 하며 자기 나름의 판단을 내리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서평의 본연적 공포에도 굴하지 않고 저자인 홍윤은 10여년의 세월 동안 ‘물만두’라는 닉네임으로 1838편에 이르는 서평을 온라인 서점에 썼다. 새 추리소설은 제일 먼저 물만두가 소개했다. 큰 관심을 모으지 못한 소설에도 그의 안내가 있었다. 서평집이란 기자나 평론가, 작가 등 관련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전문 지식이나 저자의 남다른 이력에 기대어 나오기 마련이라 이처럼 서평, 그것도 추리소설 위주의 글로만 알려진 사람의 책이 출간되는 건 흔치는 않은 일이다. 열렬한 독자가 경험으로 쓴 장르문학 서평집이라는 것 자체만으로도 독자적 의의가 있는 책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다른 의미도 스며 있다. 스물다섯의 나이에 근육병인 봉입체근염 진단을 받은 저자는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방 안에서 책을 읽었다. 그는 2010년 12월 세상을 떠났지만 세상과 소통한 결과물은 유산처럼 책이 되어 남았다. 이 책은 200편의 다양한 추리소설을 소개하며 입문서 역할을 하는 동시에, 말 그대로 책이 세계를 향한 문이었던 애서가의 열정을 드러내는 기록이기도 하다. 그가 쓴 글들은 “좋아하는 책을 읽고 그에 대해서 쓰기”라는 독후감의 기본 기능을 수행한다. 서평은 대개 다른 이를 평가하는 권력 의지를 노출하지만 저자는 그런 욕망 없이 따뜻한 시각을 유지한다. 오랜 병에 고통 받았기 때문일까, 힘겹게 사는 이들에 대한 격려도 아낌없다. “인생은 미스터리”라고 말했던 저자는 추리소설 속에서 그에게 닥친 불가해한 운명을 이해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올해도 여전히 독서의 의미를 고민하는 한 해였다. 널리 인정받는 가치가 있는 책들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모두에게 있지만, 우리의 독서는 타인에게 존중받지 못할 때도 있다. 특히 장르소설 독자들은 오래 논할 가치가 없는 책을 읽는다는 편견에 얽매인다. 홍윤의 서평집은 소위 가벼운 소설들이 한 사람의 묵직한 삶과 맞닿아 있는 지점을 보여준다. 올해의 인용구로 꼽힐 만한 글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잡문집>에 쓴 문장이 있다. “편파적인 사랑이야말로 내가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가장 편파적으로 사랑하는 것들 중 하나입니다.” 2011년의 섣달 그믐날, <물만두의 추리책방>을 읽으며 소설에 대한 편파적인 사랑이 실은 보편적인 삶에 대한 의지임을 확인한다. 우리의 편파적인 사랑도 응원을 받는다. 그 덕분에 새해에도 즐겁게, 건강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감사할 따름이다.(박현주_ 번역가, 에세이스트)
11.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