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관심도서의 하나는 독일에서 활동하는 한병철 교수의 <권력이란 무엇인가>(문학과지성사, 2011)이다. 국내에서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독일어로 20여 권의 책을 출간한 철학자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학자로는 송두율 교수 이후로 처음(최소한 드물게) 소개되지 않나 싶다.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11. 12. 28) “절대권력은 자발적 복종서 기인… 폭력 쓸 필요 없어”
“권력은 폭력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일반적으로 권력을 생각하면 군홧발과 폭력, 짓밟힘과 억눌림, 민중의 봉기와 저항 등을 떠올린다. 이런 통념에서 보면 독일 카를스루에대학 한병철 교수(사진)의 논의는 색다르다.
한 교수는 국내에 처음으로 내놓는 자신의 저서 <권력이란 무엇인가>(문학과지성사)에서 “결코 총구에서 나오지 않는 것, 그것이 권력이다”라는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말을 인용한다. 그에게 권력이란 무엇인가를 억압해 자신의 의지에 따라오게 만드는 강제적 수단만은 아니다. 권력자의 의지가 복종하는 자의 내면으로 스며드는 것이며, 곧 “타자 안에서 자아의 연속성을 창출해내려는 의지”다.
따라서 한 교수는 “절대적 권력은 폭력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데 그것은 자유로운 복종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같은 논의를 전개하면 ‘카다피의 42년 철권통치’라는 말도 다시 보게 된다. 42년간 통치가 가능했던 것은 폭력적 억압 때문만이 아니라 권력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힘으로부터도 나왔다는 것이다.
이런 논의는 대중들의 자발적 참여로 독재가 만들어진다는 ‘대중독재론’ 등과도 비슷해 보인다. 다만 한 교수는 “우리 시대에 권력이라는 하나의 목소리는 다수의 목소리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는 측면에서 과거의 대중독재가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즉 “권력을 통해 걸러지지 않는 모호한 영향력들과 복잡한 상호작용들이 넘쳐나는 시대에서 수많은 목소리들이 불협화음으로 이어져 행위와 결정을 마비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 권력의 다양한 표현 양태를 다시 상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폭력적인 식민 지배와 그 뒤를 이어 지속된 독재의 역사는 한국인들이 권력을 억압이자 부자유로, 맞서 싸워야 할 대상으로 여기게 했다”며 협소한 권력개념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한다.
독일에서 20권 이상의 책을 펴낸 한 교수는 한국보다 독일에서 더 유명한 학자다. 내년 초 번역 출간 예정인 <피로사회>는 2011년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철학서로 꼽혔다. 한국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하고 독일로 건너간 독특한 이력을 지닌 그는 철학과 미디어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황경상 기자)
11. 12. 28.
P.S. 기사에서 언급된 아렌트의 폭력론은 <폭력의 세기>(이후, 1999)에 나오며, <공화국의 위기>(한길사, 2011)에도 포함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