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956호)에 실은 서평을 옮겨놓는다. 하세가와 에이스케의 <일하지 않는 개미>(서울문화사, 2011)에서 일부 내용을 정리하고 소감을 붙였다. 잡지는 강의차 대구에 내려가면서 KTX객차 안에서 읽었는데, 어느덧 '송년호'였다(주간경향이 꼽은 올해의 인물은 '안철수'이다). '일하지 않는 개미'로 한해를 보낼 순 없을까 잠시 공상해본다...
주간경향(11. 12. 27) 모두가 열심히 일하는 사회는 여력이 없다
‘개미에게 배우는 지혜’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건 이솝의 우화 ‘개미와 베짱이’다. 부지런한 개미와 게으른 베짱이의 ‘말로’를 교훈적으로 전해주는 감동적인이면서도 ‘무서운’ 우화 말이다. “너네 그렇게 공부 안하고 놀기만 하면 나중에 거지 된다!”고 했던가. 조금 유식한 독자라면 한걸음 더 나아가 파레토의 법칙이란 걸 떠올릴지도 모른다. 부지런하다고 하는 일개미들을 자세히 관찰했더니 실상 80%는 놀더라는 데 착안하여 경제학자가 내놓은 것이 ‘20:80 법칙’이다. 은연중에 ‘20 대 80 사회’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되기도 한다. 개미에게 배우는 ‘두 번째’ 지혜라고 할까.
일본의 진화생물학자 하세가와 에이스케의 <일하지 않는 개미>는 파레토의 법칙에서도 한걸음 더 나아가 ‘세 번째’ 지혜를 알려주는 책이다. 물론 제목만으로는 별로 놀랍지 않다. “개미가 부지런하다고? 80%의 일개미는 논다!”라는 표지 문구도 게으른 독자들을 확실히 잡아끌 만한 독서의 유인으로는 약해 보인다. 핵심은 다른 데 있다. 저자 또한 개미의 종류와 무관하게 70% 일개미는 아무 일도 하지 않더라는 관찰결과를 보고한다. 일하지 않는 일개미는 먹이를 모으거나 유충을 보살피거나 여왕의 시중을 드는 것과 같이 군락을 위한 뭔가 생산적인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자기 몸을 핥거나 하릴없이 돌아다니는 식으로 노동과 전혀 무관한 활동만 한다.
좋다, 타고난 천성이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그런 게으름뱅이가 절대 다수인 집단이 좀 더 부지런한 집단과의 경쟁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만약 진화적 압력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거라면 일개미들의 게으름은 분명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는 거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개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일하지 않는다’는 뜻을 조금 다르게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개미 군락의 일 가운데는 단기간이라도 멈추게 되면 군락의 생존이 위태로워지는 것이 있다. 특히 알을 보살피는 그런 일에 속하는데, 개미의 알은 몹시 약하기 때문에 일꾼 개미가 늘 곁에서 핥아주어야 한다. 침에 함유된 항균물질을 계속 발라주는 것이다. 땅속이나 썩은 나무 안에서 서식하기에 개미들에게 방균은 중차대한 문제다. 일꾼을 알에서 하루만 떼어놓아도 대부분의 알에 곰팡이가 슬어 죽어버린다고 할 정도다. 이런 조건에서라면 군락 내에 노동력이 제로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먹이를 찾는 일도 중요하지만 모든 개미 전체가 먹이 찾기에 동원될 수 없는 이유다.
게다가 갖가지 돌발적인 사태에도 대비해야 한다. 심술궂은 꼬마가 개미집에 흙을 끼얹는 것 같은 예기치 않은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여력’이라는 게 필요하다. 예비 노동력을 남겨놓지 않고 모두가 한꺼번에 일을 한다면 결국 다들 지쳐서 아무도 일을 할 수 없는 때가 올 수밖에 없다. 그것은 개미 군락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게 된다. 모두가 열심히 일하는 시스템이야말로 파국적인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개미들의 사회에서 ‘일하지 않는 개미’는 잉여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것이 없으면 군락이 존속할 수 없는 매우 중요하고 꼭 필요한 존재다. 다르게 말하면 ‘일하지 않는 개미’는 예비 노동력으로서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존재’다. 얼핏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일하지 않는 개체들을 갖고 있는 개미들의 시스템이 결국 오랜 진화의 압력 속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음미해볼 만하다. 모두가 부지런한 시스템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것은 80%가 게으른 시스템이었다.
<일하지 않는 개미>를 통해서 ‘멍청함’에 대해서도 재평가하게 된다. 개미들은 페로몬을 통해서 정보를 전달하는데, 그 흔적을 따라 앞서 간 개미를 정확하게 추적하는 ‘똘똘이’ 개미 말고도 항상 잘못 추적하는 ‘멍청이’ 개미들이 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똘똘한 개체만 있을 때보다 조금 멍청한 개체가 섞여 있을 때 조직이 더 잘 돌아간다는 사실이다. 먹이를 찾을 때 멍청한 개미들은 길을 잘못 들어서 헤매다가 오히려 지름길을 발견하곤 해서다. ‘부지런한 개미’라는 환상은 벗어던지게 됐지만 아직 우리가 개미에게 배울 수 있는 지혜는 더 남은 듯싶다.
11. 12. 20.
P.S. <일하지 않는 개미>의 추천사는 최재천 교수가 썼는데, 개미 관련서로 대표적인 책이 그의 <개미제국의 발견>(사이언스북스, 1999)이다. 최재천 교수의 지도교수이자 개미에 관한 세계적 권위자 에드워드 윌슨이 베르트 휠도브러와 같이 쓴 <개미 세계 여행>(범양사, 2007)과 함께. 윌슨의 <사회생물학> 개정판은 올해 고대하던 책 가운데 하나였는데, 해를 넘기는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