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관심도서(라고는 하지만 책은 내주에 나오는 듯싶다)의 하나는 사회학자 송호근 교수의 <인민의 탄생>(민음사, 2011)이다. 얼핏 연결이 안 되는 제목이지만 '공론장의 구조변동'이란 부제를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만하임의 지식사회학을 전공한 저자가 하버마스의 문제의식을 한국 근대사에 적용해본 듯싶다.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 전인권의 <1898, 문명의 전환>(이학사, 2011)과 같이 읽어볼 수 있겠다 싶다...
한겨레(11. 12. 03) 읽고 쓰는 평민의 공론중세 조선을 해체하다
조선이라는 봉건적 중세 사회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근대로 이르게 됐는지에 대한 연구는 우리 학계 최대의 화두이자 숙제라 할 수 있다. 외래적 요인 덕분에 근대화가 가능했다는 입장에서부터 조선 사회에도 내재적인 발전요인이 있었다는 입장까지, 역사학·사회학·정치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서 다양하게 펼쳐진 논쟁과 논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여기에 중도보수 성향의 학자로 평가받는 송호근(사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도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가 최근 펴낸 <인민의 탄생-공론장의 구조 변동>은 하버마스의 ‘공론장’ 개념을 중심으로 삼아 한국 근대의 기원과 변천을 탐구하는 연구의 첫 성과물이다. 책은 조선 후기에서 개화기까지 ‘통치의 객체’였던 인민이 어떤 과정을 거쳐 먼 미래에 ‘시민’이 될 ‘근대적 인민’으로 진화했는지를 살핀다. 공론장이란 사회구성원들이 합리적 토론을 통해 보편적 이익을 도출해내는 마당을 말한다. 시민이 나타난 개화기 공론장의 문제는 다음 책 <시민의 탄생>에서 다룰 계획이라 한다.
송 교수는 <한겨레>와의 전화 통화에서 “어떤 처방을 내려도 먹히지 않을 정도로 균열된 우리 사회의 공론장 현실을 보면서,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 역사적 과정을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를 싣기 위한 시도에서부터 경쟁적으로 내놓는 복지담론, 성장과 분배에 대한 논쟁 등 오늘날 합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공론장이 균열된 현실은 지난 20세기 들어 80년 동안 진행된 어떤 역사적 과정의 결과물이라는 것. 따라서 그 과정을 보기 위해 개화기 공론장으로, 또 조선 후기로 거슬러 올라갔다고 한다.
조선 후기에서 근대의 기원을 찾으려는 그동안의 작업들에 대해 송 교수는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소재주의와 목적론의 범주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사회경제적 모순만 다루거나 정치제도만 다루는 등 소재에 치중해 분절적으로 연구했거나, 거시적인 담론을 엮어내기 위해 오늘의 관점으로 과거를 채색하는 오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를 총체적으로 보려 했다는 지은이는 “중세적 제도에 배태된 ‘국문담론’이라는 중추신경”, 곧 언문의 확산이 사회변화에 끼친 영향에 주목했다.
기본적으로 그는 조선을 ‘지식과 권력이 한 몸인 사회’로서, 지식·종교·정치가 강고하게 삼위일체를 이룬 체제로 규정한다. 강한 신분제에 바탕을 둔 향촌 지배와 종교적 의례, 지배 이념의 도덕과 윤리를 재생산하는 교육으로 이뤄진 이런 삼중구조는 형이상학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성리학으로 뒷받침됐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인민은 ‘적자’(赤子, 어린아이)로서 ‘통치의 객체’로 강하게 속박됐다고 한다.
송 교수는 “조선 후기 천주교의 유입과 확산, 민란과 농민 전쟁, 서민 문예의 출현과 확대가 인민을 질적으로 변화시켰으며, 여기서 ‘문해인민’, 곧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인민이 출현하면서 유교국가 조선을 해체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훈민정음은 애초 성리학적 지배를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를 쓰는 인민들은 점차 지배 계급과 다른 새로운 인식의 틀을 갖추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게 지은이의 견해다.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에 비춰볼 때, ‘문해인민’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교환하고 설득할 수 있고, 타인의 낯선 생각을 접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성찰의 기회를 갖게 된 존재라고 한다.
송 교수는 조선 후기의 중대한 변인이었던 ‘인민의 탄생’이 동학에 이르러 전에 없는 ‘평민 공론장’으로 분출했다고 말한다. 이렇게 형성된 인민은 개화기를 맞아 지식인층이 주도했던 여러 형태의 변혁 시도에 분화되고 동원됐지만, ‘시민’으로 정착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는 “적자로서의 인민이 역사와 접속하는 순간 중세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시간대가 열렸다”며 “그게 반드시 근대라고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이전의 중세적 질서와 다르고 우리가 근대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근대라고 할 만하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우리 시대 공론장의 균열을 극복할 방안으로 ‘교양시민의 형성’을 제시했다. “사적 욕구를 제어하고 공공선에 책임을 지는” 교양시민은 원래 개화기 공론장에서 정착되었어야 할 존재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 채 각종 이념과 담론들이 펼쳐져 오늘날까지 이어져왔다는 문제의식이다. 그는 “정치민주화를 이룬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제도의 투명화, 분배, 복지 등 사회민주화를 이루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선 자기 욕망을 제어하고 다른 계층을 배려하며 공공이익에 관심 갖는 교양시민의 출현이 절실하다”고 말했다.(최원형 기자)
11. 12.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