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주제를 고민하다가 낮에 읽은 글은 <창작과비평>(겨울호)에 실린 황승현의 '달동네 우파를 위한 '이중화법' 특강'이다. 제1회 사회인문학평론상 수상작인데, '달동네 우파'란 말이 원래 쓰이던 말인지 필자의 신조어언지 모르겠다. 여하튼 '한예슬 사건'에 대한 유익한 해석을 담고 있다. 칼럼에서 소개하려고 했으나 이미 기사가 올라온 적이 있기에 대신 옮겨놓는다. '이중화법'이란 말은 요즘 유행에 맞게 '꼼수화법'으로 이해해도 좋겠다.

  

경향신문(11. 11. 16) “우파의 강남좌파 비판 이중화법 달동네 서민들 좌파화 저지 속셈”

“박봉에 시달리는 스태프도 가만히 있는데 거액의 출연료를 받는 연예인이 촬영 거부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계간 ‘창작과비평’ 150호 발간을 맞아 창비와 연세대 국학연구원이 제정한 제1회 사회인문학평론상 수상자 황승현씨(35·사진)는 최근 한예슬씨의 촬영 거부 사태에서 무수히 쏟아진 이런 식의 화법을 거부한다. 그는 수상작으로 선정된 ‘달동네우파를 위한 ‘이중화법’ 특강: 한예슬 우화를 솔개와 백조에게 읽혀야 하는 이유’라는 글에서 이렇게 반문한다.

“스태프를 그렇게 걱정한다면 촬영 현장이나 제작 관행에도 눈을 돌려야 하지만, 그들은 한예슬과 스태프를 대비시켜 둘 사이의 대립구도를 만들려고 할 뿐 제작 관행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황씨는 방송사와 제작사 등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이러한 논리가 “열악한 처우의 스태프도 침묵하니까 돈 많이 받는 한예슬 너도 침묵하라는 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모두를 침묵시키기 위한 고도의 이중화법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이중화법이란 이렇듯 사안의 본질을 감추고자 문제를 다른 차원으로 치환해 교묘히 둘러대는 수법을 일컫는 말이다. 이를 통해 “자본과 그 응원단들은 자본의 편임을 들키지 않고 실질적으로 자본의 이해를 관철한다”는 것이다. 한예슬씨를 비판하면서 “국민과의 약속을 어겼다” “직장인에게 박탈감을 줬다”는 논리를 드는 것도 이들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도덕성을 무기로 구조적 모순에 저항하는 움직임을 봉쇄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황씨는 한예슬 사태라는 표층의 작은 사건을 도구로 한국 사회의 담론 생산 구조를 깊숙이 파헤친다. 비정규직이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과정도 유사하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은 도외시한 채 자신들의 처우 향상만 꾀한다”는 식의 비판에서, 비정규직은 정규직 노조에 대한 비난을 극대화시키는 소품으로서만 가치를 인정받는다.

“무상급식은 부자에게 급식을 하는 돈을 가난한 아이들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만든다”는 논리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반대는 “가난한 아이들이 부자들의 세금으로 공짜밥을 먹는다는 절절한 고마움을 느끼기보다 고개를 뻣뻣이 들고 권리로서 복지를 요구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황씨는 이러한 이중화법의 최종 목표가 ‘반미주의자이면서 자기 자식은 미국에 유학 보낸다’고 비판하는 우파의 논리에 숨어있다고 본다. 이 논리는 곧 ‘강남좌파’라는 단어로 함축된다. 이 말은 ‘강남좌파’의 대척점에 있는 ‘달동네우파’를 노린 것이다. “좌파는 호화로운 삶을 살면서 겉으로만 서민을 걱정하는 위선자들이며 서민들의 어려움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우파라는 주장을 ‘강남좌파’라는 레토릭에 집약했다”는 것이다. “달동네 서민이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대신 좌파를 증오하게 만들어 좌파화되는 것을 저지하려는 살뜰한 배려”라는 것이다.

황씨는 “언행일치를 한다며 자식을 미국 근처에도 보내지 않는 반미주의자라면 그들은 뼛속 깊이 반미라며 이들을 공격할 것”이라며 “이들이 좌파를 비난하는 경우를 빼고 유학을 가지 못한 가난한 서민을 걱정하는가”라고 되묻는다. 그는 결론부에서 “이중화법은 파업을 직접 비난하지 않으면서 파업을 좌절시키는 수완이자 가난한 자를 걱정하면서 가난한 자의 복지를 결정적으로 후퇴시키는 기술”이라고 말한다.

제1회 사회인문학평론상 수상작은 이번주에 나올 ‘창착과비평’ 겨울호에 실릴 예정이다. 황씨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2007년에는 경향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돼 한동안 일간지 등에 영화평론 등을 써왔다.(황경상 기자) 

11.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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