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와 제자백가의 귀환

이번주 매경이코노미(1632호)에 실은 서평을 옮겨놓는다. 생각보다 일찍 온라인에도 기사가 올라와 있다. 서평거리로 다룬 책은 강신주의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 가운데 먼저 읽은 <관중과 공자>(사계절, 2011)이다. 지난주에는 덕분에 두툼한 <관자>(소나무, 2006)까지 구입해놓았다. 제자백가와 관련해서는 아직도 읽을 책이 수두룩하다는 걸 이번에 새삼 알게 됐다(일단 <국어>와 <회남자> 등을 주문해놓은 상태다)...  

  

매경이코노미(11. 11. 23) 관중 오독(誤讀)에서 탄생한 공자의 철학

전쟁과 혼란의 시기의 대명사 춘추전국시대는 알다시피 제자백가가 출현해 경합을 벌인 백가쟁명 시대였다. 대학에서 장자철학을 전공하고 대중강연과 폭넓은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는 ‘대중철학자’ 강신주의 야심작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는 그만의 관점으로 새롭게 해석한 제자백가 총정리다. 전체 12권으로 완결될 예정인 이 시리즈에서 서론에 해당하는 1권 ‘철학의 시대:춘추전국시대와 제자백가’에 이어 2권 ‘관중과 공자:패자의 등장과 철학자의 탄생’은 저자의 문제의식이 무엇인지 가늠하게 해준다.

중국 고대철학사가 보통 공자에서부터 시작하는 데 비해서 그는 제자백가의 일원으로 관중을 앞세우고 또 공자와 마주보게 했다. 관중은 누구인가. 공자보다 조금 앞선 시대를 살았던 관중은 제나라 환공을 도와 제나라를 춘추시대의 첫 패권국가로 만든 재상이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재상이자 출중한 정치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관중의 정치철학은 법가사상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돼 있다.

저자는 그 영향의 범위를 훨씬 더 넓게 잡는다. 이어지는 춘추시대 말기뿐 아니라 전국시대 지식인에게 관중은 가장 모범적인 성공사례였고 그들 또한 제2의 관중이 되기를 바라 마지않았기 때문이다. 실권자를 만나 자신의 사상을 국정에 적용해보는 것이 난세를 살았던 사상가들 열망이었다면 관중이야말로 이상적인 ‘롤모델’이었다. 그 점에서는 비록 사상은 달리했지만 공자 또한 예외가 아니다. 공자 역시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펼치게 해줄 제후를 찾아 천하를 주유한 전력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저자는 관중과 공자에 대한 통념을 교정하려고 한다. 첫째는 공자가 관중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고, 둘째는 공자의 철학이 관중의 정치철학에 대한 오독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

무엇에 대한 오독인가.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던 관중은 민중의 중요성과 가능성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민중이 국가의 경제력과 군사력의 실질적 토대라고 봤기 때문에 관중의 모든 정책은 민중의 힘을 어떻게 유기적으로 조직해내느냐에 모아졌다. 부국강병을 목표로 한 국가 철학자였지만 관중은 자신의 목표가 민중의 자발적인 참여와 복종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봤다. 그러기 위해서 그의 정책은 민중이 삶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추진됐다. ‘목민’이란 그의 발상은 여기서 비롯된다. 목축의 대상을 동물이 아닌 민중으로 설정한 것이 목민이다. 저자에 따르면 “관중의 목민 정책의 핵심은 민중의 자유를 빼앗고 길들이면서도 그들로 하여금 군주를 보호자로 착각하게 만드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목민의 부정적인 측면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관중의 목민 논리는 결과적으론 대성공이었고 정치적 현실주의와 국가주의의 원류가 됐다.

반면 공자는 민중을 소인이라 폄하하며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정치의 성공 여부가 귀족의 도덕성에 달려 있다고 봤다. 민중은 열등한 존재이기 때문에 귀족계층의 도덕적 모범을 따를 뿐이라고 생각했다. 공자 또한 국가의 안정을 위한 세 가지 요소로 경제적 토대와 군사적 토대, 그리고 민중의 신뢰를 들었지만 그에게 경제적 토대와 군사적 토대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았다. 공자가 보기에 민중은 먹을 것이 없어도 군주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공자가 말한 민중은 사실 그만의 백일몽 속에만 존재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자기만의 이상에 너무 치우친 것이라는 해석이다.

흔히 공자의 인(仁)을 ‘보편적 사랑’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너그럽고 관용적인 ‘귀족의 품성’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는 게 저자 생각이다. 결론적으로 공자가 주창한 유학사상은 신분적 위계질서를 긍정한 보수주의 철학에 불과하다는 평가이기도 하다. “공자는 자신이 평생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떠들고 있었던 순진한 사상가였다”는 저자의 결론은 공자와 제자백가에 대한 우리의 통념에 도전장을 내민다. 강신주판 ‘제자백가의 귀환’이 갖는 의의다.  

11.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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