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한국인을 바라보는 책 두 권이 최근에 나왔다. 22명의 한국인이 쓴 <한국학의 즐거움>(휴머니스트, 2011)과 벽안의 한국학자가 쓴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노마드북스, 2011)가 그것이다. 전자는 구입했고 후자는 주문을 넣을 참인데, 소개기사도 찾아서 미리 스크랩해놓는다.   

서울신문(11. 09. 17)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 펴낸 이만열 교수

이 땅에는 많은 이방인들이 부대끼며 살고 있다. 생활 자체를 해결하기 위한 이주민이며, 종교적 신념을 행동으로 옮기는 종교인, 학문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매진하는 학자 등 그 삶의 양식도 다양하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문학의 부활과 교육의 개혁이라고 외치는 이방인이 있다. 이만열 (47·미국명 이매뉴얼 페스트라이시)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최근 낸 책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노마드북스 펴냄)에서도 그의 지론은 또렷이 드러난다



책의 부제는 ‘하버드 박사의 한국 표류기’. 부제 그대로 예일대와 타이완국립대, 도쿄대, 서울대에서 한·중·일 3국의 고전문학을 공부하고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가 한국의 대학 교수로 살면서 느끼고 체험한 것들을 풀어낸, 일종의 한국 사회 비평서다. 그중에서도 교육과 인문학 부분에서 한국과 한국인을 겨냥한 비판과 개선에 대한 주문이 매섭다. 서울신문사 편집국에서 만난 그의 일성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한국인들은 분명히 중국, 일본과는 다른 친화의 사교력을 갖고 있어요. 큰 장점이지요. 미국, 유럽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K팝을 비롯한 한류가 급속하고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현상도 그 연장 선상에 있다고 봅니다.” 한류뿐만 아니라 한국의 문화와 과학 기술은 구석구석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그 우수성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아 아쉽다고 한다. “한국은 전쟁 후 압축성장을 통해 기적과도 같은 지금의 모습과 역량을 일궜지만 인문학적 교육을 소홀히 해 삶의 질과 정신적 가치를 상실했습니다.” 외형의 성장에 매몰된 내적 가치의 소멸은 성장의 크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손실이란 주장이다.

숭산 스님에게 감화돼 한국 선불교에 귀의해 지금은 독일에서 선원을 이끌고 있는 현각 스님과는 예일대 동기.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뒤 한국 문화에 깊숙이 빠져들었다는 점도 두 사람이 갖는 공통점이다. “현각 스님은 한국 불교에 빠졌고, 나는 한국 유교에 젖어 살고 있는 셈이지요. 한국과 한국 문화가 좋아 살고 있는 점은 같지만 한국의 지식인으로 살고 싶다는 점은 현각과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지요.”

한국인 부인과 결혼해 낳은 1남 1녀도 모두 국제학교가 아닌 한국 학교에 보내고 있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아시아의 변방이 아닙니다. 지구촌 곳곳의 사람들이 한국에서 살기 위해, 한국을 배우기 위해 몰려들고 있습니다. ‘다문화 사회’는 멀리 있는 명제가 아니라 당장 부대끼고 해결해야 할 현실의 문제입니다. 한국인들도 더 멀리 보고 세상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아량과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의 ‘한’은 크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더 큰 나라가 돼야지요.” 그런 점에서 한국의 교육은 큰 문제라고 거듭 말한다.

연암 박지원의 소설 10편을 영어로 번역했고 하버드대 박사학위의 주제도 ‘중국의 통속소설이 한국과 일본에 미친 영향’이었다. 한국 문화는 고전, 현대를 가리지 않는 모든 영역에서 뛰어나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그 가치를 잘 모르고, 외국에 알리려 들지도 않는 점이 항상 아쉽단다. “뜨거운 음식을 먹고도 ‘시원하다’는 표현을 쓰고, 친구를 ‘웬수’라 부르는 반어법은 한국 문화의 유연함과 풍요로움을 엿볼 수 있는 큰 단초이지요.” 미래의 학문과 관심 영역이 지금과는 사뭇 다를 것이라는 이 교수. 시대에 머물지 않는 세상의 순환 원리며 통찰력을 키울 수 있는 인문학이야말로 한국의 찬란한 자산과 문화유산을 새롭게 부활시킬 지렛대라고 말한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지요.” (김성호 편집위원)   

한국일보(11. 09. 10)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한국인, 한국문화…

어제 회식에서는 삼겹살과 소주로 허기진 배를 달래고도 남았지만, 아니다 다를까 된장찌개에 공기밥 없이 자리는 끝나지 않았다. 추석 차례상을 물리고 한 상 차린 음식 다 먹고 난 뒤에도 역시 나물 반찬에 밥 한 술 뜨지 않으면 한 끼 못 먹은 게 된다. 이웃 중국이나 일본도 밥을 귀하게 여기는 문화이지만, 그네들은 쌀이 아닌 밀이나 메밀로 만든 면도 아주 즐긴다. 한국인에게 밥은, 특히 새하얀 쌀밥은 말 그대로 은유적 의미 하나 안 보태 '생명'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하다.

<한국학의 즐거움>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책은 우리 문화 속에 자리잡은 한국적인 것에 대한 전문가들의 22가지 스케치를 담고 있다. 한국만의 독특함이라고 해도 좋고 한국인의 생활에 깊게 뿌리 박은 사고방식, 행태라고 해도 좋을 것들에 대한 소묘다. 철학이나 종교, 마음, 사랑을 주제로 풀어놓은 글이 있는가 하면 음식, 건축, 미술 이야기가 있고 과학, 의학, 경제, 역사도 다룬다. '한류'의 본령이라 할 한국 드라마, 영화가 지닌 정체성을 탐구한 글도 있다.

밥 이야기를 좀더 해 보자. 민속학자인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쓴 '한국의 음식'이라는 글에는 1890년대 주막에서 개다리소반을 받아 식사하는 도포와 갓 차림의 남자 사진이 등장한다. 밥상 위에는 밥그릇, 국그릇과 김치 보시기, 간장종지, 장아찌, 나물, 콩자반 등을 담은 접시 등 모두 8개의 그릇이 놓여 있다. 인상적인 것은 밥그릇, 국그릇의 크기다. 밥그릇은 높이가 9㎝, 입의 지름이 거의 13㎝ 정도 되고 거기에 밥을 가득 담았다. 요즘 세 끼 분량쯤 된다. 국그릇은 더 크다. 주 교수에 따르면 임진왜란 피난기인 <쇄미록>에는 전쟁통인데도 불구하고 '한 끼'에 7홉(420g)의 쌀로 밥을 지어먹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조선 사람들이 대식가였다는 것은 선교사 등 외국인의 기록에도 제법 등장한다.

주 교수는 이를 '조선 사회가 절대 빈곤의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먹을 것이 생기면 물불 가리지 않고 먹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정확한 이유를 알기는 힘들지만 조선 사람들은, 늘 먹을 게 모자라 소식(小食) 문화를 정착시킨 에도(江戶) 시대 일본인과는 반대의 길을 걸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한국 종교는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만큼이나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는 쓴 소리로 시작하는 종교학자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의 글도 읽어 볼만하다. '한국 종교는 망해야 산다'고 줄곧 이야기 해온 최 교수이지만 이 글에서는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종교의 순기능과 거기서 느끼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한국이 종교 면에서 정말 특이한 것은 '공간적으로 동서양의 대표 종교가 다 들어와 비슷한 세력으로 각축하고 있고 시간적으로 고대 종교와 현대 종교가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한다. 석가탄신일과 성탄절을 다같이 공휴일로 지정한 나라가 없다는 거다.

한류 열풍의 주역인 드라마, 영화도 물론 한국적인 것을 탐구하는 '한국학'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대중문화평론가 이영미씨는 '안 봐도 줄거리가 뻔하다'는, 그러면 당연히 재미가 없어야 할 한국 드라마가 지닌 매력의 정체를 맛을 잘 몰랐는데 어느 순간 톡 쏘아서 눈물 쏙 빼고 정신 못 차리게 하는 '청양고추'의 맛에 비유했다. 뼈대는 엉성하지만 '거기에 붙어 있는 살들이 매우 맛깔스럽고 풍부하며 매력적'이어서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이성적으로 쉽게 분석되는 뼈대의 취약성에 불만을 터뜨리면서도 각 부분이 선사하는 여러 풍부한 매력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작품을 계속 재미있게 보게 되는 것'이다.

백석의 시를 통해 한국인의 마음 근저에 자리잡은 한(恨)의 정체를 더듬거나(시인 장석주), 근대화 이후 주류가 된 일국사 중심의 역사서술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문명교류사의 관점에서 한국사를 보자(김기봉 경기대 교수)는 문제제기도 있다. 광복 이후 한국식 경제 성장의 특징을 요약해, 공정한 경쟁을 통한 성공이라는 믿음과 그에 대한 분노라고 해석하는 류동민 충남대 교수는 지금 한국 경제는 그 같은 믿음과 분노의 상호작용으로 또 다른 갈림길에 서있다고 지적했다.

'한국학'이라는 학술적인 용어로 포장하긴 했지만 이 책이 앞으로 한국학 논의를 위해 무슨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각각의 글은 비슷한 체제를 따랐다기보다 그냥 필자들의 단상 같은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읽을수록 재미가 난다. '한국인 당신은 누구입니까'에 대한 작은 대답을 이 책이 선사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김범수기자) 

11. 0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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