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가 시작된다고는 하지만 밀린 원고 더미와 씨름해야 하는 처지에선 휴일도 달갑지 않다. 차라리 '휴일은 없다!'고 말하고 싶다. 당장 읽을 책은 아니지만, 이번주에 구입한 도서목록에는 미국의 대한 환상에서 께어나라고 일갈하는 책 두 권도 포함돼 있다. 김광기의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동아시아, 2011)와 크리스 헤지스의 <미국의 굴욕>(아름드리미디어, 2011)이 그것이다. 서평기사를 찾아 스크랩해놓는다. '짝퉁 미국'인 나라의 미래는 좀 다를지 생각해봐야겠다...
경향신문(11. 09. 10) "미국 위기 본질은 승자독식에 의한 신뢰의 위기”
미국 전역에서 도로를 파헤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쉽게 닳는 아스팔트 대신 비용이 적게 드는 자갈을 깔기 위함이다. 재정압박 때문에 낡은 도로를 방치하는 주 정부도 허다하다. 미국의 한 교수는 이를 다루는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석기시대로의 귀환’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석기시대’는 곳곳에서 관찰된다. 뉴욕과 시카고 같은 대도시를 포함해 미국 전역에서는 ‘집에서 닭 키우기’가 유행이다. 경기침체로 주식인 육류를 사서 섭취하기가 어렵게 되자 직접 병아리를 사서 키워 닭고기와 계란을 먹으려 한다는 것이다.
김광기 경북대 교수(48)가 최근 펴낸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동아시아)에서 보여주는 미국의 모습은 생경하다. ‘치부’를 애써 들춰냈다기보다 일상 그 자체가 치부가 돼 버린 미국인들에 대한 세밀화다.
김 교수는 지난 7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 또한 1990년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는 미국을 ‘하나의 전범’으로 생각했다고 했다. “2008년 안식년을 미국에서 보내면서 ‘콩깍지’가 벗겨졌습니다. 미국은 그 전에 알고 있던 것과 완전히 변했다는 것을 느꼈어요.”
물론 2007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몰락’을 말하는 것은 새롭지 않다. 사회학자로서 김 교수가 집중한 것은 경제위기의 통계적·수치적 측면이 아니라 미국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 드러난 쇠퇴의 조짐들이다. 그는 작은 풍경들을 포착해 “고구마 줄기를 뽑아내듯” 그 속내를 읽는 데 집중했다.
2010년 8월 조지아주 애틀랜타 인근의 이스트포인트에서 공공임대주택 신청서를 배부하는 날 3만명의 시민이 몰렸다. 인구가 4만여명인 이 작은 도시에서는 이날 혼잡으로 62명이 다쳤다. 경제위기로 미국에서 2010년 한 해에만 집을 압류당한 사람들이 105만명에 이르면서 유일한 희망으로 공공주택이 떠오른 때문이다. 노숙자 수가 불어나 관리비용이 증가하자 비행기를 태워 다른 주로 보내는 주 정부도 있었다.
책에서 미국의 음울한 풍경은 계속 이어진다. 1972년 이래 처음으로 미국의 수감자가 줄었지만, 범죄가 줄어든 게 아니라 교정비용을 줄이기 위해 재소자들을 조기석방한 때문이었다. 주 경찰들은 공용 신용카드를 주유소에서 받아주지 않는 탓에 연료를 넣지 못해 순찰을 돌지 못한다. 공공학교들은 학생 수 탓이 아니라 운영할 돈이 없어 문을 닫고 있다.
김 교수는 미국의 위기가 단순히 경제적 위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사회적 ‘신뢰의 위기’라는 것이다. “미국에 머물면서 아파트 잔디밭에서 아이들을 놀게 할 수가 없었어요. 온통 개가 쏟아낸 배설물들이 널려 있었죠. 처음 유학왔을 때만 해도 그런 일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뉴햄프셔주에서 개똥이 너무 많으니 유전자를 검사해서 추적하자는 얘기도 나왔다고 해요.” 금융위기를 불러온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자체도 상환을 생각하지 않는 무분별한 대출, ‘가불 문화’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추천서’ 한 장이면 모든 것을 신뢰하던 미국의 분위기도 사라졌다. 미국의 어느 중학교에서는 재정 확충을 위해 학생들이 20달러의 초콜릿을 사면 점수를 올려주겠다고 해 논란을 빚었다. ‘신뢰의 위기’는 고위층부터 일반인들에게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금융위기를 불러온 자들은 회전문인사를 통해 다시 정·재계에 진출하고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고의로 차를 버리거나 불을 지른 뒤 보험금을 청구하고, 렌터카에 기름 대신 물을 채워 반납하기도 한다.
이 신뢰의 위기는 결국 상위 10% 사람들이 미국 전체 수입의 절반을 가져가는 ‘승자독식’ 때문이라는 것이 김 교수의 생각이다. 앞의 얘기로 돌아가면 요즘 미국인들이 총과 닭, 씨앗을 사려고 안달인 까닭은 ‘나 외에 타인의 도움은 없다’는 절박한 인식 때문이다. “건국이념으로 내놓은 자유와 평등, 인권과 정의라는 것들은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우리도 언제까지나 맹목적으로 미국을 따라서는 안됩니다. 미국이 외환위기 때 ‘글로벌 스탠더드’를 내세우며 투명성을 요구했지만, 금융위기를 보면 가장 불투명한 집단이 그들이었죠.” 김 교수는 “있는 그대로의 미국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들을 학자적 양심을 걸고 보여주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황경상기자)
내일신문(11. 09. 10) 감추고 싶어하는 미국에 관한 5가지 불편한 진실
비판적 언론인이자 작가인 저자 크리스 헤지스는 단언한다. 미국은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다고. 프로 스포츠, 연예산업과 유명인 문화, 리얼리티 예능 프로가 전 국민의 눈과 귀를 홀리고 일상을 규정하는 나라, 소수의 지배층이 권력과 돈, 지식과 정보를 독점한 채 자신들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 그것들을 마음대로 조작하고 이용해 먹는 나라라고.
미국은 현재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자 자본주의의 꽃으로 불린다. 크리스 헤지스는 이런 미국에 메스를 들이댄다. 미국의 숨은 치부를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미국이 처한 위기, 나아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처한 위기의 본질을 통찰하고 있다. 그 결과 저자는 "미국은 지금 죽어가고 있다"고 선언한다. 이 파탄의 조짐은 단순히 금융위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정치 경제 문화에서부터 일상과 정신세계에 이르기까지 체제와 삶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본다.
이런 사회에서는 본모습보다 이미지가 더 중요하고, 진실보다 광고와 선전이 더 설득력 있다. 그래서 이런 사회에서는 잡동사니 정보와 유명인의 뒷공론이 지식이 되고, 포르노는 사랑이 되며, 교육은 체제 유지와 권력 세습의 도구가 되고, 심리학은 행복을 파는 돌팔이 과학이 되며, 빚은 경제를 끌어가는 동력이 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현실이 절망스러울수록 더욱 공상에 집착하며 선동과 허풍에 의존해 위로와 안심을 구한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이런 선동은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오락을 제공하면서 독재정치로 나아간다. 오늘날 정부와 기업이 하나로 결탁한 이른바 '법인형 국가' '기업정부'의 결과가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미국이 지적 능력, 도덕성, 교육, 정신, 경제 면에서 돌이킬 수 없는 위기에 빠져들고 있음을 통찰한다. 그리하여 미국이 이런 환상들에서 깨어나 자기 앞에 놓인 엄연한 한계와 맞서지 않으면 끝내 파멸에 이르고 말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한다.(안찬수 기자)
11. 09. 10.
P.S. "상위 10% 사람들이 미국 전체 수입의 절반을 가져가는 ‘승자독식’" 문제와 관련해서는 최근에 나온 대니얼 리그니의 <나쁜 사회>(21세기북스, 2011)도 참고할 만하다. 사회 양극화 문제를 다룬 책으로 "저자 대니얼 리그니는 우리 사회를 부익부 빈익빈의 악순환으로 몰고 가는 ‘마태 효과’(The Matthew Effect)를 모든 사회 분야에 걸쳐 연구한 최초의 학자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경제 분야의 마태 효과에 대한 분석뿐 아니라 정치.과학.교육.문화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마태 효과로 인해 일어나는 양극화 현상을 설명하고, 사회를 ‘나쁘게’ 만드는 마태 효과의 모든 것을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