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회의(303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리링의 <논어, 세번 찢다>(글항아리, 2011)에 대한 독후감을 적었다. 리링의 책은 이중톈의 <백가쟁명>(에버리치홀딩스, 2010)과 함께 이번 여름에 읽은 가장 유익한 책이었다. 실제로 이중텐의 <백가쟁명> 원저는 <논어, 세번 찢다> 이후에 나온 책으로 리쩌허우의 <논어금독>(북로드, 2006)과 함께 리링의 <상가구>도 종종 언급한다. <상가구>도 얼른 번역되면 좋겠다...
기획회의(11. 09. 05) 지식인 공자를 읽다
'공자'를 다시 읽고 있다. 아니 다시 보게 됐다는 말이 더 정확할 듯싶다. 우리에게 ‘공자왈’의 공자만큼 친숙한, 고루할 정도로 친숙한 ‘성인’이 달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다시 읽고, 다시 보게 됐는가. 두 종류의 공자가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논어, 세번 찢다>의 저자 리링의 말이다. “역사적으로 두 종류의 공자가 있다. 하나는 <논어>에 있는, 피가 흐르고 살이 붙어있는, 살아있는 공자이고, 다른 하나는 공자 사당 안에 있는, 빚어지고 조각된, 향불을 피우고 머리를 조아리기 위한 공자이다. 전자는 진짜 공자이고 후자는 가짜 공자이다.” 이러한 일갈에 덧붙여 그는 이렇게 묻는다. “어느 공자가 더 사랑스러운가?”
사랑스러운 공자? ‘공자’하면 자동적으로 ‘성인 공자’를 떠올리게 되는 우리로선 불경스럽게도 들리지만, 한편으론 통쾌한 느낌도 준다(사랑스러운 공자라니!). 새로운 발견의 쾌감이고, 해방의 쾌감이다. 리링의 제안은 물론 우리가 가짜 공자가 아닌 진짜 공자, 살아있는 공자와 대면해보라는 것이다. 그 진짜 공자는 ‘집 잃은 개’라고도 불린 불우한 지식인으로서의 공자다.
우리 번역본에서 흔히 ‘상갓집 개’라고 옮겨진 ‘상가구(喪家狗)’를 리링은 ‘집 잃은 개’로 풀이하는데, 이 말의 출처는 사마천의 <사기> 중 ‘공자세가’다. 공자가 정나라에 갔을 때 그의 행색을 보고 한 정나라 사람이 공자의 제자 자공에게 몹시 지친 것이 마치 집을 잃은 개와 같다고 말한다. 자공이 이 말을 공자에게 전하니 공자는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외모야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집 잃은 개 비슷하다고 말한 것은 맞구나, 정말 맞구나!” 춘추시대라는 난세를 살면서 이상을 펴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말년까지 여러 나라를 주유했지만 공자는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나마 성공한 건 많은 제자를 가르친 것이며 그들로부터 깊이 존경받은 일이 그의 생애를 가치있는 것으로 조명해준다. 요컨대 진짜 공자는 “성인이 아니라 민간의 학자이자 사립학교의 선생님이었을 뿐이다.” ‘집 잃은 개’라고 불려도 자기 처지가 정말로 그렇다고 맞장구친 이가 바로 공자였다.
베이징대 교수로 고고학, 고문자학, 고문헌학의 대가로 통한다는 리링은 그런 공자의 모습을 재조명하기 위해 <상가구>란 책을 펴내는데 원래는 2004-2005년에 베이징대에서 <논어>를 통독한 수업 강의록이다(<상가구>도 ‘리링 저작선’으로 번역돼 나온다고 한다). 하지만 책이 나오자마자 제목이 주는 인상 때문에 리링은 원색적인 비난과 저열한 인신공격에 시달린다. ‘성인’을 모욕했다는 게 주된 이유다. 그가 <논어, 세번 찢다>를 연이어 펴낸 건 그런 비난에 대응하여 무엇이 오해인가를 분명히 밝히고 자신의 주장을 더 확고하게 뒷받침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의도가 없을 리 없다. “나의 연구는 지난 20여 년 동안 중국 사회에 불어닥친 복고의 광풍을, 거의 미친 듯이 보이는 이 기이한 현상을 겨냥한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논어>를 이해하려면 공자가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한다는 지침을 <논어, 세번 찢다>에도 적용해보자면, 이 ‘복고의 광풍’은 왜 문제가 되는가.
리링이 ‘지난 20여년’이라고 지칭한 건 대략 1980년대 말부터다. 이후에 지금까지 중국에서 크게 성행하고 있다는 공자 존숭 현상은 리링으로선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기이한 현상’이다. 상식과 이치에 어긋난다고 판단해서다. 무엇이 상식인가. 일단 공자가 계급사회의 지식인이었다는 점이다. 중국의 학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논어>에서 ‘사람 인(人)’과 ‘백성 민(民)’이 한 구절에서 대구를 이룰 때 ‘사람’은 인텔리(군자)를 가리키고 ‘백성’은 대중(소인)을 뜻한다. 공자의 관심은 오직 군자와 관련이 있을 뿐이며 소인과는 무관했다. 더불어 오늘날까지도 대중이 듣고 싶어하는 건 마르크스가 ‘인민의 아편’이라고 비판한 종교이지만 공자는 도덕적인 가르침만 남겼을 뿐 종교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따라서 리링이 보기에, 공자에 대한 대중적 숭배는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논어>의 한 대목을 리링을 따라 읽어본다. ‘자로’편에서 ‘화이부동’이란 유명한 문구가 나오는 대목이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군자는 조화를 추구하되 동일함을 추구하지 않으며, 소인은 동일함을 추구하되 조화를 추구하지 않는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신영복의 <강의>(돌베개)에 보면 이 구절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은 “군자는 화목하되 부화뇌동하지 아니하며 소인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화목하지 못한다”이다. 신영복은 그런 해석이 ‘화동론’의 의미를 명료하게 드러내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화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고 동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적인 가치만을 용납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새로 해석한다. 이런 근거에서 ‘군자화이부동’은 군자는 자기와 타자의 차이를 인정하여 타자를 지배하거나 자기와 동일한 것으로 흡수하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소인동이불화’는 소인은 타자를 용납하지 않으며 지배하고 흡수하여 동화한다는 의미로 읽는 게 옳다는 견해를 밝힌다. 종합하면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란 뜻이 된다.
반면에 리링은 ‘화’를 상류사회에서의 ‘조화’란 뜻으로 읽으며 이것은 구별의 기초 위에서 추구된다고 말한다. 구별이란 차이이고 차등이다. 조화란 고양이와 쥐처럼 서로 다른 것을 한군데 섞어놓을 수는 있다는 뜻이다. 그에 비하여 ‘동’은 하층사회에서 부르짖는 ‘평등’으로서의 ‘동’이다. ‘동’이란 남녀가 같고, 군관과 사병이 같다는 등의 사회적 평등을 의미한다. 군자는 이러한 동을 말하지 않으며, 묵자식의 ‘같음을 숭상함’은 공자가 보기에 소인의 도이다. 공자는 인(仁)을 말하지만 그 또한 구별과 차등에 근거한 사랑으로 평등이나 박애와는 거리가 있다는 게 리링의 주장이다. 요점은 ‘공자왈’의 신화를 걷어내자는 것이다. 일종의 ‘공자 바로 보기’다.
그런 점에서 리링은 1919년 중국의 5.4운동 정신을 계승한다. 당시 ‘공자의 거점을 타도하자’란 구호를 그는 ‘전통의 단절’에 대한 요구로 이해하지 않는다. 실제 타도대상은 ‘공자의 거점(孔家店)’이 아니라 ‘주가의 거점(朱家店)’이었고, 이는 공자가 성전에서 내려와 제자백가로 되돌아가게끔 했다. 난세를 살았던 한 지식인이 공자 본래의 모습이며, 리링은 “내가 그를 최대한 존중하는 방법은 그를 지식인으로 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성인 공자’보다는 그가 제시한 ‘지식인 공자’가 훨씬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우리에게 공자는 어느 쪽인가.
11. 09.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