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권의 계간지'라고 제목을 붙이려다가 밋밋한 듯싶어서 좀 세게 고쳤다. 그래도 실상은 <문화과학>과 <실천문학> 가을호, 두 권의 계간지에 대한 리뷰기사다. 기자들은 기사거리가 없을 때 이런 기사를 쓰는지도 모르겠지만, 정보로서 유익하다.
경향신문(11. 09. 06) 금융위기는 헤게모니 싸움서 비롯…자기통치의 ‘코뮌 공동체’가 해결책
‘혁명의 시기’라는 것이 따로 있을까. 세계체제론적 관점에서 보면 역사상 모든 혁명과 반혁명은 전 지구적 헤게모니(패권) 국가가 몰락하고 새로운 질서 정립을 위한 다툼이 시작될 때 벌어졌다. 세계가 영국이 주도하는 질서 체제로 전환할 때 프랑스혁명(1789)이 발생했다. 미국이 전 지구적 헤게모니 국가로 부상하던 시기에 러시아혁명(1917)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2007년 시작된 금융위기로 미국 헤게모니의 몰락이 점쳐지는 지금은 어떨까. 계간 ‘문화/과학’ 가을호는 ‘혁명의 계보학’을 특집으로 다루며 현 상황도 비슷하다고 진단한다. ‘문화/과학’ 편집위원회는 총론에서 “금융위기는 주기적 경기침체의 수준이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구조적 차원에서 변혁되는 지구적 헤게모니 이행의 문제와 연관돼 있다”고 말한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체제론자 조반니 아리기의 주장이 이해를 돕는다. 그는 19세기의 패권국은 영국, 20세기의 패권국은 미국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패권 국가의 부침을 보면 일반적인 구조가 보인다. 첫번째 단계에서는 헤게모니 국가로 금융자본이 집중되고 기축통화의 변화가 나타난다. 헤게모니 국가는 두번째 단계에서 세계 실물경제를 지배하며 이윤을 뽑아낸다. 세번째 단계에서는 실물경제가 침체되는 대신 금융부문이 폭발적으로 팽창한 후 급격히 쇠락한다. 자연스레 오늘날 미국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이 시대 가장 뼈아픈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은 하층계급이다. 헤게모니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 패권 국가는 이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에 골몰하면서 착취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미국 중심의 국제통화기금(IMF)이 신자유주의를 전 세계에 강요한 것이 대표적이다. 더구나 미국이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긴축재정으로 선회한 이상 주요 경제국들 역시 따라갈 수밖에 없어 복지는 무너지고 사회적 양극화는 심화된다. 이미 이스라엘, 칠레, 영국 등에서 물가폭등과 긴축재정, 청년실업 등의 문제로 시위가 빈발하고 있다.
1907년 러시아 노동자도서관. ‘니조프킨 도서관’은 노동자들이 자기 수입의 2%를 내고 자산을 정치적 대의명분에 따라 공유하는 ‘공동금고’를 운영했다.
변혁은 어디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러시아혁명을 분석한 이득재 대구가톨릭대 교수와 라틴아메리카 혁명을 분석한 안태환 부산외대 HK연구교수의 논문을 살펴보면 공통점이 떠오른다. 그 핵심은 자기통치를 핵심으로 하는 ‘코뮌적 공동체’를 구성하자는 것이다.
이 교수는 “노조도, 혁명적인 당도 존재하지 않던 러시아에서 1905년의 혁명이 분출될 수 있었던 것은 노동자들의 코뮌 경험 덕택”이라고 말한다. 러시아에서는 이미 1860년대부터 각 지역 농장에 코뮌 공동체가 존재했다. 여기에 1905년 혁명 훨씬 이전부터 자기계몽의 열망을 품은 노동자들이 일요학교, 민중의 집, 협동조합을 설립해 활동하면서 주체적인 능력을 키웠다. 이 교수는 “1905년 혁명은 반세기 이상 준비돼온 것”이라고 말한다.
안태환 교수는 1999년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집권한 ‘볼리바르 혁명’을 “좌파 지식을 가진 지식인, 정치 세력화된 노조, 기존의 사회주의 정당이 선도한 혁명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1989년 베네수엘라에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반대해 일어난 ‘카라카소’ 대시위 이후 이미 ‘주민평의회’ 등 공동체가 조직돼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 베네수엘라에는 5만여개의 마을 중 1만5000여곳에 주민평의회가 조직돼 있다. 이들은 차베스의 정책을 자유롭게 논쟁하고 비판하면서 직접 항의도 한다. 이러한 자기통치적 주민평의회와 조합운동이 20세기 현실사회주의가 지향하는 생산수단의 ‘전면적 국유화’보다는 ‘사회적 소유’를 점진적으로 늘려가는 방식의 혁명을 일궈냈다는 것이다. 결국 이들은 “혁명이 단순한 국가권력의 쟁취에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말하는 혁명은 세계를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상상하고 창안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황경상 기자)
경향신문(11. 09. 05) 하버마스·푸코의 빈자리, 지 젝·가라타니가 채웠다
2000년대 한국사회에서 풍미한 사상가는 누구일까. 맨 앞줄에 슬라보예 지젝과 가라타니 고진이 자리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2000년대 이후 지젝의 저서는 23권, 가라타니의 저서는 12권이 번역됐다. 위르겐 하버마스와 미셸 푸코의 인기는 다소 떨어졌다. 하버마스와 푸코의 저서는 2000년대 이전에는 각각 16권, 11권이 번역됐으나 2000년대 이후에는 10권, 7권이 소개됐다. 이 밖에 자크 데리다의 저서는 2000년대 이전 7권, 2000년대 이후 8권으로 꾸준히 소개됐다. 조르조 아감벤과 알랭 바디우, 자크 랑시에르는 2008년 이후에만 7~8종의 번역서가 집중적으로 나와 한국 지식계에서 ‘떠오르는 스타’임이 증명됐다.
이 같은 현상은 천정환 성균관대 교수(국문학)가 계간 ‘실천문학’ 가을호에 기고한 ‘포스트-근대문학의 시대, 또는 연장전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소개됐다. 천 교수는 한국 지식계의 지형을 해외 사상가의 번역서 현황으로 살펴본 뒤 이 중 한국문학과 관련, 가장 의미 있는 지점으로 가라타니 고진의 저서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한 다기한 반응을 살펴보았다.
천 교수는 “한국 문학문화의 주체들이 ‘거부’를 포함해서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명제를 어떻게 수용했는가 하는데 2000년대 한국문학의 풍경 전반이 담겨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당초 ‘종언’의 의미와 달리 문학활동이나 비평이 권력의 억압이나 자본의 침탈로부터 인간을 방어하는 데 바쳐지지 않고 ‘문학 자체’를 지키는 데 소용된 전도 현상은 ‘한국 근대문학의 죽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고 진단했다.
<근대문학의 종언>은 2006년 번역, 출간된 후 사상서로는 특이하게 1만부가 판매됐다. 천 교수는 “1990년대 이후 탈정치화된 문학에 대한 분노가 이 책에 대한 관심으로 나타났다”고 해석했다. 아울러 이 책이 “추상적이고 거시적인 문학사 논의”였음에도 실제 논쟁은 거의 없었고, “문단시스템에 깊이 연루될수록 가라타니의 주장에 생래적 반감을 보인 반면, 현존 문학제도에 대해 비판적일수록 종언 테제의 유효성을 인정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천 교수는 “종언이란 명제를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문학판의 기득권자들, 오늘날 문단문학 재생산의 주체는 자본의 메커니즘에 철저히 종속돼 있거나 그 자체로 자본이 되어 있다”면서 “문학의 정치적 기능을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데 종언론이 쓰여야 함에도 과거로부터 유지돼온 문단권력을 유지하는 데 바쳐졌다”고 말했다.
한편 김정한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는 같은 계간지에 실린 ‘슬라보예 지젝, 사유의 반란’이란 글에서 한국사회에서 지젝 열풍의 원인을 소개했다. 김 교수는 “영화를 독특하게 분석하는 대중문화 비평가로 알려지기 시작한 지젝은 마르크스주의의 개조와 혁신이라는 알튀세르의 문제 설정을 계승했다”면서 “최근 한국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철학자인 발리바르, 라클라우, 바디우, 랑시에르 역시 알튀세르 학파의 일원이었다는 점에서 일관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지젝은 세계 자본주의의 근본적 변화의 전망이 불투명한 시대에 희망과 대안을 찾는 급진적인 흐름을 유지,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며 “2008년 촛불시위는 타인의 ‘믿음에 대한 믿음’(이데올로기)을 해체하라는 지젝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젝의 주장이 점점 더 한 탁월한 철학자의 ‘원맨쇼’로 비춰지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그의 프로이트마르크스주의가 어떻게 현실정치와 만날 수 있는가에 대한 실천적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한윤정 기자)
11. 09. 06.
P.S. 혁명을 주제로 한 책을 몇권 더 골라봤다. 이중 <혁명의 현실성>의 원제는 <혁명의 리허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