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더위가 한창이지만(하도 비가 많이 내려 올여름은 오히려 '쉽게' 지나간 듯싶다) 어느새 가을을 문턱에 두고 있다. 당장 내일부터 개강인 학교들도 있고 개인적으로도 2학기 강의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적어도 9월엔 강사생활을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강의를 맡게 됐다). 발을 앞으로 내딛기가 저어되는 이유인데, 그럼에도 시간은 무자비하게 우리를 끌고 갈 것이다. 그런 와중에 책은 또 언제 읽으랴 싶지만, 둘러보면 읽고 싶은 책, 읽어야 하는 책 수두룩이다. 일단은 안면이나 익혀두도록 한다...  

 

1. 문학  

정과리 교수가 추천한 책은 샤리아르 만다니푸르의 <이란의 검열과 사랑 이야기>(민음사, 2011)이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이란 작가의 작품이고, 그런 '희귀성'이 추천 이유다. "이 작품은 우선은 희귀성 때문에 선정되었다. 이란의 현대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새로운 경험이다. 그리고 이것은 세계문학에 대한 인식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리키는 상징적 지표 중의 하나이다. 이제 우리는 영·불·독·서의 문학만을 세계문학이라 하지 않는다. 세계의 모든 곳에서 생산된 문학이 세계문학이다." 개인적으론 이란문학에 대한 관심에서보다는 "쿤데라, 칼비노, 요사의 감수성을 지닌" 작가라는 홍보문구 때문에 구해놓은 책이다.    

한국문학을 덧붙이자면 최근에 나온 시집 몇 권을 얹고 싶다. 이장욱의 <생년월일>(창비, 2011), 심보선의 <눈앞에 없는 사람>(문학과지성사, 2011), 그리고 성미정의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문학동네, 2011) 등이다. 성미정 시인은 오래전 데뷔시집 <대머리와의 사랑>(세계사, 1997)을 읽은 기억이 있다. 어느새 십수 년 전이군...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추천한 역사분야의 책은 니얼 퍼거슨의 <시빌라이제이션>(21세기북스, 2011)이다. "이 책은 2011년 3월에 출간되었고, 저자의 명성으로 인하여 국내에서 바로 번역 출판되었다. 2011년의 시점은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힘이 다시 서양에 필적한 만한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는 때이다. 결론에서 저자는 현재의 서양의 위기는 외부의 위협이 아닌 서양 문명 내부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보다 서양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들에게 충실하고 올바른 역사교육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저자가 ‘역사교육’을 강조한 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라고 추천 이유를 적었다. '역사교육'에 대한 강조가 눈길을 끄는데, 그런 의미에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러셀의 시선으로 세계사를 즐기다>(푸른역사, 2011)이다. 역사학에선 아마추어를 자임하는 철학자 러셀의 '쾌락으로서의 역사 읽기'다. 미술사가 곰브리치의 <곰브리치 세계사>(비룡소, 2010)도 아이들한테 권하기 전에 미리 한번 읽어볼 만하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 추천작은 레베카 라인하르트의 <마음이 아픈데 왜 철학자를 만날까>(예문, 2011)이다. 그런 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상담심리학에 견주어) '상담철학'에 해당하는 책이다. "심리치료를 하는 심리학자들은 마음이 아픈 환자들을 상담한다. 대화를 통해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대화의 수준을 넘어서는 정신이상을 보이면 상담이 불가능해진다. 약물치료를 위해서는 정신과 의사를 찾는다. 대화도 가능하고 약물치료를 필요로 하지도 않지만 마음이 답답하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것인지 모르겠다면 철학자를 찾아갈 필요가 있다. 철학 상담가는 ‘보편적 교양인’이기 때문이다." 근대철학의 본산 독일에서는 이 방면으로도 앞서가는 듯하고 저자의 다른 책으론 <방황의 기술>(웅진지식하우스, 2011)도 연이어 나왔다. 제목으로는 카트린 파시히와 알렉스 숄츠의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여행의 기술>(김영사, 2011)과도 잘 맞을 듯싶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기술이란 게 길 잃고 헤매는 기술, 곧 방황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4. 정치/사회 

(중간에 날려먹고 다시 쓴다.) 강정인 교수가 고른 책은 시마다 히로미의 <사람은 홀로 죽는다>(미래의창, 2011). 무연사회와 고령화사회의 문제점을 짚은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유연사회에 살든 무연사회에 살든, ‘사람은 홀로 죽는다’는 실존적 조건을 지적하고, 또한 기독교, 불교 등 무연사를 기원하는 신앙을 예시하면서, 무연사를 오히려 담담하게 받아들일 것을 권한다." 고령화사회를 다룬 책으론 테드 피시먼의 <회색 쇼크>(부키, 2011)와 조지 매그너스의 <고령화시대의 경제학>(부키, 2011)도 같이 읽어볼 만하다.    

5. 경제/경영 

박원암 교수가 고른 책은 마이클 킨슬리의 <빌 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이콘, 2011)다. '창조적 자본주의'란 말 자체가 빌 게이츠의 고안인데, "그는 2008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연설에서 새로운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창조적 자본주의’를 제안한 바 있다. ‘창조적 자본주의’란 정부, 기업, 비영리단체가 협력하여 시장의 역할을 확대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이 불평등을 완화하면서 이익을 창출하거나 사회적 인정을 얻을 수 있는 방식을 의미한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세운 재단에 3,000억 달러 이상을 기부했다. 이 책은 바로 그가 제안한 ‘창조적 자본주의’에 대한 세계적인 유명 경제학자들과 저널리스트들의 블로그 토론을 편집한 책이다." 그 '착한 자본주의'가 얼마나 가능한 것인지는 두고볼 일이다. 자본주의 '혁신'과 '재고'를 주제로 한 책으론 아나톨리 칼레츠키의 <자본주의 4.0>(컬처앤스토리, 2011), 로진 부크홀츠의 <자본주의를 다시 생각한다>(21세기북스, 2011) 등도 관심권에 올려놓음직하다.   

6. 과학 

장경애 동아사이언스 실장이 추천한 책은 스테판 하딩의 <지구의 노래>(현암사, 2011)다. "이 책에서는 제임스 러브록과 같이 가이아 이론을 연구한 저자 스테판 하딩의 가이아 이론을 만날 수 있다. 저자는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것도 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기후가 생물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생물도 기후에 영향을 끼치고, 생물이 환경에 적응하는 수동적 존재일 수도 있지만 환경을 변화시키는 능동적 존재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지구상의 모든 것이 연결돼 있고 순환 구조를 갖는다는 것이다." 가이아론의 종합판으로 읽어도 되겠다.  

 

개인적으론 <사회생물학 대논쟁>(이음, 2011)도 주문해놓은 책이다.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 개정판 번역이 올해 나온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이 논쟁은 사후 결과이지만 '예비'로 미리 읽어봄직하다. 윌슨의 또다른 공적은 생명에 대한 사랑으로서 바이필이라를 제창한 점인데, 생각난 김에 <바이오필리아>(사이언스북스, 2010)도 예전에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올려놓았지만 한번 더 적는다. 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의 <달팽이 안단테>(돌베개, 2011)란 책이 눈에 띄어서인데, 20년 넘게 투병해온 저자가 1년간 달팽이를 관찰하며 쓴 것이다. '<바이오필리아>에 바친다'란 헌사가 붙어 있는데, 에드워드 윌슨의 추천사는 한마디다. "아름답다."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고른 책은 디자인에 관한 것으로 김선미 외 2인이 쓴 <친절한 북유럽>(아트북스, 2011)이다. "세 명의 지은이들은 북유럽이 낳은 아름다운 디자인 제품만 소개하기보다는 그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 흐름을 찾아내려 한다." 북유럽 디자인을 다룬 책으론 <처음 만나는 북유럽 인테리어>(아우름, 2011), <북유럽 디자인>(시공아트, 2011)도 눈에 띈다. <북유럽 디자인>은 글자가 얼마 없어서 싱겁다고 생각한 책이지만 디자인 독자라면 흥미롭게 읽어볼 수 있을 듯싶다.  

 

덧붙여, 요즘은 영화의 소재로도 종종 등장하는 모양인데, 북유럽 신화도 챙겨둠직하다. <안인희의 북유럽신화>(전3권, 웅진지식하우스, 2011가 현재로선 종합판 같다.  

8. 교양  

철학자 탁석산이 고른 책은 로버트 단턴의 <책의 미래>(교보문고, 2011)다. 이미 서평에서 한번 다룬 책이라 내겐 '과거'로 느껴지는 책. "이 책의 저자 로버트 단턴은 종이책의 가치를 좀 더 소중히 여긴다는 점에서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구글을 예로 들면서 전자책이 책의 모습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렇다면 어떤 형태로 나아가야 하는가? 한 마디로 하자면, 디지털화와 민주화이다. 저자는 모든 책의 디지털화에 동의한다. 물론 디지털화가 종이책의 고유 가치를 그대로 지킬 수는 없을지라도 많은 장점을 갖고 있기에 동의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민주화라고 말한다." '교양'이 아니라 '역사' 범주로 들어가겠지만, 단턴의 책 이야기 혹은 책의 문화사는 <로버트 단턴의 문화사 읽기>(길, 2008), <책과 혁명>(길, 2003)에서 더 읽어볼 수 있다.   

9. 실용

손수호 국민일보 논설위원이 고른 실용서는 박종평의 <그는 어떻게 이순신이 되었나>(스타북스, 2011)이다. "여기 출판인 박종평이 새로운 이순신 연구에 도전했다. 지난해 <이순신, 꿈속을 걸어나오다> 이후 1년 만에 두 권의 책을 냈는데, 이은상과 김훈이 문학적 장치를 활용했다면 박종평은 체세론 혹은 실용적 관점에서 들여다봤다. 코드별로 동서고금 위인의 삶을 분석한 뒤 <난중일기>, <임진장초> 등 이순신의 기록과 비교하는 형식이다." 개인적으론 아직 <난중일기>를 읽지 않았는데, 작년에 완결판이라고 나온 노승석 번역의 <난중일기>(민음사, 2010)를 조만간 구해보고 싶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기 조선사에 대해 최근에 관심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10. 아렌트 

내 맘대로 고르는 주제는 아렌트이다. 최근에 사이먼 스위프트의 <스토리텔링 한나 아렌트>(앨피, 2010)란 흥미로운 책이 출간됐기 때문인데, 아렌트의 중요성에 대해서 새로운 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개인적으론 아렌트에 대한 글도 쓸 일이 있어서 아렌트의 주저들 외에도 엘리자베스 영 브루엘(브륄)의 <아렌트 읽기>(산책자, 2011), <한나 아렌트 전기>(인간사랑, 2007) 등을 두루 살펴보려 한다. 막상 그럴 시간이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11. 08. 28.  

P.S. '9월의 읽을 만한 고전'은 주자의 <논어집주>다. <논어> 번역의 상당수가 <논어집주>를 참고하거나 번역에 포함하고 있어서 <논어>와 분리할 수도 없는 책인데, 그래도 굳이 <논어집주>라고 한 것은 박성규 번역으로 <대역 논어집주>(소나무, 2011)가 새로 나왔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론 셩백효 역주본(전통문화연구회)과 박현순 역주본(한길사)을 아직 갖고 있지 않아서 박성규본을 최영갑 번역의 <논어1,2>(펭귄클래식코리아, 2009)와 같이 읽어보려고 한다. 제목은 <논어>이지만 이 역시 <논어집주>를 옮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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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11-08-29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엘피에서 <한나아렌트>가 나왔네요. 전 <질 들뢰즈>가 먼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네요. 반가운 소식 감사합니다.^^

로쟈 2011-08-30 08:28   좋아요 0 | URL
들뢰즈도 타이틀이 있었나요? 그래도 안 끊어지고 계속 나오는 시리즈여서 다행입니다...

2011-09-02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03 0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