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

북매니아들에겐 대단할 것도 없는 표어이지만, “내가 읽은 책이 나를 만든다”는 걸 강력하게 입증하는 책이 출간됐다. '세계 최고의 북맨(bookman)'이라는 릭 게코스키의 <게코스키의 독서편력>(뮤진트리, 2011). 저자의 이름을 제목에 넣을 만큼 지명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움베르토 에코나 장정일이라면 모를까) 여하튼 전작 <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르네상스, 2007)를 기억하고 있는지라 반가운 마음에 바로 주문을 넣었다.  

 

'독서편력'이라고 번역됐지만 원저의 부제는 '독서회고록(Bibliomemoir)'이고, 이건 저자가 ‘거의’ 만든 용어이자 장르라 한다. 마치 '독서일기'란 말이 장정일이 '거의' 만든 용어이자 장르인 것처럼. 전체적으론 아홉 번째 책이지만 장정일 독서일기 '시즌2'의 두번째 책에 해당하는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2>(마티, 2011)도 최근에 나왔다. 그러고 보니 딱 1년 터울이다.  

 

'책을 파고들수록 현실로 돌아온다'고 서문에 적었지만, '사회적 독서' 못지않게 '독서 쾌락론'에도 다시 눈길이 가는 듯싶다. 그래서 제사는 "독서는 몰각과 자각, 이 양켠 모두에서 쾌락을 느낄 수 있습니다"라고 적었다. '자각의 독서'에 방점이 가 있는 듯하지만, '몰각의 독서'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게 눈에 띈다. '몰각의 독서'란 '독서를 위한 독서', 순수한 쾌락적 독서를 가리키겠다.  

 

다시 게코스키로 돌아오면, <게코스키의 독서편력>은 제목에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세계적인 희귀본 서적상이자 장서가, 독서광으로 이름 높은 릭 게코스키의 ‘내 인생의 책들’. 게코스키는 삶의 각 단계에서 자신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사적인 도서 목록을 소개한다." 원제에는 왜 '개'가 들어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개 같은 내 인생'이란 뜻도 함축하고 있는 것인지?   

<알을 품는 호튼> <성적 변칙과 도착> <호밀밭의 파수꾼> <포효> <황무지> <명상록> <예이츠 시집> <교양과 무질서> <철학적 탐구> <거세된 여자> <서머힐> <마틸다> <꿈의 해석> <양들의 침묵> 등이 그의 인생을 만든 책 목록이다. 절반 가량은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책인 듯싶다. 그중 <명상록>은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 아니라 데카르트의 <성찰>을 옮긴 것이다.   

관심을 끄는 책은 마그누스 히르슈펠트의 <성적 변칙과 도착>, 톰 울프의 <전기 쿨에이드 산성 실험>, 저메인 그리어의 <거세된 여자>, 애나 게코스키의 <기계적인 살인: 1950년 이후 영국의 연쇄살인범> 등이다. 다른 이의 독서편력에서 우리가 얻는 것 중의 하나는 새로운 관심도서의 이런 목록이니 나는 나대로 '빌릴 책, 살 책, 버릴 책'의 목록을 작성해봐야겠다... 

11. 08.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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