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의 정치학'이나 '제국주의'나 모두 올드해보이는 타이틀이지만,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지금도 시리아에서는 정부군이 시민을 학살하고 있다잖은가). 영어권 좌파의 대명사격인 촘스키와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신작이 이 두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학살의 정치학>(인간사랑, 2011)은 원저가 먼슬리리뷰출판사에서 나온 것으로 에드워드 허먼과 데이비드 페터슨이 지은 책에 촘스키가 서문을 붙였다. 물론 '촘스키 정신'에 충실해 보이는 책이기에 그의 이름을 간판으로 걸어도 어색하지 않다. 캘리니코스의 <제국주의와 국제 정치경제>(책갈피, 2011)는 '제국주의 교과서' 같은 책이다. '이론'과 '역사' 두 파트로 돼 있다. 2009년에 나온 책이니까 마르크스주의적 제국주의론의 결정판으로 읽어볼 만하다. 두 책에 대한 소개기사를 찾아서 옮겨놓는다.
경향신문(11. 08. 06) 미국이 저지른 학살과 그 하수인 언론
국제법 전문가인 리처드 포크는 ‘개입’이란 미시시피 강과 같다고 했다. 둘 다 북에서 시작해 남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 강대국, 특히 미국이 각국에서 벌인 자신의 침략과 학살행위를 어떻게 은폐·축소하고, 적이 저지른 동일한 행위는 어떻게 왜곡·과장했는지를 까발린다. 나아가 이런 불순한 의도를 전파하는 데 “하수인” 노릇을 한 언론을 정조준한다.
이라크, 다르푸르,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 코소보, 이스라엘, 르완다…. 세계 곳곳의 학살 현장들을 “건설적인 학살(미국이 자행하거나 자신의 이익에 즉각적 도움이 되는 것)” “자비로운 학살(미국의 동맹이나 종속국이 수행한 것)” “사악하고 가공할 만한 학살(미국의 적대국이 저지른 것)”로 구분한다. 미국이 대학살극들의 중요하고도 유일한 “촉발자이자 집행자”임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미국은 1945년부터 2009년 사이 적어도 29개국에서 “극도로 심각한” 군사적 개입을 실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자들이 보기에 미국은 공격 대상을 악의 화신으로 만들고는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국제법상 “예외주의”를 설파하며 개입권 남용의 결정체인 “보호책임”을 대중에게 주입했다. 이 같은 정책을 만드는 소위 엘리트들은 뇌물과 위협, 경제제재, 테러, 침공, 점령을 일삼아왔다. 책은 이들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대상으로 뉴스 미디어를 꼬집는다.
일례로 뉴욕타임스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2003년 3월21일까지 이라크를 다룬 70편의 사설에서 ‘유엔헌장’이나 ‘국제법’이란 단어를 사용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분석이 있다. 이 신문은 또 계획된 침략행위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맹렬하게 비난하는 평론가들만 환영했다고 한다. 저자들은 언론이 여전히 소유주와 광고주의 이해관계에 따라 의제 및 사실을 왜곡할 수밖에 없는 숙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노암 촘스키는 서문에서 이 책으로 “참담”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냉전이 종식되자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시대가 열렸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법정을 꾸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을 처벌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는 침묵하는 게 저자들이 말하는 “학살의 정치학”이다. 간결하면서도 호소력이 있다.(고영득 기자)
레디앙(11. 07. 31) "쓰러뜨리려면 먼저 알아야"
지난 10년 동안 미국이 추진한 세계 정책들을 보면, 우리가 새로운 제국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옳은 듯하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사실인가? 또, ‘제국주의’란 과연 무엇인가? 고대 로마제국이나 오스만제국, 신대륙을 정복한 스페인제국 등과 오늘날의 제국주의는 어떻게 다른가?
현재의 세계를 제국으로 봐야 하는가 제국주의로 봐야 하는가? 그 차이는 무엇인가? 냉전의 해체와 중국의 부상은 국제 정치경제 질서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 이제 미국의 슈퍼파워는 끝나고 21세기는 중국의 세기가 될 것인가? …
이런 많은 물음에 대해 『제국주의와 국제 정치경제』(알렉스 캘리니코스 지음, 천경록 옮김, 책갈피, 20000원)의 저자는 대답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제국과 제국주의에 대한 이론들을 두루 평가하고 자신의 제국주의론을 바탕으로 제국주의의 역사를 돌아보고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오늘날의 중요한 정치적ㆍ지적 논쟁에 개입한다.
1부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 즈음에 레닌ㆍ룩셈부르크ㆍ부하린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자유주의 경제학자 J. A. 홉슨이 발전시킨 고전적 제국주의 이론들을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또, 자본주의라는 경제 체제와 국제적인 국가 체제 사이의 관계를 분석한 이론을 개괄하고, 오늘날 제국과 제국주의 문제를 다룬 다른 이론가들(안토니오 네그리, 데이비드 하비, 조반니 아리기, 엘런 메익신스 우드 등)을 비교ㆍ분석하면서 독자적인 이론을 전개한다.
2부에서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부터 오늘날의 경제적ㆍ지정학적 경쟁의 구체적 패턴, 즉 미국이 쇠퇴하고 중국이 성장하는 현재의 상황까지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의 역사를 추적한다. 캘리니코스는 또 다른 유명한 마르크스주의 석학 데이비드 하비와 비슷하게 오늘날의 제국주의, 즉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의 핵심 특징을 경제적 경쟁과 지정학적 경쟁의 결합으로 파악하면서, 이런 관점은 다음과 같은 장점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 역사적 개방성, 즉 서로 다른 제국주의 형태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유연한 분석틀을 제시한다. 둘째, 경제환원론을 피할 수 있다. 즉, 구체적 상황에서 경제적 결정 요인과 지정학적 결정 요인이 동시에 작용한다고 가정하면 국가 정책의 형성은 다소간 불확정적인 것이 되고 그러면 이데올로기 같은 다른 요인들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셋째, 서로 다른 경쟁 형태들 간의 상호 관계를 초점 삼아 제국주의를 분석함으로써, 20세기 초에 제국주의론이 등장한 원래의 문제의식에 주의를 환기시킨다는 점이다. 즉, 20세기 중후반 이후 주로 강대국 대 약소국 관계론으로 전락해 버린 협소한 제3세계주의식 관점을 벗어나서 자본주의 구조 변화로 말미암은 강대국 간 경쟁 형태 변화라는 원래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제국주의의 이론과 역사, 현실을 조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끝 부분에서 캘리니코스는 제국주의가 결코 죽지 않았으며 “제국을 쓰러뜨리려면 제국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르크스주의를 행동의 지침, 사회 변혁의 무기로 이해하는 실천적 마르크스주의자가 이 어렵고 복잡한 듯한 이론서를 쓰게 된 이유를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말이다.
11. 08. 07.
P.S. 아직 안 읽어봤지만 같은 주제의 책을 보태어 읽는다면 '촘스키 정치학의 교과서'라는 <정복은 계속된다>(이후, 2007)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세계화 동력학'을 부제로 갖고 있는 <제국은 어떻게 움직이는가?>(갈무리, 2010)도 손에 듬직하다. 모두 미국의 침략사와 제국주의적 행태를 맹렬히 비판하며, 특히 <제국은 어떻게 움직이는가?>는 "어떤 조건 하에서 그리고 어떤 지정학적 위치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출현하고 확대되는지, 반제국주의 운동의 잠재력과 한계는 무엇인지, 그리하여 오늘날 새로운 세계를 위한 가능성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덧붙여 존 벨라미 포스터의 <벌거벗은 제국주의>(인간사랑, 2008)도 같은 맥락에서 읽어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