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경향신문의 '경제와 세상' 칼럼을 옮겨놓는다. '시골의사'이자 경제평론가인 박경철 씨가 아직 진행형인 한진중공업 사태의 의미와 해법을 짚었다.   

  

경향신문(11. 07. 29) [경제와 세상]대기업이 존경받고 싶다면

‘천성산 지킴이’라 불렸던 지율 스님의 단식은 외견상 6개월간의 공사 지연과 145억원의 공사 손실을 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유형 손실’이 아닌 ‘무형 가치’의 관점에서 본다면 계산은 달라진다. ‘도롱뇽’이라는 한 생명체를 상징으로 한 지율 스님의 강력한 환경운동은 이후 토목공사나 국책사업 등을 계획할 때마다 ‘천성산’의 기억을 가장 먼저 떠오르게 할 것이고, 강력한 자기검열의 기준으로 작동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지율 스님의 ‘도롱뇽 전쟁’은 유형의 손실과 무형의 이익이라는 양자의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우리는 보통 자연물을 대상으로 가치를 산정하지 않지만, 가격이 매겨지지 않은 자연이 훼손될 경우, 그것을 복구하는데 드는 미래의 ‘그림자 비용’은 구조물의 가치보다 훨씬 큰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모든 문제는 단기적 득실과 장기적 득실, 나아가서는 당대성의 관점과 시대성의 관점이라는 두 가지 기준에서 해석되어야만 한다

같은 맥락에서 지금의 ‘한진중공업 사태’ 역시 마찬가지다. 사측에서는 정당한 경영행위에 대한 극렬한 노동운동이라고 하고, 노측에서는 생존권을 주장하는 노동자의 피 끓는 절규라고 말한다. 이 대립되는 문제를 단기적인 이해의 관점에서 보면 영업손실과 같은 물질적 손익계산이 앞서겠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득실은 달라진다. 이유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떠오르는 가장 뜨거운 이슈 중의 하나인 대기업 문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문제란 물론 부의 편중, 중소협력업체와의 불공정 계약, 비정규직 근로자 문제, 불법 상속 증여문제 등을 가리킨다. 불균형은 반드시 부작용을 낳는다. 대기업의 성장은 과거 국민들의 희망에서 서운함으로, 다시 배신감으로, 나아가서 분노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법인격’의 관점에서 보면 기업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 몰라도 그 법인의 성장이 국가사회적인 지원에 힘입은 것이라면, 국민들은 기업을 ‘법인격’이 아닌 ‘인격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한진중공업의 문제는 이 모든 문제의 축소판이다. 과연 지금 상황에서 국가 공권력을 투입해서까지 지켜줘야 할 법인의 이해문제는 무조건 정당한 것인지, 아니면 인격적인 차원에서 부양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이 졸지에 직장을 잃게 되었을 때, 그에 대한 생존 차원의 저항을 하는 것이 무조건 부당한 것인지가 핵심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진중공업 사태는 시장과 기업이 중시하는 ‘법인격’과 ‘대중’이 생각하는 ‘인격’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실로 중요한 시험대에 선 셈이다. 이 문제는 이 시대 한국사회의 주류가 고공 크레인에 매달린 노동자의 절규를 두고, 약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조금 양보하며, “그만하면 최선을 다했다”는 수준이라도 정서적 화해를 이끌어낼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감력’을 가지고 있는지, 혹은 제대로 된 상황 인식이 있는지 여부에 대한 시금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만에 하나 상상하기도 싫은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면, 대중은 탐욕스러운 법인격에 의해 대중의 인격권이 침해당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 경우 발화될 대중의 분노와 그동안의 외면에 대한 죄의식이 결합할 경우, 대중이 재벌에 대해 본격적으로 돌을 드는 발화점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재벌 스스로를 위해서도 절대 이 문제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 하지만 만약 이 문제를 존중의 바탕 위에서 풀어간다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건강한 희망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 천성산 도룡뇽이 보이지 않는 미래 가치에 미친 영향처럼, 이 문제 역시 향후 화산처럼 터져나올 재벌 개혁과 자본 독주에 대한 분노를 연착륙시키고,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재벌과 대기업이 진정 이 땅에서 존경받기를 원한다면, 이번에는 진짜 ‘통큰 양보’가 필요한 것이다

11. 0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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